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영화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별다른 정보 없이, 135분짜리 영화 <소년 시절의 너>를 봤다. 적잖이 놀랐다. 포스터와 제목만으로 흔한 대만 청춘영화일거니 짐작했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반성했다. 대만 청춘영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그 감수성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란 선입견이나 컴퓨터그래픽 범벅의 요즘 중국 대중영화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영화 속 중국의 입시 제도나 이에 목을 매는 학교 풍경을 마주하곤, 재차 놀랐다. 불과 십 수 년 전만해도 우리의 사회문화가 일본을, 중국은 우리를 따라잡는 형국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결코 어느 쪽이 후진적이란 얘기가 아니다. 대중문화가 특히 그러하지만, 동아시아의 이 세 국가가 자본주의 풍경에 맞춰 '스탠다드'화 되는 속도에 관한 속설이 하여간 그랬다.

'꼰대' 소리를 들을지 모를 'TMI'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영화가 소위 충무로를 강타한 것이 1989년이다. 살인적인 입시경쟁과 그 가운데 싹트는 10대들의 풋풋한 감정을 다룬 멜로드라마들은 이후 줄줄이 속편이나 아류작들로 재생됐다.

그 후 10년, 그런 학원 내 살풍경은 호러로 장르만 <여고괴담>에서 부활했다. <소년 시절의 너>도 그런 중국의 학원 풍경과 순수한 학생들에게까지 뻗은 자본주의의 촉수를 적절히 녹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대 중국영화(라지만 홍콩영화의 자장 아래 자리한)도 이런 소재를 다룬다는 점 역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주동우의 연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시종일관 눈길을 잡아끄는 주동우의 강렬한 연기는 비단 청순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본이나 우리와 달리, 유독 중국영화가 스타 발굴(맞다. 모름지기 대중영화 시스템의 역사는 스타 시스템의 역사다!)이 더디다고, 아니 실패했다고까지 느껴왔던 중국영화에서, 첸니엔 역의 주동우는 오랜만에 만나는 걸출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주동우가 1992년생이란 걸 알게 됐을 땐, 놀라기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영화 속 대입 입시생부터 영어교사가 된 성인연기까지 폭넓게 소화한 이 배우의 연기력이 그간 쌓인 내공에서 비롯됐음에. 그러고 보니 주동우가 원화평 감독의 근작 <기문둔갑>(2017)의 그 '신 스틸러' 동글이였음을 뒤늦게 떠올렸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여러 번이나 놀라움을 안겨준 <소년 시절의 너>의 이야기는 단순한 듯 다층적이었고, 영상은 감각적인 듯 강렬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에서 지난 9일 개봉 이후 2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입소문을 모으고 있는 <소년 시절의 너>의 매력은 이랬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소녀, 소년을 만났다. 처음엔 동네 양아치인 줄로만 알았다. 그보단 악연에 가까웠다. 첫 만남이 호감은 아니었지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둘 다 기댈 곳이 없었고, 안식처가 필요했다. 외로웠다.

네가 내 세상이고, 그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 악몽 같은 세계가 이 소녀와 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둘은 끝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더 나쁜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운명이 닥쳐도 변치 않는단 약속과 함께.

소녀 첸니엔(주동우)은 우등생이자 외톨이다. 돈 벌러 간 엄마를 위해서라도,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꼭 베이징대에 들어가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책상에 쌓인 책에 파묻혀 한 눈 팔 새 없는 첸니엔을 질투하는 동급생들이 존재할 터.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을 만나게 해 준 게 이들의 따돌림 때문이었다.

소년 샤오 베이(이양천새)는 동네 양아치다. 여기저기서 맞고 다니긴 하지만, 얽매인 것도, 얽매일 것도 없다. 그런 소년의 작고 보잘것없는 세계에, 스며들듯 소녀 첸니엔이 들어왔다.

겁도 주고, 외면도 해 봤지만, 어딘가 남다른 소녀는 자꾸만 소년을 찾는다. 그런 소녀에게 소년이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라고 말했을 땐, 이미 운명이 둘을 갈라놓기 시작한 후였다.

