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간호중

SF8 -간호중 ⓒ MBC


지난 7월 MBC와 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림이 함께 한국판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 SF8 >이 웨이브를 통해 선공개됐다.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 김의석 감독의 <인간 증명>, 노덕 감독의 <만신>, 안국진 감독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수 없다>, 오기환 감독의 <증강 콩깍지>, 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 장철수 감독의 <하얀 까마귀>, 한가람 감독의 <블링크> 등 8 작품은 이어서 8월 14일 부터 매주 금요일 MBC를 통해 방영 중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 < SF8 >은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 지능(AI), 증강 현실(AR), 로봇, 게임, 판타지, 호러, 초능력, 재난 등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SF8 -간호중

SF8 -간호중 ⓒ MBC

 
누구를 돌볼 것인가? - 간병 로봇의 딜레마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이다. 김혜진 작가의 SF소설집 <깃털>에 수록된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배경은 2046년, 여전히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이다. 

'사람이 힘든 일에서 해방되고 그 일을 로봇이 대신한다면,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김혜진 작가의 원작 속 TRS는 간호중이 되어 낙원 요양 병원에서 10년째 뇌사 상태에 빠진 연정인의 어머니(문숙 분)를 돌보고 있다. 

극 중 간호중은 환자의 딸인 연정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로봇이지만 환자를 돌보야 하는 가족의 얼굴을 한 이 간병 로봇은 그래서 환자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가족에게는 친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인쇄소를 운영하며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연정인은 간호중을 '호중'이라 부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처음 어머니가 병상에 누웠을 때만 해도 생일을 챙기며 살갑게 어머니를 대하던 연정인은 이제 10년 넘게 흐른 세월에 피폐함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그런 정인을 '돌봄 1호' 정인의 어머니에 이어, 돌봄 2호라고 생각(?)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정인의 상태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 

간병 로봇이라고 다같은 간병 로봇이 아니다. 2046년이 되어도 여전히 가진 것에 의해 삶의 질이 나뉘는 세상, 정인의 옆방 치매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없는 돈에 보급형 간병 로봇을 들였지만 정작 남편은 차도가 없고, 간병 로봇마저 제 멋대로이자 보호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정인은 더더욱 좌절하고, 그 역시 극단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줄을 매달고 의자에 올라가 발버둥을 치다 떨어진 순간 울린 전화벨, 달려온 병원에서 영안실에 누운 어머니를 보고 정인은 간호중을 끌어안고 '덕분에 어머니가 편히 가셨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병원 관계자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 온 정인은 돌변한다. 자신의 얼굴을 한 간병 로봇 간호중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정인이 가하는 분노의 폭력 끝에 '간호중'은 파괴되고 만다. 
 
 SF8 -간호중

SF8 -간호중 ⓒ MBC

 
로봇이 던진 질문,  '인간다움'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46년, 기술은 간병 로봇을 등장시킬 정도로 발전했지만, 사람살이는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병도, 고통도 덜어지지는 않았다. 변화되지 않은 삶과 관계 속에 더해진 '로봇'은 과연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10년째 어머니를 간병하며, 로봇 스스로 그 어머니의 딸조차 '돌보'고 있는 상황은 이미 '메뉴얼'된 기능 이상의 '진화'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봇은 돌봄의 질을 위해 스스로 '선택'의 질문을 던진다. 로봇을 찾아 '전도'를 했던 수녀님에게 전화를 건 로봇은 '한 사람이 죽어 다른 한 사람이 산다면?'이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드린다. 생명은 주님의 뜻이니 로봇 주제에 함부로 간여하지 말라는 수녀님의 경고에, 외려 간호중은 되묻는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을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인가? 라고. 그 죽었어야 할 사람 때문에 생기롭게 살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면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냐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끝나지 않고 있는  존엄사에 대한 질문이 간호중을 통해 던져진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젊은 정인을 구하기 위해, 정인 어머니의 생명을 끊는 간호중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선택에 대해 질문이 던져진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정인을 찾은 수녀님,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냐며 간호중을 파괴해 버렸던 정인은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간호중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수녀님은 다시 간호중을 찾아나선다. 간병 로봇을 만들었던 본사까지 걸음한 수녀님은 그곳에서 매뉴얼된 그 이상의 '작동'을 스스로 결정한 간호중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만난 간호중, 아니, TRS- 70912 B는 자신에게 차오르는 무엇을 말하며 이게 고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 수녀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말한다. 상황이 역전되어 수녀님이 예전 간호중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예전에 간호중은 물었다.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으로 만들었다면 자신도 사랑으로 만들었냐고. 그때 수녀님은 '자네는 로봇이잖아!'라고 일갈했다. 그런 수녀님의 단호한 거절에 간호중은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일 수도 있다며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위해 기꺼이 기도해 주겠다는 수녀님에게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목숨을 거두어 달라 호소한다. 살아서 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느니 죽음을 택하고 싶다는 간호중의 애절한 간청에 수녀님은 혼란스럽지만 규정을 넘어설 수 없다. 입장이 바뀌어 당시 간호중과 같은 입장에 처한 수녀님은 간호중이 '사랑'으로 선택한 그 결정과 달리 세상이 그어놓은 선 밖으로 선뜻 나설 수 없다. 그 때 간호중이 던진 한 마디는, '위선자',

같은 상황에 놓인 로봇과 인간의 다른 선택, 묘하게도 영화를 보고나면 어쩐지 로봇이 더 인간보다 인간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선'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수녀님'이야말로 결국 자신들이 만든 도덕과 규정과 규칙 속에 갇혀 '딜레마'에 빠진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람과 로봇 중 누가 성장했을까? 라는 원작자의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인간적 고뇌의 상황에 던져진 로봇, 로봇일지라도 그 딜레마를 통해 성장하게 되었다는 건, 인간이 포기한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진화가 주는 묵시록적인 경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SF임에도 되돌아 오는 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그 아픔과 고뇌라는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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