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얼마 전 씁쓸한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앞으로 2주가 분수령'이라는 소리를 한 달째 듣고 있다는 것"이다. 마스크 쓰고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신천지 교인에서부터 시작된 집단 감염 사태가 있었고 이제 나아지려나 했는데 또 다른 교회에서 확진자가 대거 쏟아졌다. 이젠 좀 줄어들려나 했는데 최근엔 해외에서 확진자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협조했던 사람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실하게 해왔던 격리를 이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 심장병, 치매, 우울증 등의 발병이 늘어난다고도 한다. 개개인의 정신 및 신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답'은 없다. 이럴 때일수록 결국 스스로 열심히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참고할 만한 영화가 있다. 바로, 지난 26일 개봉한 <모리의 정원>이다. 
 
 영화 <모리의 정원> 포스터

영화 <모리의 정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은둔? 아니 정원이 너무 넓을 뿐

일본의 정원하면 곱게 다듬은 나무, 정갈한 바위, 수풀과 붉은 잉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는 연못을 떠올릴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하지만 알고 보면 자연을 뺨칠 만큼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인간의 지대한 노력이 경주된 곳. 그래서 곳곳의 정원들은 그 자체로 유명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리의 정원>에 등장하는 정원은 그렇게 인간의 손길이 더해진 '풍광' 좋은 정원이 아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에 조금 넓은 수풀이 우거진 마당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곳이다.

물론 모리의 정원엔 연못도 있다. 모리가 30년이나 가꾼 그 연못은 특별하게 다듬은 산물이 아니다. 이젠 94세가 된 모리가 홀로 구덩이를 파서 연못을 만드느라 오랜 시간을 쏟은 곳이다. 구덩이를 파서 빗물이 고여 저절로 연못이 된 곳. 그곳에 강가에서 옮겨온 송사리가 산다. 좋게 말해 연못이지, 물 구덩이에 가까워 보이는 그곳이 날마다 모리가 시간을 보내는 연못이다.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풀이 무성한 마당에 오늘도 94살 모리는 출근을 하신다. 집 앞에서 빨래를 널던 아내는 머리 숙여 다녀오시라 한다. 옷을 여미고 허리춤에 주머니를 찬 채 나막신을 신고 지팡이 두 개를 짚은 모리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호기롭게 길을 떠났다. 그 기세에 길을 가던 도마뱀이 혼비백산 수풀로 몸을 피한다. 

그런데 길을 따라 방향을 튼 모리가 자신의 길을 막은 여리여리한 나뭇가지 하나에 그만 시선을 빼앗긴다. 눈이 휘둥그레해진 모리,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겨우 나뭇가지와 헤어지니 이번에는 흰 고양이 한 마리다. "이보게" 하고 인사를 청한다. 이어 나풀나풀 나비에게 "어디에서 날아오셨나?"며 매료된다. 마치 나비에게 시선을 빼앗겨 무릉도원으로 찾아간 옛날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이리저리 시선을 빼앗긴 모리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아내가 배웅하던 그 집 앞이다. 여전히 빨래를 널고 있던 아내와 눈이 마주친 모리는 한탄하듯 말한다. "연못이 멀구만."

이런 식이니 연못까지 가는 것만 해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겨우 연못에 도달하면 눈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송사리 몇 마리에 시선을 빼앗겨 한 나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개미는 어떨까? 바닥에 머리를 대고 개미를 바라보기만 하는 게 얼마 동안이었는지. 모리를 기록으로 남기려 찾아온 포토그래퍼에게 그는 자신의 발견을 전한다.

"요즘 알게 된건데 개미는 왼쪽 두번째 다리부터 움직인다네."

모리의 발견에 공감하기 위해 그날 하루 종일 개미와 눈높이를 맞추던 포토그래퍼와 그 제자는 결국 눈을 비비며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30년 세월을 헤맨 정원은 결코 좁지 않다. 나무통, 휘어진 나무, 뒤집힌 화분, 그루터기 14군데까지. 자신만의 쉼터를 전전하며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히 넓은 정원에서 모리에겐 매일매일이 새롭다. 그런 자신을 두고 신선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평가를 모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내, 조카가 함께 앉은 밥상에서 모리는 펜치까지 동원해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반찬을 뿌리는 괴팍한 노인이다. 반면 하루종일 개미를 보느라 바닥에 누워있는 모리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격리의 시대라지만, 밖은 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계절이다. 해마다 피는 꽃이건만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에 대해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렇게 보면, 새로 뻗어난 가지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리와 우리가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도대체 어느 만큼 '마이크로'한 시선을 견지하면 개미가 움직일 때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이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마음 속에 새기는 '참을 인'자가 아니라, 좁은 마당도 우주보다 넓게 볼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바로 그런 모리의 사고 방식이 아닐까. 30년 만에 개미의 왼쪽 두 번째 뒷다리의 움직임을 깨달은 모리다운, 아이처럼 순수한 그의 그림은 영화 속 당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이는 우리 역시 마음 속에 그와 같은 지향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일 것이다. 

모리의 정원은 그저 모리의 출근처만은 아니다. 94세 당대 최고의 화가조차도 학교라 하며 가기 싫어하지만, 매일 밤 등교해서 그린 그림의 대상일 뿐도 아니다. 주변에 아파트가 생겨 마당에 그늘이 드리워지게 생긴 상황, 찾아온 아파트 건축 업자에게 모리의 아내는 말한다. 이곳은 남편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벌레와 나무와 고양이와 새가 함께 사는 공간이라고.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영화 속에서 모리는 자신의 조용한 삶을 흐트러 뜨리는 사람들의 방문을 마땅찮아 한다. 하지만 웬걸, 모리의 집에는 하루 종일 드나드는 사람들로 매양 분주하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볼일을 보겠다고 찾아온 인부에서부터, 그의 그림을 얻겠다 찾아온 사람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를 사람들까지. 우리 역시 지금 격리된 공간에서, 본의 아니게 버려진 것들에 대해 아쉬워 하는 대신 혹시나 그것들이 모리처럼 새로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지. 

<모리의 정원> 주인공인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는 실제로 1932년에 집을 지어 1977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분한 야마자키 츠토무의 권유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소박하게 자연 속에서 살며 사망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의 세계를 '자연을 향해 열린 세계관'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또 이를 통해 '물질 문명'에 젖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한다.

2018년 상하이, 밴쿠버, 샌디에이고 등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 후보로 지정되기도 한 <모리의 정원>은 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그 어떤 작품보다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극장에 가서 햇빛이 가득찬 푸르른 정원과 그곳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리 부부를 꼭 보시라고 권유하기가 무색한 이 시간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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