우리 식으로 '하이틴로맨스' 정도일 중국 소설을 원작 삼았다는 <소년 시절의 너>는 이 소년 소녀의 로맨스를 달달하게만 그릴 생각이 없다. 동급생의 자살을 통해 시작부터 천니엔의 불안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관객에게 확인시키는 동시에 천니엔이 속한 학원의 비인간적인 분위기를 요령 있게 시각화한다. 마치 그 학원이 동시대 중국사회의 어떤 축소판이라는 듯.

거기엔 우리가 미디어 너머에선 접할 수 없는 중국의 오늘이 자리한다. 어떻게든 계급 상승을 이뤄내야 하는 친니엔의 욕망은 딱히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성취해내고자 하거나 기꺼이 즐기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부모 세대는 그저 지금, 여기를 탈출하고픈 생존 투쟁에 가까운 동기부여의 존재일 뿐이다.

부재한 아버지와 멀리 떨어진 어머니는 이 소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심리적 짐으로 작용할 뿐이다. 친절한 듯 무기력한 젊은 선생이나 역시나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하지만 인정욕구나 공명심에 휘둘리는 형사 역시 첸니엔이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아니다. 첸니엔을 궁지에 빠뜨리는, 학교폭력을 일삼는 동급생들 역시 세상의 권력 관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그 세계의 법칙에 지배받는 미숙아 혹은 애어른들일 뿐이다.

그리 먼 얘기가 아닌 어느 청춘의 초상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영화는 이렇게 고립무원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입시에 목을 매는 첸니엔에게 샤오 베이는 불안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하나 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때 그 시절을, 결코 <소년 시절의 너>는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벼랑 끝에서 의외의 선택으로 치닫는 둘의 절박함이 설득력을 획득하고 둔중하고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캐릭터들의 선택이나 인물간의 관계, 이를 잡아내는 영상 구도의 대비감 등 모두 그러한 전형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연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 감흥은 뜻하지 않은 공간에서 마주 앉은 둘의 눈빛과 얼굴을 정면으로 잡아낸 카메라의 지속시간과 정비례한다.

"클로즈업이 많은 건 나의 영화적 스타일이다. 나는 클로즈업을 정말 사랑하는데, 배우의 얼굴을 스크린에 가득 담으면 배우의 얼굴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의 너>에서는 특히 청소년들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다." (증국상 감독 인터뷰 중, <씨네21> 1263호)

종종 정직한 클로즈업이 영화적 감흥을 발휘하는 영화들이 있다. 주동우의 위태롭지만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는 얼굴을 잡아낸 영화의 클로즈업은 그 자체로 이 범상치 않는 멜로드라마의 소우주라 할 만하다. 이 영화로 배우 데뷔를 한 샤오 베이 역의 이양천새 또한 그 카메라 안에서 '반항하는 청춘'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또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출신이자 홍콩의 명배우 증지위의 아들이기도 한 증국상 감독은 꽤나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를 후반부까지 힘 있게 끌고 가는 신인답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겠다는 듯 주동우를 비롯한 청춘 배우들의 연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연출은 향후 이 감독이 어떤 배우를 또 어떻게 조율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를 입증하듯, 증 감독의 전작 <안녕, 소울메이트>(2017)는 <마녀>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김다미와 <악질경찰>과 드라마 <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 <남자친구>의 전소니가 주연을 맡고, <혜화, 동> 민용근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소울메이트>로 리메이크가 확정됐다. 주동우가 범상치 않은 이십대 청춘을 연기한 증국상 감독의 이 데뷔작이 각광받는 충무로 신예인 김다미와 전소니가 어떻게 변모시킬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하여, <소년시절의 너>는 마지막까지 놀라움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성인이 된 영화 속 첸니엔처럼, 비록 되돌아보면 그 시절이 존재했었는지, 존재하는지를 곱씹게 만드는 현재의 장면은 그럼에도 언젠가는 꼭 기억을 소환내고 싶게 만드는 헛헛하면서도 따뜻한 공감을 자아낸다.  

한편으로 예상치 못한 클로징은 이 작품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아니 이런 결말에 이런 마무리를'이란 탄식이 터져 나온다고 할까. 그 탄식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이 놀라운 중국영화를 부디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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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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