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아닌' 포스터

'그 누구도 아닌'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의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라는 이 영화의 문구는 낯설지만 공감을 준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문구가 마치 영화 <화차>처럼 반전에 해당되는 삶을 보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모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누구도 아닌>은 네 명의 캐릭터를 통해 한 명의 주인공을 말한다. 이 네 명의 캐릭터는 각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고 생김새에 있어서도 차이를 지니고 있기에 명확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영화의 설정은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야 말로 왜 한 명의 인물이 계속 자신의 모습을 바꿔나갔는지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작은 27살의 르네다. 파리에서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과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타라라는 여성이 그녀를 방문한다. 르네를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는 타라는 그녀가 자신들에게서 돈을 가로챘다며 거액을 요구한다. 르네는 저항 없이 타라의 요구대로 적금을 깨가면서 돈을 지급한다. 그리고 찾아올 줄 알았던 평화는 처참히 무너진다.
 
경찰이 르네의 집에 들이닥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른 이름으로 르네를 부른다. 잘못 찾아온 게 분명하다 고함을 치는 남편과 달리 르네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작품은 이 '르네의 정체'라는 미스터리를 세 명의 캐릭터를 통해 풀어낸다. 산드라, 카린, 키키는 각각 르네의 20살, 10대, 유년시절의 이름들이다. 이들은 생김새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울한 환경과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환경이다.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 환경은 르네->산드라->카린->키키로 이어지는 역순행적 구조에서 각 인물들이 벌이는 행동과 선택의 근거로 작용한다. 왜 인물이 이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 왜 이런 환경에 몰렸는지에 대한 근거가 과거를 통해 증명되는 것이다. 20세의 산드라는 대학 진학 실패 후 '양자를 구한다'는 광고에 연락한다. 광고를 낸 레브는 성관계가 아닌 경마장에서 자신의 일을 도울 것을 요구하지만 산드라는 굳이 성관계를 요구한다.
 
이 관계에 대한 의문은 카린을 통해 알 수 있다. 10대 시절 집에서 가출한 카린은 폭력에 노출된다. 남성들의 폭력의 그녀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다. 이때 그녀가 살아남은 방법은 성을 파는 것이었다. 적어도 성을 팔면 맞지 않고 잠잘 곳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10대의 카린은 20살 산드라의 모습이 된다. 유년의 키키는 왜 르네가 이런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삶은 첫 단추인 부모부터 투쟁의 연속이었다.
 
숨바꼭질 중 사라진 친구들을 찾는 과정에서 키키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성격과 무책임한 어머니,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소외와 고독을 느낀다. 이 복잡한 감정은 이후 키키가 르네가 될 때까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녀에게는 따뜻한 부모도, 안락한 환경도,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이 변화나 투쟁이라는 원리 안에 있다고 보았다. 만물이 대립 속에서 변화함을 강조했던 그는 뜨거움이 있어야 차가움이 있고 악이 있어야 선이 있다고 보았다. 삶을 투쟁이라 말하는 이유는 그 투쟁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둠을 보지 못한 사람은 빛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감독 아르노 데 팔리에르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 호흡을 맞춘 각본가 크리스텔 베르테바스에게 그녀의 과거와 젊음에 대해 상세하게 글을 써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그 글을 통해 한 여성이 지금의 '나'를 찾기까지 어떤 모습을 지녔고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또 이것이 어떤 변화를 이뤄왔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원제 'Orpheline'가 고아의 여성을 의미하는 거처럼 고아처럼 살아온 르네(그리고 같은 세 명의 여성)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의 감성은 특별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지난 개인의 삶에서 '누구도 아닌' 자신을 만들어 온 역사를 지닌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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