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그집>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그집> 스틸컷

영화 <그집>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그집>의 원제는 'Malasaña 32'. 영어로 옮기면 '32 Malasana Street'이다. '그집'은 보통명사에 가깝지만 '말라사냐 32번가'는 고유명사이다. 서울의 명동이나 충무로 몇 번지 정도의 의미이다.

스페인어 고유명사를 그대로 옮겼을 때 맥락과 정서의 소실로 제목의 힘이 사라진다고 보고, 평범하지만 '그'를 통해 여운과 함축을 부여한 것으로 한국어 제목을 채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자유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한 스페인 영화 <하몽 하몽>처럼 명칭과 함의가 거의 일치할 때는 영화 제목을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렵겠다.

하몽은 스페인어의 보통명사이지만, 언어적 이격성으로 인해 한국 관객에겐 보통명사의 고유명사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영화 <그집>은 스페인적 고유성에 기반하여 공포 자체와 존재의 보편적 공포를 더불어 전달하려는 시도를 담았다.
 
한국어 제목 작명 과정이 뜻하지 않게 이 영화의 핵심에 닿게 된다. 이 영화는 퇴마사와 원혼을 등장시키는 등 귀신영화의 기본 골격을 취하지만 현존 건물과 현실 상황과 접목시켜 공포와 함께 인간 존재의 비애를 추적하여 공포 이상의 전언을 전하려는 구상을 갖췄다. 공포영화 영역의 확장을 꾀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최근 개봉 영화에서는 <오픈 더 도어>에서 비슷한 노력이 목격됐다.

<그집>은 스페인의 실제 거리와 건물에 얽힌 미스터리를 그려낸다. 폐허가 된 이후 각종 괴담의 진원지가 되어 CNN이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로 선정한 한국의 곤지암 정신병원처럼 영화 <그집>의 배경인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중심부의 말라사냐는 스페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은 거리라는 악명을 떨치는 곳.  
 영화 <그집> 스틸컷

영화 <그집>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말라사냐 거리 중 하나인 안토니오 그리로(Calle de Antonio Grilo)에서는 1945년의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시신을 발코니에 전시했던 일가족 살인사건, 무수한 태아의 시신들이 쌓여있던 창고 속 태아 무덤 사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실제 사건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났다. 영화 속 가족이 이사 오는 아파트 역시 실존 건물. 스페인 광장에 인접한 이 건물은 100여 년 전에 건축되어 세월만큼 많은 줄거리를 간직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포를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알베르트 핀토 감독의 연출 의도. 일상은 공포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한 가족의 모습에는 오랜 독재로 신음한 스페인의 1970년대 사회상이 투영돼 있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라고도 불리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망 직후인 1976년. 현재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하기 전의 과도기가 시대배경이다.

수도로 이주한 6명의 가족은 농촌에서 도회지로 삶의 근거를 바꾼 우리말로 이촌향도의 전형. 자본주의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가족의 불안은 공포를 작동시키는 원경이 된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도 '스페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은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이주한 시골 출신 가족은 원혼이 된 그 집의 주인처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남자이지만 여자이기를 원하고 모성을 갈구한 과거의 삶은 철저하게 부정당했고, 원귀로서 현존이 구현됨으로써 악몽의 루프에 갇힌 꼴이 된다. 그 집의 영원한 거주자이다.

따라서 그 집으로 이주한 시골 가족은 근본적으로 식객일 수밖에 없어 끝내 그 집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집을 떠나지도 못하는 게 시골의 살림을 모두 정리하여 이 집에 쏟아 부었고 추가로 대출을 받았기에 빚을 갚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다. 원귀와 빚이 공존하는 그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결말에서 밝혀지듯 누군가의 죽음뿐이다.

이촌향도는 귀향으로 대체된다. 그 거리의 그 집에 도착하며 시작한 장면은 그 거리의 그 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신원되지 못한 원혼에겐 어떤 결말이 가능할까. 죽은 자는 또 죽을 수가 없다는 숙명을 영화는 확인한다.
 
 영화 <그집>의 한 장면.

영화 <그집>의 한 장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집>은 공포영화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핵심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감독의 주장은 어느 정도 옳다. 공포영화 제작의 원천이 될 만한 실제 사건들을 발견하여 곳곳에 배치했다. 그 시대의 문제점인 시골과 도시의 양극화, 가족, 빈민, 사회적 편견 등 여러 가지 테마를 담아내기 위해 말라사냐에서 일어났던 숱한 사건들을 조합하여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중 악의라는 걸 전혀 느낄 수 없던 부분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제작진은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기 위해 대본에 세밀한 감정선을 넣었다고 설명했는데, 만일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더욱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자극적인 외인(外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문득 마주한 내인(內因)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하겠다.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다른 결을 지닌 영화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