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알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언제 우리가 가족이었나 싶게 모두가 흩어져갔다. '가족'이었지만 서로가 이제 더는 '가족'이기를 주저하자 원심력은 빠르게 가족을 흔들어 놓았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의 현재 처지다.
 
하지만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무언가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서로가 확인한 민낯이, 서로가 던졌던 속에 담아두었던 한 마디가, 상처였다고, 고통이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제 다른 의미로 서로를 붙잡는다.
 
일방적이었던 가부장적 사랑, 그 족쇄를 풀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 tvN

 
김상식(정진영 분)씨와 이진숙(원미경 분)씨의 결혼은 한평생 기울어진 시소와 같았다. 그런데 그 기울어짐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김상식씨는 가진 거라고는 방 한 칸인, 배운 것 없는 자신을 선택해 준 대학생 진숙씨에 대한 열등감에 평생을 시달렸다. 그 열등감과 자신의 아내가 아직도 첫째 딸 은주(추자연 분) 친아버지를 잊지 못했을 것이라는 오해가 만나 상식씨를 폭력적으로 만들었다.
 
과거 상식은 결혼식장에 온 은주 아버지 또래의 남자를 은주 아버지라 오해했고 아내가 밑줄을 그어놓은 소설책 속 한 문장이 아내의 잊지 못하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후 상식씨는 난폭해졌다. 그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묻지도 않고 스스로 쳐놓은 오해의 덫에 갇혀 아내를 밀어냈다. 기억이 22살로 잠시 돌아간 청년 김상식씨는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은 첫째 딸 은주의 지적처럼 어설픈 '책임감'뿐이었다.
 
상식씨는 아내를 부양했지만, 자신에게 버거운 그녀를 늘 오해하고 의심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상처 입은 새와 같던 그녀를 품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품기에 그가 가진 마음의 그릇은 생각만큼 넓지 않았다.
 
아내가 낳은,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 아닌 은주를 사랑하는 방식도 결국 마찬가지다. 다른 자식들이 편애한다고 할 만큼 은주를 예뻐한 상식이었지만, 그조차 본인의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가 강했을 뿐, 은주의 입장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상식은 과거 자신이 일을 하지 못했을 당시 은주가 가족을 부양하는 등 애를 써온 사실을 기억하며 통장에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그리곤 은주에게 아버지의 책임이었다면서 그 통장을 내민다.

하지만 은주는 "은희(한예리 분)라도 그랬겠냐"며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상식이 자신의 '책임'을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가족들의 안위, 그리고 은주의 상황을 생각했더라면, 따로 돈을 모으지 말고 아내에게 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가족은 더 편안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김상식씨는 가족을 소외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책임에만 집착했다.
 
그의 이런 일방적인 일처리 방식은 수 십년 전 그가 저지른 교통사고 처리 방법에서도 드러났다. 사고를 저지른 당시만 해도 보상금과 법적 처벌을 피하고 싶었던 김상식씨는 식구들 몰래 피해자 소년의 가족을 책임졌다. 그리고 그 책임의 시간 동안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부재를 감당해야 했다. 그는 가부장으로서 홀로 책임졌다고 하지만, 그 책임의 그림자는 온전히 가족이 감내했다.
 
이렇게 꽁꽁 묶인 오해와 과거의 일들은 산행을 갔다가 조난을 당하며 머리를 다친 김상식씨의 기억이 22세로 돌아가면서 봉인해제 된다. 은주의 출생의 비밀이 온 가족에게 알려지고 상식씨와 진숙씨간 엉키고 엉켰던 여러 오해들이 풀려간다. 계기야 어떻든 가족 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가장 김상식씨는 이제 자신을 감쌌던 성벽과도 같은 것들을 하나 둘 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굳이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가장 김상식씨들'이 많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홀로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외로움'이란 벽장으로 몰아세우는 그럼 사람들. 때로는 터무니없는 오해로, 때로는 어쩌지 못하는 책임감으로, 때로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말이다.
 
드라마는 알고 보면 어처구니없기까지 한, 홀로 짊어진 마음의 짐을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고 당부한다. 아내가 '졸혼'까지 선언했음에도 김상식씨가 하나 둘씩 자신을 둘러싼 갑옷과도 같은 오해와 고집을 털어내자, "너무 싫어. 집안에 당신이 앉아 있으면 너무 싫어. 숨을 못 쉬겠어. 걸어 다니는 것도 싫고, 몸에 좋은 약 챙겨 먹는 것도 싫고"라던 아내 진숙씨가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가 건네는 한 송이 꽃에, 한 잔의 커피에 진숙씨의 미소가 돌아온다. 사랑이 별건가. 가족이 별건가. 그 사소한 마음들이 모여 사랑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다. 대학 교정에서 울던 진숙씨를 차에 태웠던 상식씨의 그 배려처럼 말이다. 
 
민낯이 되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스틸 컷 ⓒ tvN

 
자신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아버지 상식은 은주에게 따뜻하게 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집에 사는 은주네 부부에겐 온기가 없었다. 서로 떨어진 방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서먹서먹하던 두 사람은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남편 태형(김태훈 분)의 커밍아웃으로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결국 이혼을 하자고 하는 은주. 그렇게 이혼으로 가려는 와중에 은주 출생에 대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난다. 은주가 휘청거리자, 그동안 거리감을 가지고 그를 대했던 남편 태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리고 자신은 몇 십 년 동안 친아버지와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는데, 이제 와 생물학적 아버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오히려 위로를 한다.
 
그런가 하면 태형이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 소식을 전한 건 바로 아내 은주였다. 이를 들은 태형은 눈시울을 붉히고 술에 취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날, 여전히 아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형의 엄마는 그의 방 앞에서 이혼 위자료 문제를 이야기하자고 하고, 결국 태형은 방안 물건들을 부수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은주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저 사람 사랑하시잖아요. 계속 무시하고 모른척하고도 아무렇지 않으세요.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저는... 이제 저 사람 받아들여지는데, 저보다 어머니가 더 쉬워야 하잖아요."
 

태형과 은주,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태형과 그 방문 앞을 지켜주는 은주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 가족'같아 보였다.
 
한편 과거 애인에게 성폭력을 당해 괴로워하는 서영(신혜정 분)은 자기 엄마의 처신에 화가 나 있다. 서영은 큰 충격을 받았을 자신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하고, 파렴치한 애인의 어머니에게 달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낸 엄마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찬혁(김지석 분)은 때론 가족이 '비겁한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상처를 들쑤시면 더 아플까봐 그런 거라고 말이다.
 
사실 정답은 없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데, 어떻게 '가족'의 모습이 모두 같을 수 있을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건 마음이 아닐까? 서로가 가족이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다면 비겁하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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