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외야수 박용택(LG 트윈스)의 은퇴 투어는 없던 일이 됐다. 당초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에서는 야구 역사에 여러 가지 의미로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을 기념하자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은퇴 투어를 지지하고 있었다.

은퇴 투어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은퇴를 예고하고 마지막 시즌을 보내는 선수가 각 상대 팀의 마지막 원정 경기 일정마다 치른다. 현역 선수로 활약했던 시절의 활약상을 정리하며 다른 팀의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축하하고 작별의 인사를 하는 시간이다. 은퇴 예정 선수와의 추억이 깃든 기념품을 은퇴 선물로 전달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12년 치퍼 존스, 2013년 마리아노 리베라, 2014년 데릭 지터, 2016년 데이비드 오티즈 등이 은퇴 투어를 실시했다. 선수 생활 후반에 금지 약물 복용을 시인했던 오티즈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은 모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KBO리그에서는 2017년 이승엽이 마지막 시즌을 보내면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이 협조한 가운데 성대하게 은퇴 투어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호준(NC 다이노스 코치)은 KBO리그 차원으로 준비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꽃다발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는 정도의 간단한 작별 인사 형태로 은퇴 투어를 치렀다.

최다 안타 박용택, 활약상을 기념할 의미는 충분했다

박용택은 1979년 4월 21일 서울 태생으로 1998 드래프트에서 고졸 예정자 우선지명으로 LG에 입단했다. 박용택은 2002년 1군에 데뷔한 이후 2020년 시즌까지 LG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2020년 8월 9일까지 통산 2178경기에 출전, 2478안타 211홈런 1179타점에 타율 0.308을 기록했다.

다른 현역 선수들의 통산 안타 기록들을 감안하면 박용택의 2478안타 기록은 한동안 넘어설 선수가 쉽게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현역 2위 김태균 2209안타). 최근 햄스트링 부상에서 복귀한 박용택이 남은 경기에서 안타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대략 2500안타 전후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박용택은 2008년 96경기, 2019년 64경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16시즌에서 모두 100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했다. 꾸준한 출전 속에 안타 기록을 쌓은 결과 KBO리그 역대 최다 안타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KBO리그 역대 최다 홈런을 기록했던 이승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다 기록 선수의 은퇴를 기념한다는 의미로 투어를 기획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선수협에서도 박용택의 기록을 기념하며 그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자는 의미로 박용택의 은퇴 투어를 추진하려고 했다. 보통 은퇴 투어가 각 상대 팀들의 마지막 원정 일정에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먼저 8월 20일과 21일에 예정되었던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가 첫 일정이었다.

다만 박용택의 은퇴 투어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다소 촉박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올 시즌 개막도 지연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했고, 7월까지 관중들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은퇴 투어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실내 경기장인 고척 스카이돔이 개장한 이후 경기가 순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만큼 이 때 행사를 개최하지 못할 경우 키움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 은퇴식 이후 포스트 시즌 경기 출전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박용택 은퇴 투어는 취소, 남은 시즌 경기는 출전

그러나 박용택의 은퇴 투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박용택이 KBO리그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것은 맞지만, 다른 팀 팬들에게 있어서 박용택은 그저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이승엽 역시 KBO리그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한 팀에서만 뛰었고, 일본 리그에 다녀온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엽이 다른 팀의 팬들에게도 각인된 국민타자였던 이유 중 하나는 각종 국제 대회에서 이승엽이 보여줬던 클러치 히터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박용택에게 이승엽에게 있었던 국가 대표 간판 타자의 이미지는 없었다. 이호준의 경우 3팀에서 활약한 이력이 있으며 역시 국가 대표에서의 임팩트가 없었지만, NC 다이노스의 초대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NC 팀 차원의 은퇴 기념 행사가 열린 것이었다.

박용택은 최근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 공교롭게 6월 23일 키움과의 홈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회복 중이었던 박용택은 8월 11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부터 1군 훈련에 합류했다. 은퇴 투어를 앞두고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선수 본인도 부담이 있었다.

결국 박용택은 10일 팀 성적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은퇴 투어를 논의하기보다 경기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다. LG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목표로 치열한 순위 경쟁이 진행 중이며, 박용택 역시 아직까지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표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있었다.

일단 박용택은 1군에 복귀한 만큼 남은 경기에 지명타자로 최대한 출전할 예정이다. 은퇴 투어는 취소되었지만, 시즌 막판 LG 구단 차원의 은퇴식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병규 코치도 은퇴식을 따로 진행했던 만큼 박용택에 대한 구단의 은퇴 행사는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호준 코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은퇴식 이후 포스트 시즌에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

끝내 은퇴 투어 발목 잡은 2009년 타격왕 타이틀

2009년 당시 박용택은 111경기 506타석 452타수에서 168안타를 기록하며 타율 0.372를 기록, KBO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박용택은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던 홍성흔(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루키리그 팀 코치)과 타격왕 경쟁을 하고 있었다.

시즌 막판이었던 2009년 9월 25일 LG와 롯데는 잠실에서 서로 맞대결을 벌였다. 이 날 홍성흔은 지명타자로 출전했으나 박용택은 출전하지 않았다. 이 날 홍성흔은 LG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으며 볼넷만 4개를 얻어 출루했고, 뜬공 1개를 기록하면서 안타를 추가하지 못했다.

