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201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세대별로는 한국축구의 새 역사를 쓴 2002년 세대에서 런던-리우올림픽 세대로 바통이 넘어가는 교체기이자, 한국축구가 아시아 최강과 세계화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과도기이기도 했다. 재능있는 많은 선수들이 유럽무대에 도전하면서 해외파가 크게 늘어났고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증명하기도 했지만, 정작 K리그와 한국축구는 안팎의 끊임없는 도전 속에 '정체성'을 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다사다난했던 한국축구의 2010년대를 빛낸 주역들은 누가 있을까.

공격수 - 손흥민, 이동국
 
 8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번리FC와의 16라운드 홈경기에서 손흥민 선수가 1골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골을 넣고 기뻐하는 손흥민의 모습. ⓒ AP-연합뉴스

 
유럽파와 국내파를 대표하는 두 스타 공격수, 2010년대 손흥민과 이동국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한국인 공격수는 없다. '월드클래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래 레버쿠젠과 토트넘을 거치며 차범근 전 감독의 한국인 유럽파 최다 골(126골)을 30년 만에 넘어서는 업적을 세웠다. 또한 2019년 발롱도르에서는 22위에 올라 역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도 하며 명실상부하게 차범근-박지성의 계보를 잇는 '2010년대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동국은 K리그의 살아있는 역사다. K리그 역대 최다득점 기록을 224골로 늘렸고, 도움도 77개나 기록하며 역대 최초의 300 공격 포인트를 돌파했다. 불혹을 넘긴 2019년도 33경기에서 9골 2도움으로 건재한 활약을 선보였다. 2010년대만 리그 우승 6회(통산 7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의 기록은 모두 이동국과 함께했다. 상대적으로 아쉬운 대표팀과 월드컵에서의 불운 때문에 평가절하당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축구 역대 13번째로 센츄리클럽(105경기 33골)가입과 전대륙 득점자라는 타이틀에서 보듯, 이동국이 한국축구 역대 공격수 계보를 잇는 선수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드필더 - 박지성, 기성용, 구자철, 이근호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이자, 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

박지성이 완장을 차고 있다. ⓒ FIFA

 
'산소탱크' 박지성의 개인적 전성기는 엄밀히 말하면 2000년대에 가깝지만, 주장으로서 이룬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과 역대 최초의 3회 연속 본선득점은 201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국축구 최고의 업적이다. 맨유 시절의 '언성 히어로' 역할도 훌륭했지만, 대표팀에서의 박지성은 언터처블 그 자체였다.

2011년 박지성이 대표팀을 은퇴한 이후 구자철-기성용-손흥민 등이 그 빈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아직 그만한 리더십과 존재감을 보여준 캡틴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 시대의 아이콘인 손흥민이 개인기록과 스타성으로 더 돋보인다면, 박지성은 자신보다 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리더십과, 대표팀에서의 카리스마와 큰 경기에서의 활약상으로 기록 이상의 가치를 발하는 선수였다. 한국축구가 박지성을 좀 더 건강하게 관리해줬다면 2014년이나 2018년에도 한국축구는 16강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2010년대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진 기성용과 구자철은 '런던 세대'를 대표하는 선수다. 한국축구 역사상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는 드물게 유럽무대(독일,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존재가치는 특별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중심에는 항상 이들이 있었다. 특히 기성용은 비록 커리어 중반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구설수도 많았지만, 한국축구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든 창의적인 미드필더이자 중원 에이스로서 10년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대표팀을 지켜준 굳건한 기둥이었다.

이근호는 항상 박주영이나 이청용 같은 유럽파들에 가려서 저평가받았지만, K리그와 아시아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세계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모범사례다. 2선에서 최전방까지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내는 전술 이해력, 뛰어난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 여기에 연계플레이와 오프더볼에서의 움직임까지, 이근호는 모든 감독들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선수였다.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2014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은 이근호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준 대회였다. 전술적으로 활용하기 까다롭다는 손흥민, 박주영, 김신욱 등도 이근호와 파트너가 되었을 때 예외 없이 최상의 활약을 보여준 바 있다. 월드컵 본선에 나선 것은 한 번(2014년)뿐이지만 이근호가 없었다면 2010년과 2018년에도 한국축구의 월드컵 본선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비수 - 이영표, 김영권, 곽태휘, 차두리

이영표는 박지성과 대표팀-클럽팀 활동경력과 은퇴 시기까지 비슷하다. 역시 2011년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난 이영표가 2010년대 최고의 수비수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그에 견줄만한 측면 수비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진수-박주호-윤석영-홍철 등 나름 후보는 많았지만 누구도 이영표의 아성을 대체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영표 이후 한국축구는 더 이상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수비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영표는 박지성보다 4살이 더 많았고 유럽에서 활약하기는 상대적으로 약한 피지컬을 지녔음에도 30대 중반의 나이까지 태극마크를 달면서 대표팀에 큰 실수나 슬럼프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없을 만큼 기복없는 자기관리로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오른쪽 풀백은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연속 주전으로 활약한 이용도 있지만, 역시 차두리의 존재감이 좀 더 커 보인다. 박지성-이영표와 함께 2002년 4강, 2010년 16강 신화를 함께한 차두리는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하여 성공을 거둔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다. 유럽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피지컬과 폭발적인 스피드는 이영표와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축구에 나오기 힘든 유형의 풀백이다. 유럽무대에서는 저니맨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K리그에 돌아온 이후 FA컵 우승과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클럽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차라리 좀 더 일찍 수비로 전향했더라면 세계적인 풀백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영표와 차두리 이후 좌우 풀백은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센터백은 여러 선수들이 대표팀을 거쳐 갔지만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시 김영권과 곽태휘가 가장 돋보인다. 김영권은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과 2014-2018 월드컵 주전멤버로서 꾸준히 한국축구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다. 클럽무대에서도 아시아의 신흥강호 광저우 헝다의 핵심 수비수로서 중국과 아시아무대를 평정했다. 종종 어이없는 실책과 실언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점으로 믿음직한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곽태휘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동국 못지않은 월드컵 불운이 안타까운 선수다. 유일하게 월드컵에 나선 2014년에는 경기에 한 번도 뛰지 못했고, 2010년은 부상, 2018년은 노쇠화로 주전경쟁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클럽축구 울산 시절과 중동무대, 월드컵 지역예선과 아시안컵 등 본선을 제외한 각종 무대에서 10여 년간 한국축구를 빛낸 대표적인 센터백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은 곽태휘의 대표팀 커리어중 최고의 경력이자 마지막으로 빛난 시간이었다.

