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백>을 연출한 박상현 감독

영화 <결백>을 연출한 박상현 감독 ⓒ 키다리이엔티

 

그가 참여한 작품만 놓고 보면 참 다양하다. <그때 그 사람들>, <사생결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휴먼드라마, 액션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할리우드 유명 시리즈물인 <본 레거시>의 한국 유닛에도 참여했다. 

1998년 영화계 발을 들인 후 연출부, 조감독을 거친 박상현 감독의 오랜 꿈이 22년 만에 이뤄졌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연출한 <결백>이 10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인터뷰차 만난 박상현 감독은 기자에게 "영화에 드러난 여성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였나"라는 질문부터 했다. 급성 치매를 앓은 채 살인 혐의를 받게 된 엄마 화자(배종옥)와 변호사가 된 딸 정인(신혜선)이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이기에 감독 스스로도 기자들 평이 궁금했던 터였다. 

아이러니의 힘

영화는 최초엔 <깊고 푸른밤>이라는 제목이었다. 변호사 딸과 엄마가 중심인 설정 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농약 막걸리 사건 등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몇몇 실제 사건을 재료 삼아 이야기 구조를 다소 확장해 갔다고 한다. <결백>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시골에서 생각지도 못한 독극물 사건이 여럿 있더라. 농약 소주 사건도 있었고. 알아보니 시골 마을만의 폐쇄적 시스템이 있더라. 그 안에서 권력이나 어떤 경제적 문제들이 있었는데 영화에 그걸 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5년 무렵 제가 모녀 이야기를 기획했을 무렵 남성 서사 중심의 영화가 매우 많았다. 그런 지점과 차별성이 있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걸 쓰고 싶었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 갈등에 흥미가 있었다. 정인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직업적 윤리관보단 도덕적 윤리관이 강한 인물인데, 엄마 사건을 맡으며 신념을 버리게 된다. 무죄추적장르라는 설명이 홍보과정에서 생겼는데 영화는 채화자라는 여자를 알게 되는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엄마 이전 여자였을 때의 이야기지. 그건 모녀 관계를 떠나서 아마도 다들 공감할 것이다."


모녀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데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박상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무렵 겪었던 어머니의 사고, 병간호를 계기로 여러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아들은 영화 한답시고 끄적거리는데 병원에선 어머니가 거동도 제대로 못하니 눈물이 나더라. 계속 누워만 계시면 피가 안 돌아서 제가 주물러 드렸다. 어머니가 겨우 주무시고 난 뒤 새벽부터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 그 시간이 참 달더라. 그리고 소변 보실 시간에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고. 남녀를 떠나 어머니와 자식이면 아마도 다들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모녀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20년 넘게 영화를 하면서 어머니가 한 번도 제가 참여한 영화 시사회에 오신 적이 없는데 이번에 가족 시사에 오신다(웃음). (네가) 영화하면 가겠다고 말씀하곤 하셨는데 그게 오늘인 거다. 고등학생 때부터 제가 영화 한다고 했는데 참 오래 걸렸다."   

 
 영화 <결백> 관련 사진.

영화 <결백> 관련 사진. ⓒ 영화사 이디오플랜

  
 영화 <결백> 관련 사진.

영화 <결백> 관련 사진. ⓒ 영화사 이디오플랜

 
캐스팅의 비밀

긴 시간 만큼 영화 한편을 내놓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영화를 진행해 줄 제작사, 투자사를 찾는 일이 꽤 길어졌다. 대학 동문이던 배우 정우의 소개로 지금의 제작사를 만날 수 있었고, 캐스팅 과정에서도 투자사를 강하게 설득해야 했다. <결백>은 스타성 강한 톱배우가 등장하진 않지만 연기력이 검증되고 영화계에서 신선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박상현 감독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7년 9월에 제작사와 첫 미팅을 했었다. 그때까지 경제적으로 힘들고, 부모님께도 면목 없었다. 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터널을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캐스팅이 또 문제였다. 나폴레옹이 했던 말처럼 이 산이 아닌가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아마 모든 신인 감독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왜 나만 힘들지 하다가도 이렇게 개봉하게 됐다. 감사한 마음이다(웃음). 

우리 영화는 신구의 조화가 나름 좋다. 허준호, 배종옥, 박철민, 고창석 선배, 김석훈 선배께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시나리오의 허점, 신인 감독의 한계를 배우분들이 잘 채워주셨다. 영화만 처음이었지 신혜선씨는 <비밀의 숲>, <황금빛 내 인생> 때 나름의 팬층도 있었다. 유튜브에서 혜선씨 영상을 다운받아서 투자사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녔다(웃음).

배종옥 선배는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셨고, 연기 갈증이 여전하셨다. 코미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자기 틀을 깨고픈 욕망이 있으신 것 같더라. 영화에 총 세 가지 시제가 나오는데 제 생각엔 그걸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배종옥, 허준호 선배뿐이었다. 악역으로 추인회 시장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허준호 선배가 딱이었다. 근데 물리적으로 도저히 시간이 안 되시더라. 그럼 다른 역할이라도 해주십사 해서 미국으로 떠나시던 날 공항에 가려 했다. 선배가 정말 몇 개의 프로젝트 일정을 수정하고 추 시장 역을 맡아 주셨다."


 
 영화 <결백>을 연출한 박상현 감독

영화 <결백>을 연출한 박상현 감독 ⓒ 키다리이엔티

 
선택의 기로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장을 찍은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게 됐지만 박상현 감독은 몇 번의 선택의 갈림길에서도 영화를 고집했다. "이렇게 늦게 데뷔한 것도 아마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물론 좀 더 빨리 데뷔했으면 좋았겠지만 지난 시간 공부를 한 게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앞으로의 시간을 잘 쓰고자 한다"고 남다른 각오를 드러냈다. 

"40살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영화를 또 할 지 말이다. <빅매치>를 끝내고 영화가 내게 맞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다시 돌아가도 영화를 할 것 같더라. 제가 정말 개성이 다른 감독님들과 작업을 했는데 <결백> 하면서 다 떠오르더라. 제가 겪은 임상수 감독님, 최호 감독님, 임순례 감독님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길 하라는 것이었다. 

조감독 생활을 30대 초반에 끝내고 데뷔를 준비했을 땐 그 말이 뭔지 잘 모르다가 <결백>을 만들면서 깨달았다. 데뷔를 준비하는 모든 감독이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결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거든. 어머니에 대한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개봉이 두 번이나 밀리긴 했지만 동시에 그 시간에 <결백>은 후반 작업을 더 다듬고 보완했다. 박상현 감독의 열정과 그가 버텨 온 시간의 결과가 담긴 작품인 만큼 기대하고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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