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포스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는 두 종류로 나뉜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영화로만 추억할 수 있는 배우와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을 배우다.

지난 27일, 또 한 명의 배우가 떠났다. 일본 톱배우로 꼽히는 다케우치 유코다. 고작 마흔의 젊은 나이였다. 다케우치 유코는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진 유명 배우다. 그 대부분은 다케우치를 톱스타 반열에 올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낳은 것이다. 2005년 한국 개봉 당시 14만 명의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이후에도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틀림없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배우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생김과 분위기, 목소리며 말투, 몸짓과 눈빛에 이르기까지 같은 배역을 연기해도 배우마다 내는 색깔은 천차만별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이룬 공의 절반쯤도 배우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죽었다가 살아나며, 살았다가 스러지는 여인 다케우치의 몫이 8할은 된다. 다케우치가 아니었다면 해바라기 밭에서의 만남이나 비의 계절에 이뤄진 재회가 그와 같은 감흥을 일으키진 못했을 테니.
 
 27일 새벽 일본 도쿄 시부야구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다케우치 유코. 스물넷의 그녀를 일약 일본 최고의 여배우로 만든 영화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다.

27일 새벽 일본 도쿄 시부야구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다케우치 유코. 스물넷의 그녀를 일약 일본 최고의 여배우로 만든 영화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다. ⓒ (주)디스테이션

 
비의 계절이 돌아오면 만날 수 있을까

영화의 시작점에서 다케우치가 연기한 미오는 이미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미오가 떠난 뒤 남겨진 남편 타쿠미(나카무라 사도 분)와 아들 유우지(다케이 아카시 분)는 둘이서 삶을 꾸려가는 데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뇌 분비 호르몬과 관련된 질환을 앓는 타쿠미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번잡한 곳에 가거나 복잡한 일을 하지 못하고, 빨리 뛰면 몸이 어지러워 곧 쓰러질 지경이다. 제 몸 하나도 벅찬데 어린 아들 유우지까지 챙기자니 힘이 부친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라 손이 덜 가는 게 다행한 일이다.

타쿠미에겐 당장 걱정 하나가 있다. 미오가 떠나기 전 "비의 계절이 오면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유우지가 이를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실망감을 어찌해야 할지 타쿠미는 뚜렷한 대책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미오가 돌아온 것이다. 미오와 함께 자주 찾던 숲에 간 두 사람 앞에 기억을 잃은 미오가 나타난다. 말이 되지 않지만, 예술이란 본래 거짓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게 아니던가.

영화는 돌아온 미오가 비의 계절이 끝나기까지 이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애틋하게 보여준다. 더없이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를 맞은 남편과 아들의 기쁨이 스크린 넘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이고 이해되는 마음이다.
 
 <러브레터>에 설원 장면이, <이터널 선사인>에 빙판 장면이 있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해바라기밭 장면이 있다.

<러브레터>에 설원 장면이, <이터널 선사인>에 빙판 장면이 있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해바라기밭 장면이 있다. ⓒ (주)디스테이션

 
일본 영화사에 기록될 순간을 빚다

스물넷의 다케우치는 일본 영화사에서 기록될 순간을 빚었다. 타쿠미와 유우지뿐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 모두에게 다케우치의 뒷모습은 아련하고 아름답게 기억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비가 올 때면 가끔 생각한다. 떠나간 누군가가, 소중한 누군가가 비의 계절에 돌아오면 좋겠다고. 사실이 아니라 해도, 현실이 아니라 해도 그런 생각이 버티게 해주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비의 계절이 끝났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다케우치는 거짓말처럼 계절의 끝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화처럼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도 남기도 않고. 그래도 다행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해바라기를 보는 날이면, 네잎클로버를 보는 날이면 그녀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 원할 때는 언제든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말이다.

영화와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선율과 배우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자질을 가진 도이 노부히로의 연출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영화를 만나러 간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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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 https://brunch.co.kr/@goldstar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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