대한항공이 개막전에서 지난 시즌 정규리그 1위 우리카드를 꺾었다.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 이끄는 대한항공 점보스는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개막전 경기에서 우리카드 위비를 세트 스코어 3-2(25-20,25-21,23-25,23-25,15-7)로 꺾었다. 1,2세트를 먼저 따내며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가던 대한항공은 3,4세트를 내리 내주며 고전했지만 마지막 세트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기분 좋은 개막전 승리를 따냈다.

대한항공은 토종 에이스 정지석이 70%의 공격성공률과 함께 서브득점 2개, 블로킹을 무려 11개나 곁들이며 34득점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 안드레스 비예나 역시 30.4%의 점유율을 책임지며 20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그리고 대한항공의 주전 센터로서 데뷔 후 처음으로 V리그 경기 주전으로 나선 특별귀화선수 진지위는 블로킹 5개를 포함해 10득점을 올리며 대한항공의 중앙걱정을 덜어냈다.

김규민 입대와 진상헌 이적으로 허전해진 센터진
 
 대한항공에서만 14년을 뛰었던 진상헌은 이번 시즌 OK금융그룹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대한항공에서만 14년을 뛰었던 진상헌은 이번 시즌 OK금융그룹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 한국배구연맹

 
2016-2017 시즌까지 챔프전 준우승만 4번이나 차지했던 대한항공은 2017-2018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삼성화재 블루팡스,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를 차례로 꺾고 창단 첫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당시 대한항공은 미차 가스파리니와 정지석,곽승석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삼각편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중앙에서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해준 센터진 진성태와 진상헌(OK금융그룹 읏맨),최석기(우리카드)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었다.

대한항공은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 FA 센터 김규민을 영입하면서 꾸준히 중앙에 좋은 전력을 유지했다. 배구 경기는 날개 공격수들의 화려한 공격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강 팀이 되기 위해서는 중앙이 탄탄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꾸준한 투자와 육성을 통해 강 팀이 되기 위한 지름길이 어디인지를 잊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최근 두 시즌 챔프전 준우승과 정규리그 2위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019-2020 시즌이 끝나고 탄탄하던 센터진에 큰 위기를 맞았다. 최근 세 시즌 연속 센터 부문 베스트7에 선정된 김규민은 한국 나이로 31세가 되면서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돼 상근예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여기에 2007년 대한항공 입단 후 군복무 2년을 제외하면 햇수로 14년 동안 대한항공을 떠나지 않았던 프랜차이즈 스타 진상헌이 FA 자격을 얻어 OK금융그룹으로 이적했다.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진성태를 제외하면 풀타임 주전경험이 있는 센터가 아무도 남지 않은 대한항공은 비 시즌 동안 공격적인 행보로 '센터 수집'에 나섰다. 먼저 FA시장에서는 작년 군복무를 마친 이수황을 영입했다. 5월에는 박원빈,전진선에 진상헌의 가세로 입지가 좁아진 한상길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이수황과 한상길의 가세로 센터진이 양적으로 풍부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국가대표 센터 김규민의 공백은 여전히 크게 느껴졌다.

산틸리 감독은 지난 컵대회를 통해 새로 영입한 이수황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코트에서 시험하며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그리고 17일 우리카드와의 개막전을 통해 드디어 본인이 낙점한 새로운 주전센터를 배구팬들에게 선보였다. 산틸리 감독의 눈도장을 찍은 선수는 FA로 영입한 이수황, 그리고 불과 1년 전까지 '알렉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홍콩 출신의 특별귀화선수 진지위였다.

박기원 감독이 발굴한 원석,V리그 주전 데뷔전 맹활약
 
 진지위는 V리그 주전 데뷔전에서 산틸리 감독과 배구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진지위는 V리그 주전 데뷔전에서 산틸리 감독과 배구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 한국배구연맹

 
진지위는 홍콩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김찬호 감독의 눈에 띄어 2014년 외국인 전형을 통해 경희대에 입학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홍콩대표로 선발돼 좋은 공격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김호철 당시 국가대표 감독을 비롯해 홍콩배구협회,한국대학배구연맹 등의 추천을 받아 추진했던 '체육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에서는 대한배구협회 경기력 향상위원회에서 반대의견을 내며 무산되고 말았다.

진지위는 작년 다시 한 번 특별귀화를 신청했고 대한체육회 심의를 통과해 법무부의 승인을 남겨둔 상태에서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아직 귀화가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지명 가능성은 다소 희박한 듯 했지만 대한항공의 박기원 감독은 진지위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전체 6순위로 진지위를 지명했다. 그리고 진지위는 작년 12월 법무부의 최종승인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한국인이 됐다.

귀화절차가 늦어지면서 몸 상태를 완전히 끌어 올리지 못한 진지위는 지난 시즌 5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1득점도 올리지 못했고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됐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박기원 감독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대한항공의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진지위는 산틸리 신임 감독으로부터 '즉시전력감'으로 인정 받으면서 대한항공의 새로운 주전 센터로 낙점 받았다.

진지위가 V리그 주전 데뷔전에서 만난 첫 상대는 하현용,최석기 등 베테랑 센터들이 버틴 우리카드. 하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정도로 큰 경기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는 진지위는 개막전의 부담에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62.5%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한 진지위는 세트당 1개에 해당하는 5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10득점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대한항공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대학시절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했던 진지위는 195cm로 프로에서 센터로 활약하기에 그리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에 입단한 프로 2년 차지만 1993년생으로 입단 동기들보다 나이도 많다. 하지만 진지위는 그만큼 대학과 국제대회에서 또래들보다 많은 경험을 쌓았고 오른쪽 공격수 출신으로 포지션 대비 운동능력도 뛰어나다. 박기원 감독이 발굴한 대한항공의 원석이 산틸리 감독 체제에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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