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히어로들이 할 수 없는 특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범죄자들의 특공대'라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적 소재가 있을까? 거기에 명불허전 윌 스미스에 조커 역의 자레드 레토, 그리고 할리 퀸의 마고 로비 등 출연진 면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이미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품인 듯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 후엔 혹평이 이어졌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야기다. 이 작품은 결국 제 아무리 좋은 소재와 출연진을 데려다 놓아도 그것을 영화적으로 잘 꿰어내지 못한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DC의 한계를 드러낸 또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매우 강렬했던 '할리퀸'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신과 의사였던 여성이 조커라는 인물을 만나 조커 못지않은 '악당'으로 거듭난다. 그 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친' 포스를 굽히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마고 로비의 연기와 함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영화가 실패한 이유로 이 할리퀸이란 캐릭터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경찰이든 또 다른 범죄자든 그 누구 앞에서도 이토록 당당한 '악당'이 조커라는 한 남자에 그토록 절대적인 순애보를 바치는 순정녀라니(심지어 그녀가 순정을 바치는 조커가 그 순정을 바칠 만큼 '매력적'인지도 의문스러웠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수용한 독립적 할리퀸 캐릭터의 자기 부정과 같은 설정은 결국 서사의 개연성을 갉아먹었으며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할리퀸, 사랑에서 해방되다 

그래서일까? 지난 5일 개봉한 <버즈 오브 플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은 바로 이 전작의 '딜레마'를 극복한 데서 시작한다. 할리퀸을 옭아매던 '조커에 대한 순정녀'라는 딜레마를 '실연'이라는 인간사 관계의 결말로 자연스레 풀어준다. 안 그래도 '이 동네 미친 악당'인 할리퀸은 실연의 상처를 한껏 드러내며 더욱 악당스런 행태를 보이며 황홀한, 아니 지옥같은 해방의 서막을 연다. 

그런데 할리 퀸이 누구인가? 조커를 흠모하여 그와 같이 되기 위해 스스로 화학 공장 용광로와 같은 화약품 저장시설에 뛰어든 여성 아닌가. 그렇게 사랑도 제 정신이 아니게 시작했듯 사랑의 마침표 역시 할리퀸스럽게, 사랑을 시작했던 장소를 화끈하게 절단내면서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마침표는 동시에 조커의 연인이었던 할리퀸에 대한 방패막이 사라짐을 뜻했다. 지금까지 조커 때문에 할리퀸의 만행을 참아주었던 그 동네 양아치들과 그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다같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할리퀸은 '사랑'으로 그녀를 한정짓고 보호하던 그 방패막으로부터 스스로 탈출한다. 

결국 '동네에서 제일 거추장스러운 이'가 되어버린 할리퀸은 동네 클럽 대표이자 나름 동네 짱을 먹으려는 로만 시오니스(이완 맥그리거 분)의 타깃이 되지만, 기지를 발휘해 '딜'을 시도하며 돌파한다. 

그녀들 '연대'하다
 
 <버즈 오브 프레이> 스틸컷

<버즈 오브 프레이>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렇게 사랑에서 헤어나 본래의 매력을 되찾은 할리퀸의 활약이 시작된다. 그리고 '딜'의 대상인 카산드라(엘라 제이 바스코 분)와 조우하고 그러면서 '연대'의 싹이 튼다. 할리퀸과 그녀들, 몬토야 형사(로지 페레즈 분), 블랙 카나리(저니 스몰렛 분), 헌트리스(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분)는 그렇게 그들의 '공공의 적'인 로만과 그가 찾는 카산드라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만난다. 

할리퀸, 그리고 할리퀸을 쫓던 형사, 로만이 운영하던 클럽의 전속 가수였다 숨겨진 재능으로 인해 로만의 전속 운전기사가 되어 할리퀸을 쫓게 된 블랙 카나리, 거기에 온 가문이 몰살당한 마피아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헌트리스. 서로 엇갈린 이해 관계를 가진 생면부지의 이들이 아직 미성년인 카산드라를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제휴를 한다. 그 '제휴'가 로만 일당에 대항한 '연대'로 성장하며 여성들의 '동지애'를 낳는다. 

버즈 오브 플레이(birds of prey)는 육식을 하는 맹금류의 새를 뜻하고, 영화 속 남성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싸우는 할리퀸과 그녀들을 상징하는 문구다. 그런데 이 버즈 오브 플레이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2년부터 2003년까지 TV드라마로 wb채널을 통해 13회에 걸쳐 방영된 바 있다. 

DC코믹스의 배트맨 스핀 오프 시리즈로 시작된 <버즈 오프 프레이>는 고든 총경의 딸이자 캣우먼이었던 바바라 고든이 조커의 총탄에 하반신 마비가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액션 대신 지적인 리더로 거듭난 바바라를 중심으로 원작에서는 배트맨과 캣우먼의 딸이었던 헌트리스가 마피아의 딸인 것으로 수정된 뒤 드라마화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할리퀸이 빌런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조기종영 비슷하게 13부작으로 마무리되었던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제 <수어사이드 스쿠드>에서 홀로 살아남아 단독 시리즈로 돌아온 할리퀸의 '동지'들로 거듭났다. 원작의 바바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공을 남성 동료들에게 빼앗긴 채 만년 형사를 전전하는 몬토야 형사로, 목소리 하나 만으로 사람들을 기절시킬 수도 있는 절대적 고성의 소유자 블랙 카나리는 로만의 기세 아래 전전긍긍하는 클럽 가수로, 그리고 가족들을 모두 잃은 채 홀로 살아남아 복수를 꿈꾸는 헌트리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들은 카산드라라는 어린 소녀를 구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한계를 돌파한다. 동네 그저 미친X이던 할리퀸도, 무능하다 치부되던 여형사도, 로만의 '똘마니'였던 블랙 카나리도, 복수 이후의 감정 조절 장애를 겪던 헌트리스도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과 여성 동지들에 대한 연대에 대한 믿음과 쾌감을 얻는다. 각자 저 마다 이제는 이 동네 자타공인  '난'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 그녀들의 서막, 그것이 바로 <버즈 오브 프레이>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는 <저스티스 리그>의 여성판과도 같다.  아니 그보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페미니즘 판이 더 어울릴까. 할리 퀸을 비롯하여 몬타나 형사, 블랙 카나리, 헌트리스 까지 등장 캐릭터들의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버즈 오브 플레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단점을 극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한때 정신과 의사였던 할리 퀸의 캐릭터을 지나치게 동네 '미친X'같은 단선적인 캐릭터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드라마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는 헌트리스와 할리퀸은 마피아에게 온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빌런인 할리퀸과 그녀를 마주해 싸우게 되는 헌트리스는 복잡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저 복수 후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헌트리스에게 할리 퀸이 지나가는 듯한 충고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퉁친다. 충분히 <어벤져스> 급의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캐릭터들을 지나치게 오락 영화 속 단선적 캐릭터로 해석한 점이 아쉽다.

이런 지적은 빌런으로 등장한 로만에게도 유효하다. 할리퀸 못지않은 이 동네 '미친X'으로 등장한 로만은 잔혹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완 맥그리거의 존재가 아깝다 싶을 만큼 단순 악역에 그친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하수인으로 등장하여 할리퀸을 비롯하여 버즈 오브 프레이들을 뒤쫓는 동네 양야치들은 그녀들의 타격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쾌감을 선사할지언정, 제대로 된 '적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두드려 패고 나가 떨어지는 남성들만으로 '페미니즘' 영화의 쾌감을 완성할 수는 없다. 여성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한 좀 더 제대로된 악역의 구성, 이것 역시 남겨진 과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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