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본 이들은 안다. 자신이 마치 투명 인간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지 못하는 투명 인간들도 많다. 오는 19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굿나잇, 케플러>는 현대인들이 지닌 고독을 케플러 망원경에 빗대어 표현했다. 암흑물질로 둘러 싸인 텅빈 우주를 유영하던 케플러 망원경은 결국 영원히 잠들었다.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굿나잇, 케플러>를 보았다. 제목과 팸플릿만 봐서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접목시킨 작품이겠거니 생각했다. 무엇보다 제목에 들어 있는 '굿나잇'이라는 어휘가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라는 인사로서 익히 머릿속에 담겨있던 터였다.
 
무대는 어두웠고 행성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크기의 각진 돌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형광 장갑이 나타났고 플래시를 든 남자가 간간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면서 마치 누군가와 조심스레 교신을 하는 듯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남자는 "암컷 생물체를 조심하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있었는데, 무대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엄마'가 나와 남자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연극 <굿나잇, 케플러> 포스터

연극 <굿나잇, 케플러> 포스터 ⓒ 거북이걸음프로젝트

 
외로운 행성 사냥꾼의 업적
 
아들은 자신을 외계인이라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교신을 시도 중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이상하다고 여겨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 꾸준히 치료를 시키던 차였다. 아들의 정신병은 차도가 없었고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자신을 투명 인간이라 여기는 한 남자를 만났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처음에 둘은 놀랐다. 하지만 결국 서로가 다른 존재임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둘은 잠시나마 대화를 하면서 친구가 됐음에 즐거워했다.
 
이어 연극은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은퇴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로 나아갔다. 이 우주망원경은 실제 존재했다. 외계행성을 찾아다닌 '행성 사냥꾼'으로서 유명한데, 9년간의 임무를 마치고서 2018년 11월 15일 밤 퇴역했다. 수명이 남은 상태였지만 연료가 고갈된 나머지 발사된 지 9년째에 이르러 돌고 있던 궤도에서 은퇴하게 된 것이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2682개의 외계행성을 발견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찾아낸 외계행성의 70%에 해당되는 수였다.
 
인류에게 우주에 대한 지평을 열어준 케플러 우주망원경에게 NASA는 '굿나잇'이라는 신호를 최종적으로 보냈다고 한다. 연극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실제 언론에 보도된 인터뷰를 보여줬다. 그런데 언론인들은 케플러의 현재 상황을 오로지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만 알리고 싶어 했고 전문가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그저 몇 마디 하고 싶어 했다. 언론과 전문가의 기 싸움은 시작되었다. 정작 모두들 케플러 우주망원경 자체의 임무보다 자신들의 역할을 하는 데 바빴다. 그러는 와중에 우주망원경의 존재는 도구로서 치부되어버렸다. 흔한 사건들처럼 말이다.
 
'굿나잇' 보다 '반가워'가 필요한 이들
 
연극에는 정신병을 가진 두 인물이 나온다. 하나는 주인공 남자였고 하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극 중에서 두 인물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지구라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사람들이라는 행성과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투명 인간의 경우 자신을 지구인이라 여겼지만 여러 지구인 가운데에서 스스로를 가장 특별하다고 여겼다.
 
이는 마치 탐사를 하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자신을 알아줄 이를, 그것이 업적이든, 명예든 상관없이 자신을 알아줄 것을 생각하며 탐사를 하는 이들을 말이다. 이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업적과 존재를 널리 알리고픈 자들이었다. 투명 인간은 주인공의 설득으로 인해 자신은 지구인이 아닐지 모른다고 잠시 깨닫기는 했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과 같은 투명 인간들이 많은 외계 행성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서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울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군중 속에 속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고독한 자였다.
 
주인공은 케플러 우주망원경처럼 행성을 찾는 것 이상으로 그 내부를 탐사하고픈 우주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는 정신과 의사뿐이었고, 엄마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에 내재한 문제를 들여다보기보다 일반적인 틀에 맞게 바뀌기만을 바랐기에 그로서는 조심해야할 괴물과 같은 상대였다.
 
주인공은 내면의 외로운 부분을 보듬어줄 자로 가득한, 진정한 자신의 고향을 바라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친구가 없었던 상태라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지구를 외계라고 본 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케플러 우주망원경에게 기대를 걸면서 자신을 '반가워'라며 맞이해줄 이들을 만나길 바랐지만 결국 '굿나잇'이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연극은 투명 인간과 주인공, 언론사와 정신병원 의사가 대립을 이루면서 점차 절정으로 나아갔다.
 
친근한 인사인 '굿나잇'은 주인공에게 정겹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원한 이별을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삶의 목적과 희망이 '굿나잇'이라는 말과 함께 사라짐을 느끼자 남자는 좌절을 해버렸다. 외적 투명 인간과 내적 투명 인간으로 가득한 행성 속에서 수많은 내적 투명 인간을 대변하던 주인공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우주망원경에게 수고했다고 환호하는 언론인들의 목소리로 가득차면서 무대는 소등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사방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 가운데서 주인공이 영원히 잠든 듯한 행위가 펼쳐졌다. 너무도 자유롭고 가벼워보였다. 얼굴은 웃는 듯했다. 영원히 우주에 남겨질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고향땅을 찾으려는 이들은 마음이 그토록 차갑고 황량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투명성을 탐사의 목적과 방향으로 표현한 연극 속에서 많은 관람객이 코를 훌쩍여댔다. 모두가 주인공 남자를 보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길을 잃고 떠도는 외로운 어린아이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그런 외로운 아이를 마음 깊숙이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재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acacullab.blog.me/221769223656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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