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이 부시게> 중

드라마 <눈이 부시게> 중 ⓒ JTBC


많이도 필요 없고 딱 한 편, 1년에 좋은 드라마 한 편만 만나도 나의 행복지수는 그해에 만족할 만하다. 2019년은, JTBC <눈이 부시게>가 내게 그 한 편이었다. 우리 혜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저릿하면서 또 발랄해지고, 아무튼 그렇다.

혜자를 연기한 김혜자 배우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 대신 말했던 '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그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울컥 했던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2019년, 가장 기억하고 싶은 드라마 대사였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 <눈이 부시게> 대사 중

 
 1일 진행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화면. <눈이 부시게>로 TV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혜자

제55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화면. <눈이 부시게>로 TV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혜자 ⓒ JTBC

 
젊은 혜자(한지민 분)와 노인이 된 혜자(김혜자 분)가 그린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그래서,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죽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할머니 혜자가 환상 속에서 경험했던 그 모든 것은 다 삶이었다. 긴 인생의 시간들을 환상 속에서, 아니 또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간 혜자가 긴 서사를 거쳐 마지막에 했던 대사였기에 더욱 진실히 다가왔다. 

혜자는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인생만 살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때론 불행했던 인생의 진짜 민낯 그대로 눈부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을 살라고 말한다. 오늘은 눈부시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런 오늘을 누릴 자격을 이미 갖고 있으니까. 
 
"6살 꼬마에게 '2019년은 너에게 어떤 해였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것이 어딘가 이상한 질문이란 걸 직관으로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대신 아이에겐 이렇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땠니?' - 에세이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웨일북) 중

한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오늘 하루를 혜자처럼 6살 꼬마처럼 살아가는 태도를 되뇌어보게 된다. 나의 이번 해엔 여느 누구처럼 불행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지만 봄의 달큰한 바람과 저녁의 노을 냄새도 있었기 때문에 살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는 한해였다. 누군가의 엄마고, 누이고, 딸이고, 나인 당신도 그런 한해였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내년에는 어떤 드라마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지만, 하루 끝에서 드라마 한 편 보며 아주 쉽게 행복해지는 그런 '오늘'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혜자처럼, 아이처럼.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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