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 SBS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해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이 각각 별개의 우주에서 공존한다는 전제 하에 스토리를 전개하는 SBS 금토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 이 드라마 속의 황제 이곤(이민호 분)은 여덟 살 때부터 고아로 성장했다. 드라마 1회 때, 그는 그 나이에 황제인 아버지를 잃었다.
 
1994년에 이곤은 숙부 이림(이정진 분)의 쿠데타로 아버지가 쓰러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의문의 인물이 출현해 구해주지 않았다면, 이곤도 그날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쿠데타로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됐지만, 이곤은 무사히 황위를 계승했다. 그런 상태로 25년이란 세월이 흘러, 지금 이 드라마는 2019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곤이 황제직을 계승하고 수행하는 데 도움을 베푼 두 명의 어른이 있다. 황실 터줏대감인 상궁 노옥남(김영옥), 황실 종친이자 이곤의 5촌 당숙인 부영군 이종인(전무송 분)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여덟 살짜리 황태자가 무사히 등극하고 황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들의 뒷받침을 받으며 이곤은 황제 지위를 공고히 했다.
 
이곤이 상궁과 당숙의 뒷받침을 받아 황위를 지킨다는 이 같은 설정이 갖는 결정적 하자가 있다. 왕조 국가의 권력 시스템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한국사의 일반적인 상황과 동떨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전개된 한국사와 비교하면 꽤 낯선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어른들이 지켜준다면, 여덟 살짜리 아이한테는 당연히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여덟 살짜리가 군주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치권력을 가진 세력, 금권을 가진 세력, 여론을 움직이는 세력, 종교를 움직이는 세력의 견제와 위협으로부터 지위를 보전해야 함은 물론이고 외국의 침략 가능성까지 의식해야 하는 군주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어린 군주를 지켜주는 가장 큰 힘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 SBS


어버이 없는 군주가 여덟 살밖에 되지 않는 경우, 노옥남 같은 상궁의 보호는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는 의미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생명이 위태한 상황에서 충직한 상궁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어딘가에 은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상궁의 도움이 어린 군주의 집권에까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종인 같은 오촌 당숙도 마찬가지다. 종친인 당숙이 어린 군주를 보호해준다면, 상궁보다는 훨씬 더 많은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친의 도움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종친의 존재가 왕권 유지에 도움이 됐다면, 한국 역사에서 이미 오래전에 종친의 후견 제도가 정착됐을 수도 있다. 그런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것은 종친의 후원이 왕권에 기여하는 바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군주를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반드시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 단종의 사례다. 제6대 주상인 단종은 만 11세에 즉위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사실,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임금이 되기에 아주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많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임금 직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어린 나이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 또래 때 왕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만 해도 여러 명이나 된다. 제9대 주상인 성종은 12세에 왕이 됐다. 제13대 주상인 명종은 11세에, 제23대 주상인 순조는 10세에, 제24대 주상인 헌종은 7세에, 제26대 주상인 고종은 12세에 됐다.
 
이들보다 약간 많은 10대 중후반에 즉위한 사례도 적지 않다. 예종·선조·숙종·철종 등이 이런 사례에 포함된다. 이처럼 10대란 나이는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될 수 없어도, 왕조국가의 군주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연령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순조와 헌종은 비록 힘은 없었지만 단종처럼 왕권을 뻬앗기지는 않았다. 성종도 어린 나이에 등극했지만 비교적 훌륭한 군주로 성장했다. 고종은 훗날 나라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상당한 투쟁력을 키워나갔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왕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왕권을 빼앗기란 법은 없었다. 이는 단종의 사례가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라 예외적인 사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물급 중신의 후원을 받았던 단종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 SBS


왕이 될 당시 단종은 김종서라는 거물급 중신의 후원을 받았다. 문신이지만 명장의 이미지를 가진 김종서가 단종 정권을 뒷받침했다. 김종서는 조정의 실권을 쥐고 다수파를 이끌었다.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최후에는 승자가 됐지만 쿠데타 전만 해도 김종서에 비해 열세였다. 그 정도로 김종서의 후원은 단종에게 큰 힘이었다.
 