골키퍼 - 조현우
 
 대구FC 조현우

대구FC 조현우의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90년대 중후반이 김병지, 2000년대가 이운재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는 골키퍼들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정성룡이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면 중반 이후로는 김진현, 김승규, 조현우 등이 잇달아 등장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나같이 출중한 선수들이라 누구 하나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지만, 역시 가장 큰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으로 역대급 활약을 보여준 조현우의 임팩트가 강렬했다.

소속팀 대구의 전력이 약한 편이라서 저평가받았지만 조현우의 신들린 선방능력은 생애 첫 메이저대회였던 러시아월드컵에서 빛을 발했다. 독일전 무실점 승리를 비롯하여 3경기 3실점에 그친 신태용호의 수비를 사실상 하드캐리했다. 그중 2골은 PK였고 사실상 조현우의 실수로 인한 실점은 없었다. 2002년 월드컵 이운재의 아성에 가장 근접했고 어쩌면 더 뛰어난 월드클래습 활약을 펼쳤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게 조현우의 2018년이었다.

2010년대 최고의 감독은? 클럽 최강희 / 국가대표팀 허정무

2010년대 K리그는 '전북의 시대'였고 그 중심에는 '봉동 이장' 최강희 감독이 있었다. 최 감독은 K리그의 별 볼 일 없는 지방 구단에 불과하던 전북을 오늘날 국내 최강을 넘어 아시아를 호령하는 클럽으로 성장시켰다. 유일한 흑역사이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도를 해야 했던 국가대표팀 임시 사령탑 기간을 제외하면 최 감독은 자타공인 2010년대 K리그를 지배한 최고의 명장이었다. 최감독은 전북을 떠나 중국으로 진출한 후 첫 시즌에 세 팀을 거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FA컵 우승을 거머쥐며 다시 한번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최감독은 이제 더 이상 K리그에 없지만 올 시즌 전북이 이룬 3연패는 여전히 최감독이 남긴 유산에 빚을 지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최초의 원정 16강을 이뤄낸 허정무 감독이 있었다. 사실 허 감독은 국내 지도자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부터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했고, 심지어 16강을 이뤄낸 뒤에도 성과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허 감독 이후 대표팀을 이어받을만한 국내외 지도자들의 난맥상과 대표팀의 부진 속에 허정무 시절이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축구의 또 다른 황금기였음이 재평가받고 있다. 박지성-이영표를 비롯하여 기성용-이청용-이근호-박주영-구자철-곽태휘 등으로 이어지는 2000~2010년대 한국축구의 중추들을 처음 발굴해내고 중용한 것은 허정무의 안목과 결단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유다.

그밖에 언급해야 할 선수들

이청용은 2010년대 기성용과 함께 '쌍용'으로 불리며 한국축구에 혜성처럼 등장한 테크니션이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과 잉글랜드 볼턴 시절 초창기의 활약은 그야말로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2011년 치명적인 다리골절부상과 그 이후 소속팀의 2부리그 강등-주전경쟁 등으로 심각하게 꼬여버린 커리어는 축구 팬들에게 두고두고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이청용은 현재 독일로 무대를 옮겨 여전히 유럽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박주영도 2010년대 한국축구의 한 획을 그을 뻔했던 공격수였다. 프랑스리그 AS 모나코 시절만 해도 유럽에서도 촉망받는 공격수로 인정받았지만 아스널 이적 이후 3년 가까운 강제 공백기와 거듭된 부진, 병역 논란, 2014 브라질월드컵 무임승차 등 각종 구설수 속에 이제는 국가대표팀의 흑역사로 전락했다. 노장이 된 지금은 K리그로 돌아와 이동국만큼은 아니지만 FC서울의 프랜차이즈스타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다.

이 밖에 수원의 심장이자 '왼발의 마법사' 염기훈, '한국의 크라우치'로 불리우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 두 번의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카잔의 용언니' 이용, 남아공월드컵 '해발슛'의 주인공 이정수, 유럽무대까지 경험했지만 월드컵에서는 불운했던 풀백 듀오 김진수-박주호, 골키퍼 김승규-정성룡 등도 2010년대를 결산하면서 빼놓수 없는 스타 선수들이다.

현재 한국축구는 손흥민을 필두로 하여 '92년생 이하' 젊은 세대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201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권창훈, 황의조 등은 아직 전성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다가오는 2020년대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0년대에는 한국축구에 오랜 혼란기를 정리하고 더 빛나는 재능들과 훌륭한 역사가 탄생하기를 축구 팬들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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