이후 박용택은 2009년 타격왕 타이틀을 확정했고, 외야수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러나 4년 뒤였던 201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페어 플레이 상을 수상했던 박용택은 수상 소감을 통해 4년 전의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리석었으며, 이후 모범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 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시즌 막판에 타율 기록 관리 차원에서 결장하거나 마지막 경기에서 첫 타석 안타 1개만 추가하고 대주자로 교체되는 선수들이 간혹 나왔다. 추신수(현 텍사스 레인저스)의 경우도 2010년 타율 0.300로 시즌을 마쳤는데 3할-20홈런-20도루 기록을 지키기 위해 시즌 마지막 경기를 결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박용택의 이날 경기가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이유는 경쟁 상대였던 홍성흔은 타석에 나섰지만, 박용택은 출전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는 점에서 논란을 남겼다.

이후 박용택은 지속적으로 팬들과 봉사 활동을 진행하는 등 야구장 안이나 밖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2013년 페어 플레이 상을 수상했고, 현재까지 KBO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의 타격왕 타이틀은 박용택의 커리어에 있어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선수 본인이 이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팀의 팬들은 여전히 그의 은퇴 투어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역대 은퇴 투어 사례와 비교했을 때

은퇴 투어는 오랫동안 꾸준히 활약했던 선수가 은퇴를 미리 예고하고 마지막 시즌을 보낼 때 그 선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진행하는 행사다. 은퇴를 미리 예고했을 때 그 선수와 작별하는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경우에만 은퇴 투어가 열린다.

이승엽이 은퇴 투어를 처음 시작했으나 그 이전에 팀을 떠나 다른 팀의 팬들에게도 각인되었던 대표적 선수들을 떠올리자면 양준혁(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이종범(현 주니치 드래곤즈 지도자 연수 중),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 고문) 등이 있다.

그러나 양준혁은 2010년 후반기 은퇴를 발표하면서 투어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고, 시즌 막판에 은퇴 경기만 치렀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던 이종범 역시 소속 팀에서 입지가 좁아지면서 은퇴했던 경우라 은퇴 경기가 아니라 별도의 은퇴식으로 마무리했다.

2012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은퇴식도 2014년 올스타 게임이 되어서야 열렸다. 당시 박찬호는 2012년 시즌을 마친 뒤 향후 선수 생활 연장 여부를 고민하다가 은퇴 결정을 내렸다. 박찬호가 KBO리그에서는 한 시즌만 보냈으나,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서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세운 의미를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역사상 최초로 올스타 게임에서 은퇴식이 열렸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은퇴 투어를 처음 시작한 시기가 2012년이다. 치퍼 존스의 경우 메이저리그 스위치 히터 홈런 역대 3위를 기록했으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한 팀에서만 꾸준히 활약했던 팀의 간판 타자였다. 명예의 전당에도 한 번에 들어갔을 만큼 인성에도 결격 사유가 없었던 선수였다.

두 번째로 은퇴 투어를 했던 마리아노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투수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역대 최초로 100% 득표로 입성했다. 데릭 지터는 통산 정규 시즌 3465안타(역대 6위), 포스트 시즌 200안타(역대 1위)를 기록했으며 뉴욕 양키스의 주장을 12년 동안 역임했다.

네 번째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었던 데이비드 오티즈는 논란이 있었다. 2004년 ALCS MVP가 되면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끊는 데 크게 기여했던 선수였고, 2013년 월드 시리즈 MVP, 2011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이외의 올스타 10회 등 기량으로는 뛰어났다.

그러나 오티즈는 비교적 무명이었던 2003년 비공개 약물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이 논란 때문이었는지 2016년 오티즈의 은퇴 투어 당시에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오티즈에게 은퇴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일단 메이저리그에서 은퇴 투어를 했던 사례들을 감안했을 때 박용택은 은퇴 투어를 하기에 "기록적" 손색은 없다. 다만 2009년 타격왕 타이틀과 관련하여 지금도 좋지 않은 시선이 남아있는 만큼 오티즈의 은퇴 투어 사례처럼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은퇴 투어에 대한 진정한 의미 살리는 기회 돼야

선수가 은퇴 전에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팬들은 그 선수가 KBO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남긴 발자취를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른 팀의 팬들도 그 선수를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에서 추억을 쌓았던 만큼 그 가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이번에 박용택의 은퇴 투어 취소 사례를 감안했을 때, KBO리그에서 한동안 은퇴 투어를 진행 할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승엽이 팬들과의 작별 인사 시간을 충분히 갖게 하기 위해 시작했던 문화가 긍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려는 과정이 생각보다 험난하다.

현재 KBO리그에서 향후 은퇴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가 높은 일부 베테랑 선수들은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KBO리그에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통산 기록도 좋은 선수들이 이번 박용택의 사례처럼 몇 가지 사유로 인해 다른 팀 팬들에게 외면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승엽은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의 인사 이외에도 어린이 팬들을 33명씩 선발하여 별도의 미팅 시간까지 마련했을 정도로 팬들과의 시간을 중요시했다. 거리두기 지침으로 이승엽이 진행했던 팬 미팅까지 준비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은퇴 투어를 통해 팬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이번 박용택 은퇴 투어의 취소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은퇴 투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은퇴 예정 선수와 팬들이 보다 뜻있는 시간을 통해 작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은퇴 투어의 문화를 어떻게든 이어 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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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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