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 포스터.

영화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 포스터. ⓒ Netflix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고, 화장실에서는 전보다 더 자주 의식적으로 손을 씻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당장 이번 코로나-19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모두가 고민에 빠져 있는 지금, 한발짝 떨어져서 전염병 자체에 대한 고찰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에 아주 시의적절한 다큐멘터리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하 <판데믹>)이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전염병이 던지는 사회적 질문들 
  
 <판데믹>의 한 장면. 병원균 전문가인 사이라 마다드(Syra Madad) 박사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고 말한다.

<판데믹>의 한 장면. 병원균 전문가인 사이라 마다드(Syra Madad) 박사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고 말한다. ⓒ Netflix


다큐는 미국 뉴욕시 보건병원공사의 직원들의 전염병 대비 모의훈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모의훈련의 주된 목적은 '의료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모의훈련은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함이 아닌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가운을 갈아입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급하게 삽관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가운을 갈아입기 보다는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사 본인들이 전염병에 노출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의료 노동자들이 메르스와 사스에 감염된 사례가 많이 보고되기도 했고.

병원균 전문가인 사이라 마다드(Syra Madad) 박사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뉴욕시의 시립 병원들이 전염병 발발 시 대비하게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 한 사람으로도 전염병 발병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임무는 뉴욕시 안에 바이러스를 가둬 놓는 것이다. 
 
 <판데믹>의 한 장면. 전염병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문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판데믹>의 한 장면. 전염병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문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 Netflix

 
전염병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문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아무리 좋은 방역 시스템이 있고 좋은 치료제가 있다 한들, 시민들이 믿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셈이니까. 백신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대표적으로, 의료 전문가나 보건당국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들에게 있어 백신접종을 강화하는 것은 다큐에 나온 한 백신 거부자의 말을 빌리면 "(백신을 맞지 않을) 우리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 된다. 

백신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사소하지 않다. 다큐는 미국 오리건 주에서 열린 백신접종 강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비춘다. 다양한 피켓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우리 권리에서 손 떼(Hands off our rights)"가 유독 강렬하다. 소아과 의사 출신의 오리건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헤이워드(Elizabeth Hayward)는 해당 법안과 관련하여 엄청난 항의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공중보건이 강화되어야 하는 시점에, 입법부에 압력을 넣을 힘이 있는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압박을 하는 중이다. 2019년에만 해도 미국 전역에서 홍역에 걸린 환자가 약 700명이 나왔는데, 미 보건당국은 백신에 대한 오해가 홍역 발병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홍역 환자 대부분이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은퇴한 간호사 수잔 플리스(Susan Flis)는 "백신이 있는데도 안 맞는 건 이상한 일"이라면서 백신 거부에 의한 사망은 인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 국경의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인데, 특히 그들에게 백신 예방접종을 맞게 하는 일은 그의 일이다. 이민자에 대한 백신접종 프로그램을 기획한 소아과 의사 이브 샤피로(Eve Shapiro)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던 난민들이 제대로 백신을 제공받지 못하면 공중 보건이 붕괴될 거라고 걱정한다. 

우리의 일상이 된 전염병 
   
 <판데믹>의 한 장면. 어떤 독감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공통 독감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있다.

<판데믹>의 한 장면. 어떤 독감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공통 독감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있다. ⓒ Netflix

 
​​​​​다시 사이라 마다드 박사의 말을 빌리면, 전염병의 발발은 통상적인 전쟁보다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임에도 일상에 매몰되어 곧잘 잊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하기 전에는 전염병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백신 개발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다큐는 비춘다. 그 어떤 독감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공통 독감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있다. 제이크 글랜빌(Jake Glanville)은 세계 최초의 공통 독감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학회에 나가서 백신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는 "우리가 개발해 낸 백신 기술은 단언컨대 위생시설과 불 이래 가장 뛰어난 진보"라고 하면서도 "빠르게 변이하는 바이러스엔 효과가 없다"며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공통 백신이 언제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이크와 동료들은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게이츠 재단의 연구사업 지원 프로그램에 공모를 하고 최종 선정되게 된다. 이후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진전을 거치면서 희망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그 동안 사람들은 바이러스로부터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다큐는 중간중간에 인도에서 퍼지고 있는 돼지독감과의 사투를 비춘다. 의료 인프라는 열악해서 교대근무를 하기 힘들고, 두 달 동안 가족도 못 보고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건 예삿일이다. 결국 백신의 개발은 아픈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전문가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판데믹>은 단순히 전염병이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문화 및 정치적인 상황과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거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단순히 전염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인프라 구축은 어디가 필요한지에 대해 점점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전염병의 문제는 결국 공동체의 문제임을 <판데믹>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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