그렇지만 단종 정권은 결국 무너졌다. 이는 김종서의 후원으로도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정권이 무너진 것은 김종서가 수양대군한테 목숨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종이 왕권을 잃은 것은 수양대군이 막강해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순조와 헌종은 강력한 외척(왕실 사돈)의 기에 눌렸지만 왕권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군주보다 강력한 자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종은 무엇 때문에 왕권을 빼앗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여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중국과 달리 고대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 군주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위상이 꽤 높은 편이었다. 여성이 사제직을 수행하거나 사후에 신으로 격상된 사례들도 있다. 남성 군주가 없을 때는 여성이 대비 자격으로 비상대권을 행사하거나 수렴청정(대리통치)을 수행하기도 했다.
 
한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만백성의 아버지라 자처했다. 천명을 받아 인간과 우주를 양육하는 아버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아버지가 있다면 당연히 어머니도 있을 수밖에 없다. 군주를 국부로 의제하는 전통은 또 다른 인물을 국모로 의제하는 전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왕후가 바로 그 어머니 역할을 자처했다.
 
대통령 부인을 국모라고 부르는 사례도 있지만, 만백성의 어머니인 왕후의 지위는 대통령 부인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대통령 부인의 취임식은 없지만, 왕후의 취임식 즉 책봉식은 있었다. 군주의 즉위식과 별도로 왕후의 책봉식이 거행됐던 것이다. 왕후는 군주의 동반자였지만, 동시에 독립적 위상도 함께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 군주, 여성 제사장, 여성 신(神)의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왕후는 독자적 취임식을 거친 만백성의 어머니였다. 이 지위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유지됐다. 남편이 죽으면 왕후의 위상은 오히려 강해졌다. 비상시에 신임 군주를 지정하기도 하고, 어린 군주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성종·명종·순조·헌종·고종 같은 어린 왕들이 왕위를 지킬 수 있었던 제도적 기반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왕후의 수렴청정이 그들을 지켜주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단종의 왕권을 취약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SBS 금토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한 장면 ⓒ SBS


고종의 경우에도, 그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준 것은 익종(효명세자)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의 수렴청정이었다. 이 수렴청정을 근거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했다. 고종의 최고 후견인은 신정왕후이고, 대원군은 신정왕후의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만백성의 어머니인 왕후가 대비나 왕대비 또는 대왕대비 자격으로 이런 수렴청정을 했기 때문에, 어린 왕들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왕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었다.
 
그 같은 왕후의 지위는 김종서의 권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만백성의 어머니가 어린 군주를 후원하는 것은 수천·수만의 군대가 어린 군주를 경호하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늘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훨씬 높았던 옛날 사회에서 그 같은 이미지는 쿠데타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됐다. 하늘의 위임을 받은 국모가 어린 군주를 보호하는 모습은 백성들의 마음에 정치적 안정감을 심어줬다. 백성들이 그런 안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왕실에 대한 도전자들이 세를 규합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단종의 경우에는 그런 수렴청정을 해줄 여성 어른이 없었다. 단종의 할머니이자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도 세상을 떠난 뒤였고, 단종의 어머니이자 문종의 부인인 현덕왕후 권씨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것이 단종의 왕권을 취약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만약 수렴청정을 해줄 대비가 있었다면,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함부로 죽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비까지 없애는 패륜을 범하지 않는 한, 그런 상황에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무력화시킬 길은 없었다.
 
이처럼 어린 군주를 보호하는 힘은 남성 종친이 아니라 여성 대비한테서 나왔다. 이런 구도가 안타깝게도 <더킹>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쿠데타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황태자가 오촌당숙과 상궁의 도움으로 지위를 유지하는 모습은 물론 100%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 역사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 평행하는 또 다른 우주에서라면 몰라도, 이 우주 속의 한국 역사에서는 개연성이 매우 낮은 설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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