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알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딸이 여덟 살 때, 엄마는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딸을 찾지 않았죠. 35년 후. 엄마와 딸은 만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딸이 엄마를 찾아옵니다. 엄마는 사교계에서 성공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엄마에겐 새로운 남편도 있었고, 둘 사이에 낳은 딸도 있었죠.

35년 만에 만난 딸은 엄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열흘만 자신과 있어달라고요. 오랜만에 만났으니 울고불고해야 인지상정일 것 같은데 이 모녀, 영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젊은 딸은 반 폐인이고, 늙은 엄마는 세련됨과 우아함의 극치입니다. 뭔가 조화롭지 않은 분위기죠.

 
 <일요일의 병>

<일요일의 병> ⓒ 넷플릭스

 
영화 <일요일의 병>은 이렇듯 알 듯 모를 듯한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엄마 아나벨은 35년 만에 만난 딸 키아라가 불편하고 힘듭니다. 딸이 열흘간 함께 있어달라 부탁한 곳은 키아라가 살고 있는 외딴 산장인데, 거기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도 없습니다.

둘은 따로 또 같이 그저 어색한 시간을 보냅니다. 딸은 가끔씩 엄마의 신경을 긁는 질문들을 살살 해댑니다. 엄마는 '지은 죄'가 있어서, 딸이 비꼬는 듯 툭툭 던지는 질문과 딸이 만들어내는 불쾌한 상황들을 그저 묵묵히 견뎌냅니다.
 
영화 중반까지도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합니다. 대체 딸은 왜 35년 만에 엄마를 찾아와서, 열흘만 있어달라고 한 것일까? 엄마는 왜 여덟 살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와야했던 걸까. 왜 한 번도 딸을 찾지 않았던 걸까.

'나를 이곳에 데려온 목적이 뭐냐?'라는 엄마의 질문에도 딸은 무심한 듯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처음에는 그저 반강제로 오게 됐지만, 점점 더 딸이 궁금해지고, 딸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모성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
 

어쩌면 한국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지 모릅니다. 딸과 엄마 사이에는 출생의 비밀도 없었고, 엄마가 딸을 두고 집을 떠났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없었으니까요. 35년 만에 엄마를 찾아와 반강제로 자신의 집에 들어앉힌 딸 역시, 엄마를 붙잡고 어떻게 자신을 버릴 수 있었냐, 왜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았냐… 뭔가 한바탕 한풀이라도 해대야할 것 같은데, 기이할 정도로 적막하고 평화(?)롭습니다. 너무 평화로워서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영화 <일요일의 병>중 한 장면. 35년만에 만난 엄마와 딸. 모든게 불편하고 어색하다. 딸과 엄마는 화해할 수 있을까?

영화 <일요일의 병>중 한 장면. 35년만에 만난 엄마와 딸. 모든게 불편하고 어색하다. 딸과 엄마는 화해할 수 있을까? ⓒ 넷플릭스

 
딱 한 번. 딸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폭풍처럼 쏟아냅니다. 여덟 살부터 줄곧 창가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그 심정을 아느냐고 소리치다가,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집을 나간 여자는 절대 알지 못할' 거라면서 컵을 엄마에게 내던집니다.

그 일을 계기로 딸과 엄마는 마음속을 한 꺼풀 벗고 다가선 듯했으나 딸이 중병을 앓고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엄마는 딸이 자신을 외딴 산장에 데려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내가 뭘 해주면 좋겠냐'고 묻는 엄마에게 딸은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자식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이스라엘 한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 엄마 아나벨은 딸에게 아무런 모성도 애정도 없는 엄마처럼 보입니다. 아나벨은 왜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집에서 나와야했을까요? 전 남편과의 대화에서 그 상황을 잠깐 엿볼 수 있는데요.
 
아나벨 : 내가 떠난 건 더 원했기 때문이야
남편 : 그래서 더 얻었어?
아나벨: 그래. 하지만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지. 절대. 그래서 더 힘들고.
 
아나벨이 뭘 원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나벨은 엄마라는 위치보다 자신의 욕망과 삶을 더 중요시여긴 사람이라는 것. 대부분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꿈을 꾹꾹 누르며 살지만, 아나벨은 그렇지 않았죠. 딸 키아라는 여덟 살 이후,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증오하면서 성장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곧 엄마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꺾을 수 없는 고집. 자신의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딸과 자신의 길을 찾아 집을 떠난 엄마. 엄마와 딸은 그처럼 서로 묘하게 평행선을 달리며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데칼코마니처럼 나란히 서있는 두 그루 나무는 서로 닮아있는 모녀를 상징하는 은유가 아닐까요.
 
모성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엄마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듯, 엄마의 손으로 그 생명을 거두어주길 바라는 것이죠. 결말은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저게 과연 모성인가? 저 모성은 윤리적인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여덟 살짜리 딸을 버리고 제 길을 찾아 떠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 자격이 없다, 라고 단정 짓는 사람에게 이 결말은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양하듯, 이 영화의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모성' 역시 한 가지 색깔과 성격은 아닐지 모릅니다. 애초부터 정답이라는 게 없는지도 모릅니다. 때론 자식보다 자신이 더 소중한 '모성'도 있으니까요. 그렇다해서 그건 모성이 아니라고 100%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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