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시사직격>의 한 장면.

KBS1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기생충>이란 영화는 블랙코미디와 스릴러이자 강력한 메타포입니다." (송강호)
"한 지붕 아래에서 벌어지는 계급 간 갈등을 보여주지만 몇몇은 그 갈등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박소담)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인물의 편을 들어줘야 할지 마음이 계속 바뀌는 걸 느끼실 겁니다." (이선균)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죠.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당일까요." (이정은)
"영화관을 떠난 후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로) 배우상 후보가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영화 <기생충>입니다." (최우식)


<기생충>의 출연 배우들이 무대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우리말로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소개한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영화 시상식 풍경일 수 있다. 이어 '기우' 최우식이 영화 제목을 '패러사이트'라고 발음한다. 그 반대편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이들 한국 배우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기생충>을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선 배우들의 모습은 실로 '초'현실적이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오는 9일(현지시간) 열리는 제7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을 앞두고 한 달 넘게 ' 레이스'를 펼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만들어가는 믿을 수 없는 현재를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7일 방송된 KBS1 <시사직격>이 담아낸 풍경이다. 봉 감독과 <기생충>의 팬이라면 부지런히 외신과 유튜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따라잡아왔을 장면이긴 했다. 하지만 지상파 공영방송을 통해 확인하는 영화 <기생충>의 '할리우드 상륙기'를 '모아서' 보는 감흥은 또 남달랐다. 이날 <시사직격>이 "같이 잘 살자"란 부제를 달은 것도 다 '계획'이 있어 보였고.

지상파로 보는 <기생충>의 할리우드 상륙기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외롭게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어요. 시나리오를 커피숍에서 쓰는데, 이렇게 런던 한복판의 로얄 앨버트 홀에 서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거죠."

지난 2일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중 일부다. 봉 감독은 평소 동네 카페를 옮겨 다니며 시나리오를 쓰기로 유명하다. 그렇게 동네 카페에서 탄생한 시나리오라는 '무'에서 <기생충>이란 '유'를 창조, 프랑스 칸 황금종려상을 거쳐 북미를 뒤흔든 '오스카 레이스'(와 골든글러브를 비롯한 각종 북미 영화상 수상 릴레이)를 거쳐, 다시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로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한국영화 최초로 수상)에 이어 2관에 오른 봉준호 감독.

역시나 <시사직격>이 담아낸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이나 인터뷰는 그의 '오스카 레이스'를 따라 잡아온 관객이라면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었다. <기생충>의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혀왔듯이, '오스카 레이스'는 봉 감독 이하 배우와 스태프들의 고강도 체력을 요하는 강행군이고, 쏟아지는 인터뷰 와중에 신선한(?) '워딩' 역시 고갈돼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저희(아카데미상 후보자들)가 다니는 동선은 되게 비슷해요. 그분들을 언론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자주 만나고 있고, 저희끼리는 오스카 동기라고 부르면서 서로 겹치는 일정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생각보다,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굉장히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 몇 개월간의 모습을 보면 얼굴이 점점 핼쑥해 지고 있어요." (<기생충> 투자배급사 최윤희 CJ ENM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 팀장)

그런 강행군이 이어자는 '오스카 레이스' 기간 동안 또 각종 미디어는 얼마나 많은 <기생충>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가. 그럼에도 <시사직격>이 포착한 신선한 장면이나 경청할 만한 멘트들은 적지 않았다. 이를 테면, <기생충> 속 '짜파구리'를 메뉴로 추가해서 화제를 모은 일본 도쿄의 한 음식점 사장님 인터뷰.

봉 감독의 팬임을 고백하는 이 젊은 사장님과 함께 봉 감독과 <기생충>에 경의를 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일본 영화계에서 유명한 사회파 감독이었다. 최근 일본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일본 내 한국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차지한 <기생충> 열풍에 대한 리포트 역시 눈여겨 볼 만했다.

또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봉준호 감독의 회고전 '더 봉 쇼' 현장이나 칸 황금종려상에 이어 '영화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Le Mur des Cinéastes)'에 이름을 올린 봉 감독이 프랑스 파리로 소환,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장면은 각국 특파원들이 발 빠르게 잡아낸 광경이었으리라. <기생충>이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흥행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 역시 반가웠고.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증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할리우드는 왜 <기생충>에 열광했는가. <시사직격> 역시 그러했으리라.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조엘 메어즈 편집장과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 의 대표인 톰 퀸의 분석을 들어 보자.

로튼 토마토 편집장의 분석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기생충> 속) 이러한 빈부 격차는 지금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현상이에요. 특히 미국이 그렇죠. 지난 십 년 동안 빈부 격차가 증가하면서 주요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 주제(빈부격차)는 바로 이해할 수 있죠."

역시나 '인터내셔널'한 소재가 첫 번째로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기생충>을 '소재주의' 영화로 받아들일 이는 없었을 터. 봉준호 감독의 오랜 팬임을 고백하고, 이미 <괴물> 의 해외 배급사에 근무하며 봉 감독과 함께 일해 온 톰 퀸의 보충설명(?)은 이랬다.

