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돈 앞에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 군상을 들여다본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윤여정, 정가람, 신현빈 등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충분히 화제성이 크다. 그 많은 캐릭터가 오로지 '돈'이란 욕망 앞에서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기막힌 스토리텔링과 달려 나간다. 연기 구멍 또한 없다. 그 자신감은 탄탄한 서사가 주는 힘, 각기 다른 매력의 캐릭터의 어울림과 호흡의 합이라 하겠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인물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빈틈없이 담아냈다. 활자와 영상의 차이, 일본의 사회상과 한국의 차이 등 분명 두 작품은 다르지만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영화 각색이 진행된 점은 고무적이다. 누가 누구의 등을 치고, 꼬임에 빠질지 한시도 한눈 팔 시간을 주지 않고 부지런히 질주한다.

김용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장편 데뷔작이다.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만들었다. 대사 하나하나까지 원작과 같은 부분이 많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을 편집해 감각적인 영상으로 옮겼다. 누가 포식자인지 알 수 없는 함정이 잘 드러났다.

방대한 인물들을 108분 러닝타임 속에 욱여넣기 위해 특징은 강하게, 각자의 스토리는 간략함을 택한다. 전도연은 영화 시작 후 1시간쯤 등장한다. 뒤늦은 등장이지만 장악력만은 108분 내내 압도한다. 돈가방은 일종의 맥거핀이며 돈 냄새를 맡은 짐승들의 케미가 폭발한다. 필자는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었지만 특징만 잡아 간결하게 털어 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 받았다.

활강하는 캐릭터의 케미 폭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앙상블의 영화다. 돈에 미친 캐릭터가 살아있는 활어처럼 튀어 오른다. 캐릭터 소개만 하더라도 영화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다. 서로가 외로운 섬처럼 독립적이면서도 각자의 캐릭터와 조우할 때 발현되는 시너지가 전체적인 색감이다.

전도연의 맡은 연희라는 캐릭터는 가장 늦게 등장하지만 영화의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관장하는 강력함을 지녔다. 연희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카멜레온처럼 관계를 압도한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가워진다.

정우성이 맡은 태영이란 캐릭터는 출입국사무소 행정관이다. 연인 연희가 빚을 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고리대금업자 박사장(정만식)에게 시시때때로 휘둘리고 있는 중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나 여기저기 허점이 보인다.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가 아니면 피우지 않는 징크스에 발목 잡힌 우매한 인간이다.

배성우가 맡은 중만은 아내(진경)와 치매 어머니(윤여정)와 힘겹게 살고 있다. 잘나가던 횟집이 망하고 사우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이다. 어쩌면 가장 순수한 욕망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원작의 수동적인 캐릭터를 능동적인 캐릭터로 보완했다. 뭔가 열심히 해보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신현빈이 맡은 미란은 빚과 남편의 폭력으로 삶이 파탄 나버린 주부다. 중국에서 밀입국한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를 만나 새 출발을 꿈꾸지만 삶은 좀처럼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장인 연희와 가까워지며 걷잡을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큰 인물이다.

돈 때문에 짐승으로 전락한 사람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을 상징한다. 돈 때문에 믿음을 져버리고, 돈 때문에 하지도 않을 짓을 한다. 돈 앞에서 휘둘리는 인간은 한낱 짐승이 되기 십상이다. 영화는 짐승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담았다. 상위 포식자인를 쉽게 파악할 수 없어 흥미진진하다. 자신의 신념을 맹신하다 자멸하거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일에 연루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행운과 불행이 공존하는 삶이다. 무엇을 믿든지 너무 깊게 관여해 버리면 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다.

영화는 단순한 시간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캐릭터 간 시간의 혼재를 각장을 빌어 영리하게 배치했다.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시간차가 발생하지만 엉키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된다. 예측 불가능한 서사구조는 결말을 향해 빠르게 치닫는다. 빚, 호구, 먹이사슬, 상어, 럭키 스트라이크, 돈가방 총 6장의 섹션을 나눠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흐름을 잡아주고 있다. 서로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가 접목되고 윤곽이 또렷해진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진정한 주인공은 '돈가방'이다. 돈가방의 시점 같은 강렬한 오프닝은 돈가방이 이동하기 위한 수단(사람)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갖고 튀는 사람들은 돈가방을 욕망해 안달복달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의 반지처럼 갖고자 할수록 가질 수 없는 신비한 물건처럼 여겨진다.

이들은 다들 빚이 있는 사람들이다.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잘 살고 싶어 아등바등 한 대가는 빚뿐이다. 얼마나 절망적인지는 가냘픈 지푸라기라도 벼랑 끝에서 움켜잡고 있다는 표현으로 대변된다. 나이 들어 취직할 곳도 마땅치 않고, 가장이지만 딸내미 학자금 대출조차 막혀버린 상황.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돈을 빌렸지만 연인은 사라지고 빚잔치에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공무원, 폭력 남편과 빚 때문에 성매매까지 내몰리는 여성 등. 돈 나올 구석을 찾아 고군분투하지만 늪에 빠진 발을 건지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기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돈가방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나열하는 작은 사치를 부리면 그만이지만 너무 많은 돈은 삶을 살아가는 걸림돌이 될 뿐 윤택함 주지 못한다. 몽상과 상상만으로는 잠깐 행복하나 돈가방을 얻은 경유가 불온할 경우 불안, 공포, 양심의 가책이 시작된다. 과연 돈 앞에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 누가 있을까. 영화는 그 점을 제대로 간파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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