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페인(테레사 팔머·왼쪽)의 꿈은 여성 우승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호주 최고의 경마대회 '멜버른 컵'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왼쪽)의 꿈은 여성 우승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호주 최고의 경마대회 '멜버른 컵'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 판시네마

 
영화 <겨울왕국2>(2019)를 보며 넋이 나가도록 몰입했던 장면이 있다. 주인공 엘사가 말의 형상을 띤 물의 정령 '노크'를 타고 바다 위를 질주하던 모습이다. 새파란 바다를 거침없이 건너는 엘사의 몸은 작았지만 그의 표정과 행동에선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때 스크린을 넘어 전해져온 거침없는 강렬함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마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엘사가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에서 '센' 여성 캐릭터는 남성보단 보기 힘드니까.
 
15일 개봉한 <라라걸>(감독 레이첼 그리피스)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여자라서 안 된다"라는 그러한 류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면서도 노력을 굽히지 않았던 여성 주인공. 여성 주인공이 강하고 실력을 갖췄다면 어떨까. 그래서 스포츠대회에서 남성들과 경쟁해 이긴다면 어떨까. 세상의 숱한 곳이 여전히 남성의 영역인 지금 세상에서 이 이야기는 여성의 위대한 승리다.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의 꿈은 호주 최대 경마대회인 '멜버른 컵'에서의 우승이다. 어려서부터 멜버른 컵에서 우승했던 역대 기수와 말(馬) 이름을 외울 정도로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경마뿐이다. 페인은 말 타는 법을 가르쳐준 아버지 패디 페인(샘 닐)의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작은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멜버른 컵에 맞춰져 있다.
 
<라라걸>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5년 멜버른 컵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한 미셸 페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겨왔다. 페인이 우승할 때까지 1861년에 시작해 155년의 역사를 지닌 멜버른 컵에 출전한 여성은 단 4명뿐이었다. 한 세기와 반세기를 더한 기간 동안 한 대회에 여성이 4명밖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건 실력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만큼 여성을 향한 차별과 진입장벽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셸은 모든 역경을 실력과 기회로 극복한다. 그는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고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운동을 멈추지 않고 밥도 굶었다. 2004년에는 낙마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까지 왔지만 피나는 재활로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쟁취해낸다. 자신과의 경쟁을 넘어 세상과의 편견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를 악무는 미셸을 보면 성(性)을 가지고 판단하는 인간의 시각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영화 <라라걸>의 한 장면.

영화 <라라걸>의 한 장면. ⓒ 판시네마

  
미셸은 어떤 주변의 차별이나 편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영화 속 이야기에서 역경보다 열정의 냄새가 더 풍기는 이유다. 미셸을 연기한 테레사 팔머의 연기도 한몫 한다. 웃음기 없지만 또렷한 눈빛,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들이 표정에 잘 담겼다.

레이첼 크리피스 감독은 "미셸과 페인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성취를 했는지 하나하나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저는 <라라걸>로 '여성의 열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 주인공의 오빠인 스티비 페인이 영화 속 미셸의 오빠로 등장하는 건 영화 속 즐거움이다. 스티비는 다운증후군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마필관리사로 이름을 날렸고 미셸의 우승마를 관리했다. 이번 작품엣 자신이 했던 일을 연기해 따뜻한 웃음을 준다.
 
다만, 미셸이 멜버른 컵에 진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매끄럽게 그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경마대회의 생리를 모르는 관객이라면 어리둥절할 수 있다. '3200번 출전·16번 골절·7번 낙마'라는 글귀를 구체적 장면 없이 글로만 보여준 점도 그렇다.

원제인 '라이드 라이크 어 걸'(Ride Like a Girl)은 '여자처럼'(Like a girl)이라는 표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글로벌 캠페인에서 따왔다. 다만 원제의 단어 앞글자만 따 만든 한국판 제목은 영화 내용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 98분. 전체 관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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