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이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홈경기 3-6으로 뒤진 2회 초 두산 공격 후 공수 교대 시간에 더그아웃에서 쓰러져 이송되고 있다. 2020.6.25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이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홈경기 3-6으로 뒤진 2회 초 두산 공격 후 공수 교대 시간에 더그아웃에서 쓰러져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스포츠에서 현역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경기중 실신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실시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본 선수단이나 팬들도 큰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은 지난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더블헤더 1차전 경기도중 덕아웃에서 쓰러졌다. 대기하고 있던 응급 의료진이 신속하게 투입되어 염 감독의 상태를 살폈다. 경기는 잠시 중단됐고 적장인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도 SK 덕아웃까지 찾아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염 감독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다행히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기는 재개되었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경기도중 사령탑이 실신한 것은 전례 없는 사건이다. 성적 부진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염 감독이 이끌던 SK는 지난해 정규리그 2위팀이자 올시즌에도 우승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이날 경기 전까지 12승 30패 승률 .286을 기록하며 리그 9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SK는 시즌 초 10연패를 기록한 바 있으며 최근 다시 7연패의 수렁에 빠진 상황이었다.

SK는 염 감독이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 재개된 더블헤더 1차전에서도 두산에 6-14로 완패하며 8연패를 기록했으나, 그나마 이어진 2차전에서는 7-0으로 완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어낸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았다.

2017년 SK 단장직 맡으며 구단과 인연 맺어

염 감독은 그동안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비난 여론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7년 SK의 단장직을 맡으며 구단과 첫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프런트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영광을 맛봤다. 2019년부터는 트레이 힐만 전 감독의 후임으로 사령탑 자리에 오르며 히어로즈 시절 이후 3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복귀 첫해 전반기까지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질주하며 순항하는 듯했으나 후반기 두산의 맹추격에 대역전극을 허용하며 다잡은 우승을 놓쳤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친정팀 키움 히어로즈에 완패하며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때부터 염 감독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비판 여론이 크게 높아졌다.

명예회복을 노린 올시즌에도 상황은 꼬이기만 했다. 에이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과 앙헬 산체스(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메이저리그로 향하면서 생긴 선발진의 공백을 새롭게 영입한 닉 킹엄과 리카르도 핀토가 제대로 메우지 못했고, 믿었던 장타력과 불펜의 동반침체,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줄부상 등 악재가 겹치며 성적이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염경엽 감독의 선수기용과 경기운영 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이 급격히 높아졌다. 역시 성적부진으로 이미 사임한 한용덕 전 한화 감독의 사례와 비교하여 왜 염 감독은 물러나지 않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가뜩이나 마른 체형에 섬세한 성격으로 유명한 염 감독은 팀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충분한 식사와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지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생한 불상사는 팀 성적이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언제든 한 번 터질 수밖에 없었던 예고된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염 감독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SK 감독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프로스포츠 감독들의 애환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더블헤더 1차전 경기. SK가 14-6로 패배하자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염경엽 SK 감독은 이날 1차전 경기 2회초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더블헤더 1차전 경기. SK가 14-6로 패배하자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염경엽 SK 감독은 이날 1차전 경기 2회초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 연합뉴스


염경엽 감독의 안타까운 상황은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속은 한없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프로스포츠 감독들의 애환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로 감독은 모든 체육인들에게는 선망의 직업이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인기 구기종목들의 경우 한해에 프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새로 달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10명 내외에 불과하다. 그만큼 수많은 인재들 사이에서 선택받은 인물이라는 자부심도 크고, 대중의 관심과 사회적 명예가 따라오지만 그 이상의 책임과 부담감도 요구된다. 결과에 책임을 지고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선수단을 일일이 챙기고 끌어가야하는 데다, 오늘날에는 팬들의 다양한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까지 신경써야한다.

특히 프로야구는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선수단의 규모가 가장 크고 경기 수도 제일 많다. 우천순연이나 특별 휴식기 등을 제외하면 1주일에 하루를 빼고 매일같이 경기를 치러야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기든 지든 매일같이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주일에 많아봐야 2~3경기를 치르는 축구나 농구보다도 감독이 신경쓰고 관리해야할 영역이 더 크고 복잡하다. 오히려 선수시절보다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는 일화도 적지 않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역시 지난 2001년 롯데 자이언츠를 지휘했던 김명성 전 감독의 사망사건이다. 김 전 감독은 당시 순위 싸움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KBO 리그 역사상 시즌도중 감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은 김 전 감독이 유일하다.

축구에서도 부산 아이파크의 조진호 감독이 역시 201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바 있다. 김명성 전 감독은 54세, 조진호 감독은 44세에 불과한, 아직 지도자로서는 한창 나이였다. 이밖에도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2004년 뇌경색으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고, 백인천 전 삼성 감독은 1997시즌 뇌출혈 치료로 시즌 중 감독 자리에서 사임했으며, 김경문 국가대표팀 감독은 2017년 NC 사령탑 시절 뇌하수체 종양 진단을 받기도 했다. 감독직이 주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김명성-조진호 감독의 비극은 안타깝게도 휴식일에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고였다. 염경엽 감독의 경우 응급의료체계가 잘 구비된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신속하게 대처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만일 경기장 밖이었거나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또 한번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섬뜩한 경각심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염경엽 감독의 사고로 인하여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많은 팬들도 실시간으로 중계된 염 감독의 사고에 충격을 받은 듯 지난 25일에는 SK의 경기 때마다 온라인과 SNS 등에 쏟아지던 비난 여론이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염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는 응원과 걱정의 목소리들로 채워졌다. 앞으로 감독이나 선수들을 향한 지나친 인신공격성 비난이나 악의적인 조롱을 자제하자는 반응도 나왔다.

스포츠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야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사람의 인명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팬들도 매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나 선수들의 입장과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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