"아주 진지한, 비극적인 주제에 여러 장르를 섞어 유머러스하게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계속해서 이걸 보여줄 수 있는 감독과 그 감독과 배우들의 조합은 흔하지 않다고 봅니다."

보수적이라 알려진 아카데미 위원회 회원들과 유독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백인 관객들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은 북미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심지어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에 대한 로튼토마토 편집장의 생각은 어떨까.

"기생충에 대한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미국 아카데미상이 매우 국제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거예요. (로마와 기생충) 두 작품이 새로운 추세를 만든다고 말하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국제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전 세계 1등 이민사회이자 '인종의 도가니'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제야' 국제화되고 있다는 설명이 꽤나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위원회의 그러한 '국제화 열차'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점이요, 더불어 봉 감독도 수차례 수상소감을 통해 밝힌 것처럼 2019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았다는 점이리라. <시사직격> 역시 이 주요 맥락을 간과하지 않았다.

2000년의 봉준호, 2020년의 봉준호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영화가 입맛에 달기는 해야 하지만, 그게 아무 영양가가 없이 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비타민 같이 감정을 흔들거나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다시 깨우거나... 이런 게 영화의 기능이 아닌가."

봉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연달아 제작한 차승재 대표의 말이다. <플란다스의 개>를 만들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공언했다는 차 대표는 "그때는 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영화 제작을) 했기 때문에 이 친구가 뭘 해보면 스스로 자기 균형을 잡는 기능이 뛰어난 친구니까 다른 것을 할 것이다. 그런 기대감이 있었어요"라고 회상한다.

그때가 바로 2000년대 초반, 정확히는 한국영화가 두 번째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평가되는 2003년이었다.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올드보이>(박찬욱), <장화, 홍련>(김지운) <바람난 가족>(임상수), <실미도>(강우석), <클래식>(곽재용),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이재용), <황산벌>(이준익) 등 문제작과 화제작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기생충>의 성공과 '할리우드 상륙'에 이어지는 질문은, 20년 전 봉준호를 탄생시킨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넘긴 2020년에도 '제2의 봉준호'를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작금의 한국영화계는, 한국영화 (투자배급)산업은 20여 년 전 그 활력과 창작 풍토를 되살릴 수 있겠는가.

"8~9군데 투자사에 직접 찾아가서 시나리오를 드리고 그랬었는데 다 거절당했어요. '괜찮다'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하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투자사에 시나리오를 주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고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거절은 아파요, 진짜 뼈아파요." (<벌새>의 김보라 감독)

"<기생충> 모델이라는 건 뭐냐면 감독의 재량을 100% 인정해 주는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투자자의 논리에 의해서 감독의 창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 거예요. 프로듀서와 감독 간 협엽 과정에 돈의 입김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봉준호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데, 그래서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나오잖아요. 그럼 다른 감독들한테도 그렇게 해달라는 거죠." (최광희 영화평론가)


지난해 '상업영화엔 <기생충>, 독립영화는 <벌새>'란 평을 이끌어냈던 김보라 감독의 고백은 한 해 만들어지는 한국영화 중 '팔 할'을 차지하는 독립영화의 '가난한' 현주소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최광희 평론가의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작가주의'(상업영화) 영화로 출발한 봉준호 감독이 연출의 전권을 위임받은 <기생충>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를 한국영화 산업의 주체들이 되새겨야 한다는 일성 말이다. 말하자면, 봉 감독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지금의 봉준호를 있게 한 그때 그 시절의 활력을 되찾을 산업적 방편들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돈만, 수익만 쫓아서는 '제2의 봉준호'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불편하지만 공공연한 진실.

그리하여 <시사직격> 방영 직후, 인터시네마 장동찬 대표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영화 '기생충' 이후 변화될 한국영화산업과 봉감독>이란 장문의 '단상'을 게시했다. <기생충>의 놀라운 행보는 한국 영화 100주년 이후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하는 힘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7일 저녁 방송된 KBS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장 대표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뉠 한국영화계의 변화상에 대해 "한국정부가 영화산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20년 전 호황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영화의 글로벌 시장을 향한 제작이 시작 될 것"이라며 봉 감독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인구 400만 명의 국가 뉴질랜드 영화계 '파파' 피터잭슨에게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권하고 싶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은 할리우드로 가서 제작한 것이 아니다. 피터 잭슨은 이 영화의 세계적 히트 이후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세게 받았지만 가지 않았고, 자신의 영화 스튜디오와 관련업체를 뉴질랜드에 창업해 (웨타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아바타의 CG담당회사, 스톤스트릿 스튜디오, 포스트프로덕션 )자신만의 진정한 창작 세계를 만들었다.

자본에 흔들리지 않는 봉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한국에 만들어 자신의 창작세계를 구현하는 새바람을 일으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한국영화산업이 자본에 구속 없이 계속 발전하고 창작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도 존경해마지 않는다고 밝힌 피터 잭슨 감독의 '좋은 예'가 한국에서 성사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러한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노력 앞서, 우선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오스카 시상식을 수상 결과를 두근두근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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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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