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 포스터.

영화 <1917> 포스터. ⓒ 스마일이엔티

 
샘 멘데스 감독이 20년 만에 일을 냈다. 지난 1999년 세기말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민낯을 정교하게 까발린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그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수많은 영화 시상식들은 모두 샘 멘데스와 <아메리칸 뷰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스릴러, 전쟁,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007> 두 편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리고 2019년, 세상에 정식으로 공개되기도 전에 평론의 압도적인, 아니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화계에 충격을 던진 영화가 있으니 샘 멘데스의 7번째 작품 <1917>이다. 아카데미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골든글러브와 크리스틱초이스에서 각각 작품상, 감독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의 주요 부문을 <기생충>에 넘기고 촬영상, 음악믹싱상, 시각효과상의 비(非)메인 부분에서 수상했다. <기생충>의 기적 같은 행보에 가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품성이 어디 가진 않는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1917>은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후반기로 접어든 1917년의 어느 전장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영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영화를 통해 더 이상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에 천착하는 수많은 명작들이 우리의 오감을 충분히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의 명작 전쟁영화라 기억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만 해도 전쟁영화라기 보다 재난영화에 걸맞지 않는가. 전쟁영화에서 전쟁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것이다. 이 영화도 그러할 것인지 궁금하다. 

1600명을 구하러 떠난 두 졸병

1917년 4월 6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 아무나 한 명 데리고 오라는 병장의 말을 듣고 블레이크는 함께 쉬고 있던 동기 스코필드와 함께 간다. 그들이 향한 곳은 사령관 에린무어 장군의 막사, 사령관은 그들에게 기가 막힌 임무를 하달한다. 지도를 잘 보는 블레이크로 하여금 동기와 함께 데본즈 2연대로 가서 지휘관 매켄지 대령한테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2연대 1600여 명이 후퇴하는 독일군을 쫓는다고 하였는데, 사실 독일군은 전략적 후퇴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의 형을 포함한 2연대를 살리기 위해 불과 얼마 전까지 적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을 통과해 하루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크후와시으 숲에서 2연대와 조우해야 했다. 무인지대를 지나 독일군 진영을 지나 이쿠스트 마을을 지나는 여정이었다. 해가 떨어지면 출발하자는 스코필드의 말을 자르고 블레이크는 호기롭게 한낮에 바로 출발한다. 

무인지대를 무사히 통과한 후 독일군 참호에 들어갔다가 함정에 빠져 다치고 만 스코필드,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다시 출발해 마을에 들어선 그들, 공중전을 구경한다. 곧 독일군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블레이크가 섣불리 도와주려다가 외려 칼을 맞고 만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블레이크... 이제 스코필드 혼자 말도 되지 않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고 진짜 여정을 떠난다. 그는 과연 2연대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진 완벽한 '촬영'

영화 <1917>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와 영화가 내보이는 메시지에서 명백한 특장점을 보인다. 한두 가지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함을 지향하려 했고,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들어맞았다. 특히 바로 눈에 들어오는 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슈퍼 롱테이크다. 이 정도면 원테이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롱테이크 기술이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순 없지만, 좋은 롱테이크는 수작, 명작의 충분조건이다. 

이 영화는 더군다나 족히 80% 이상은 외부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촬영에 있어 조명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데, 자연의 빛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두 촬영 기술을 접목시켜 환상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한 가지 얹히자면, 전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전장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작업 또한 선결되어야 했을 테다. 

이 작업을 완벽하게 완료하여 사실상 영화의 완성도를 책임진 장본인은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이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은, 코엔 형제와 드니 빌뇌브와 샘 멘데스 감독 등 거장들의 작품을 도맡아 한 데서 자연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빛의 마술사' '무관의 제왕' 등으로 불린 그는,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는데 무려 14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지난 90회 아카데미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촬영상을 수상했고 이번 92회에서 <1917>로 수상하였다. 과연, 그가 아니면 안 되는 결과였다.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다

<1917>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샘 멘데스가 할아버지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필모 최초로 각본에 참여했다는 하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의 이어짐은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메시지는 궤를 같이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희생의 메시지로 인류애를 전하려 했다면, <1917>은 수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여정을 떠나는 한 명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려 했다. 

<1917>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떠앉은 말단 졸병의 힘겨운 여정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전쟁영화이지만 전투나 전쟁의 모습이 거의 비춰지지 않고, 대신 스코필드로 하여금 목적지까지 가게끔 도와주는 인물들과 적군보다 더 문제시되는 환경과 시간이 있을 뿐이다.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등 초호화 멤버들이 그야말로 한 시퀀스만을 위해, 즉 영화를 위해 기꺼이 얼굴을 비췄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이들은 그 무게감이나 중요도에선 조연급이지만 얼굴을 비춘 시간은 카메오급이란 것이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여정이 갖는 철학적 함의는 환경과 시간에서 연유된다. 수천 만의 군인이 생사를 가르는 전쟁(제1차 세계대전은 협상국과 동맹국 도합 70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었다)에서 개인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테다. 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은 보병의 힘이 극대화된 참호전의 양상을 띄었기에, 한낱 보병 개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도구에 불과했다. 

<1917>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1600명의 연대 병력을 살리는 모습을 내보이며, 개인의 정체성, 중요성, 위대함을 상기시켰다. 우린 영화를 보며 응원하게 된다. 독일군도 영국군도 아닌, 동맹국도 협상국도 아닌,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를 말이다. 블레이크가 죽고 나선 스코필드에게 오롯이 가닿는 시선과 마음의 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명작 전쟁영화가 탄생했다. 이래서 전쟁영화는 계속되나 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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