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늘 소원했던 가족들이 함께 있으면 좋을 줄 알았다. 아마도 이건 이상적인 로망이었나 보다. 봉쇄된 2달 동안 중국 후베이성에서 가정 폭력이 2배나 늘었다고 한다. 중국뿐인가, 프랑스, 영국, 북아일랜드 등 가정 폭력 신고 건수가 몇십 프로씩 증가 중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신고 건수가 줄었다고 한다. 가정의 평화를 찾아서? 외려 전문가들은 '신고' 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하소연은 이어진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빠, 엄마들은 매끼 식사를 해결하느라 지쳐간다. 함께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더 힘들다. 가족 때문에 지쳐갈 때 박카스 같은 영화 한 편,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을 추천한다.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 찬란

 
보드게임밖에 모르는 아버지

영화를 여는 사람은 바닷가를 서성이는 아버지 앨런이다. 이미 바닷가에 와서 서성이면서도 짐짓 아직 도착도 안 한 듯 시치미를 떼 보지만 갈매기 소리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나버리고 마는 속이 뻔히 보이는 늙수그레한 아버지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배우 빌 나이가 연기한다. 

빌 나이하면 생소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바웃 타임>에서 이미 오래도록 옷장 속을 들락거리며 시간을 왔다갔다 했다던 노회한 선배 타임 슬리퍼 아버지를 떠올리면 된다. 거기에 <러브 액츄얼리>에서 한물 두물 아니 세물도 더 간, 대놓고 자기가 막 살았다며, 크리스마스 이브에 1등의 기적이 생기면 옷을 벗겠다던, 그래서 기타 하나로만 몸을 가린 채 1위 퍼포먼스를 한 록 스피릿 충만한 노년의 록스타라면 어떨까?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그의 연기를 통해 감정이 흔들리게 되는 빌 나이야말로, 할 줄 아는 거라곤 보드게임밖에 없는 아버지 역에 제격이다.

그 보드게임이 사단이었다. 피터가 어렸을 때, 아버지, 형과 보드게임을 하다가 형이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 피터가 결혼을 하고 아들이 청소년이 즈음까지도 아버지는 실종된 형을 찾는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신원불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아버지와 피터는 이제 이 바닷가에서 만나 그 신원불명의 시체가 형인지 확인하러 갈 예정이다. 

뜬금없이 아이스크림 트럭에 다가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대신 아들의 그림을 자랑하는 아버지, 당연히 돌아오는 건 아이스크림 트럭 주인의 냉랭한 응대다. 그렇듯 아버지는 어딘가 세상과 핀트가 좀 어긋나 보인다. 그런 와중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형의 실종 전단지를 붙인다.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 찬란

 
그런데 아버지가 잘 하는 게 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피터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아버지와 피터. 그곳 호텔 1층 바에서 아버지는 자신들처럼 혹시나 신원불명의 시체가 자신들의 아들일까 하고 온 부부를 상대로 보드게임을 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영화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인간적'이다. 그리고 '가족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이라는 단어는 우리는 흔히 말하는 그 인간미라던가, 휴머니즘의 그 '인간적'이 아니다. 

가족들끼리 자주 부대끼니 부부 사이의 스킨쉽도 많아지겠다는 너스레에 상대방은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냐'라고 답한다. 그런 식이다. '가족'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단위이지만, 가족만큼 '데면데면'한 사이가 있을까. 바로 그 세상에 둘도 없이 '데면데면한 '사이인 그 가족의 '인간미', 그럼에도 '가족'이라서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애증을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은유법'처럼 풀어놓는다.

할 줄 아는 게 '보드게임' 밖에 없는 아버지, 아들이 떠나간 그 날도 보드게임을 했다. 여전히 그 시절 아들의 얼굴이 담긴 실종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지만, 막상 아들에 대한 기억이 없다. '보드게임'으로 상징되었지만, 많은 아빠들이 그러지 않을까? 뜬금없이 자식 자랑을 하고, 어릴 적 집 나간 아들을 놓지 못하지만, 막상 그 아들들에 대해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눈치 없는 소리만 하고. 자기 멋대로이다. 

아들은 다를까. 어릴 적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인해 늘 짝퉁만 사 왔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켜켜이 쌓인 듯한 아들. 여전히 그럼에도 보드게임만 하는 아버지를 참을 수 없는 아들. 그리고 아버지와 다르다고 하지만 형의 실종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애증의 공동체.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 찬란

 
행복의 단추는 어떻게 채울까

이 평행선을 달리던 아버지와 아들은 어떻게 다시 행복의 단추를 채우게 되었을까? 결국 그 해법은 서로가 그어놓은 선에서 한 발자국씩 들어서는 것이다. 큰 아들만 찾으러 다니던 아버지, 그래서 그 아들이 떠난 날부터 매일 밤 밤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오랜 배회 끝에 아들 집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 해프닝은 뜻밖에 서먹서먹했던 아들 집 가정의 청신호로 작용한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온 곳에 형의 전단지를 붙여놓은 채 칩거한 아버지를 찾은 아들은 비로소 속내를 펼친다. 아버지도 안다. 그 불평불만만 늘어놓던 아들은 누구보다 아버지의 안타까움을 제일 잘, 오래 지켜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들이 바라는 건 별거 아니다. 형이 떠난 그 날부터 아버지의 곁에 있었던, 그 옆에 있었던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던 '가족'으로서의 소박한 소망뿐이다. 그 별거 아닌 소망을 솔직하게 터놓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가족이라 서로 기대하고 그래서 실망하며 풀기 어려운 난제에 굽이굽이 다가가는 오솔길 같은 영화다.  

다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들먹일 수밖에 없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연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오랫동안 양복점을 해왔던 할아버지는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손주에게 양복 한 벌을 선사하며, 멋쟁이의 팁을 전수한다.

양복 단추를 전부 잠그지 않는 것. 행복도 마찬가지 아닐까.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은 단추 하나를 열어놓듯 서로에 대한 마음과 태도 한 자락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래야 비슷하게나마 행복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결국 단추를 채우는 게 아니라 열어놓는 것, 이게 영화가 제시한 해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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