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봐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코로나 19'로 인한 극장가의 연이은 침체기 속에서도 독립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지난 25일 2만 관객을 돌파했다. 주인공 찬실(강말금 분)은 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40대 여성이다. 한때 영화 프로듀서였던 찬실이는 줄곧 같이 일하던 감독의 급사 이후 실업자가 되고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차이는 쓰라린 아픔을 겪지만 그럼에도 용기내어 다시 일어나는 모습으로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무엇을 하던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찬실이에게는 그녀의 재기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찬실이가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게끔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여성 캐릭터와 그녀들이 남긴 인상깊은 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동료 영화인의 재기를 돕는 의리파 여배우 소피 

"언니, 이런 산 공기를 쐬고도 다시 못 일어나면 언닌 사람도 아니야."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먹고 살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한다. 일과 돈이 뚝 끊겨버린 찬실이에게 가사 도우미 일자리를 제공한 여배우 소피(윤승아 분)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찬실이가 먹고 살 수 있게끔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찬실이 뿐만 아니라 단편영화 감독으로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영(배유람 분) 또한 소피에게 불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내 이름이 소피잖아. 근심도 소, 회피할 피. 소피. 도저히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생각한다고 생각이 되는 게 아니라구." 

찬실이가 망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는 의리녀 소피는 뭐든 잘 잊어먹는 성격 때문에 찬실의 걱정을 사기도 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생각이 많아진 찬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의 선망을 받는 여배우에 타고난 낙천주의자처럼 보이는 소피의 삶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해맑은 그녀도 때로는 혼신을 다해 연기한 장면을 배우 동의 없이 맘대로 잘라먹는 감독에게 상처받고, '발연기'라는 댓글에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면 소피가 매일 술을 마시고, 잘 때 빼고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들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격렬한 몸부림이 아닐까. 여배우라는 편견과 차별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주변의 어려운 영화인들의 자립을 돕는 소피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할머니가 보여준 세대 차이 뛰어넘는 여성연대 

"우리 어릴 적에는 여자가 글 배우면 바람난다고 학교도 안 보냈어." 

찬실이가 '망한' 이후 이사간 산동네 집주인 할머니(윤여정 분)는 딸 같은 찬실이가 내심 반갑다. 찬실이와 친해지기 전 만해도 "그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 가고 뭐했어", "얼마나 이상한 일을 했으면 한 사람도 몰라" 등 의도치 않게 찬실의 속을 박박 긁어놓았던 할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찬실이에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준다. 

할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하나 있던 딸도 먼저 보내고, 글 읽어줄 사람이 없어서 갑갑한 마음에 뒤늦게 한글을 배운다. 그러면서도 점점 야위어가는 찬실이가 보기 안쓰러운지 종종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준다. 가는 정이 있다면 오는 정이 있듯이 찬실이 또한 할머니의 한글 숙제를 도와주며 우정을 쌓는다. 

'사라도 꼬처럼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씁미까(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에 두고 있던 영에게 차이고 더욱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 찬실이에게 본인이 직접 쓴 시 한 구절로 그녀의 마음을 울리는 할머니는 하고 싶은 건 없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일만 애써서 한다는 점에서 매사 성실히 살아온 찬실이와 닮아 있다.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 두 여성의 동행.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든든한 지주목이 되어주는 여성들의 따뜻한 연대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편,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는 찬실이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할머니 역에 대배우 윤여정이 맡게된 계기는 김초희 감독과의 오랜 인연에서 비롯된다. 찬실이가 소피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 설정 또한 김초희 감독이 영화를 그만두려고 할 당시 사투리 연기강습을 제안했던 윤여정의 영향에서 시작되었다는 일화 또한 화제다. 영화 프로듀서를 그만둔 이후 오랜 부침에 시달렸다던 김초희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승화시킨 멋진 데뷔작을 만들게 기여한 공로자 윤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삶을 헤쳐 나가고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해주는 여성 캐릭터와, 실제 김초희 감독과 영화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윤여정의 존재감이 든든하게 다가오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극장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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