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펜은 칼보다 강하다"란 표현을 쓴다. 대중에게 언론, 저술, 정보, 사고의 전달이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특히 기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위험한 칼날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자는 바른 주장을 펼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정론직필(正論直筆) 정신을 마음에 항상 새겨야 한다.

지난 7일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가짜 펜을 든 사람들-누가 사이비 기자를 만드는가' 편은 사이비 기자, 유사 언론, 어뷰징 기사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언론 문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기자가 되는 세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뉴스로 둔갑할 수 있는 현실. 도대체 왜 이런 환경이 만들어진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먼저 사적인 목적을 위해 기사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인 '손 차장 사망 사건'을 살핀다. 2017년 10월 31일,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근무하던 손 차장은 모 언론사에 소속된 김 기자에게 "당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을 바랍니다. 당신은 펜들 든 살인자요"란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 차장과 김 기자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패션센터의 대관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김 기자는 한 업체의 행사 일정을 잡아달라고 손 차장에게 요구했다. 손 차장은 김 기자가 원하는 날짜에 이미 예약이 잡혔음을 확인하고 거절했다.

그러자 김 기자는 손 차장이 대관으로 갑질을 부리고 금품을 수수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질' 도 넘었다>(2017년 10월 16일), 대구시와 패션센터가 비리 의혹이 제기된 직원을 감싼다는 내용의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센터 그대로 방치하나>(2017년 10월 30일) 기사를 썼다. 두 번째 기사가 보도된 다음 날, 손 차장은 결백을 주장하며 세상을 떠났다.

김 기자는 청탁 거절에 대한 보복 행위로 펜을 사용했다. 법원은 "언론 매체를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언론 기관의 권위,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을 남용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김 기자에게 징역 1년 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김 기자는 여전히 기사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실 확인을 했다고 말하지만, 사건이 난 지 2년이 지나도록 손 차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손 차장 사망 사건'이 악의적인 기사 작성으로 인해 누군가의 인격은 물론 평생의 삶마저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경북 영천에서 벌어진 '폐기물 불법 투기 사건'에선 기자를 사칭한 가짜 기자의 문제점이 드러난 경우다.

지난 5월 한 업자가 경북 영천 일대의 몇몇 공장을 임대한 후 몇 개월 동안 산업 현장에서 나온 쓰레기와 감염 우려가 있는 의료 폐기물 수천 톤을 버린 후 도망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바지사장, 실질적으로 공장을 임대해 불법으로 쓰레기를 채운 폐기물 업자, 전국의 폐기물 업체에서 쓰레기를 모은 브로커 등 규모가 큰 조직적 범죄라고 밝혔다. 대량의 산업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분류나 소각에 큰 비용이 드는데, 이들은 싼값에 처리해주겠다며 돈을 받은 뒤 임대한 공장에 불법 투기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당 중 한 명에 기자가 있었다.

폐기물 브로커를 역할을 한 노 기자는 기자증과 기자 명함을 갖고 다니면서 환경 기자란 신분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기자 신분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노 기자는 진짜 기자가 아니었다. 자사 홈페이지에 노 기자를 서울취재본부 취재부장에 올린 D 환경일보 대표 겸 발행인은 그가 광고를 따오면 수익을 나누는 '광고기자'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취재진에게 도리어 "요새는 기자라고 해서 믿는 사람들이 잘못이야"라고 반문한다. 기자를 믿지 말라는 언론사 대표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기사를 쓰거나 취재 활동을 한 적이 없는 가짜 기자를 위해 기사를 대신 써주는 행위는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아예 기사 작성을 홍보 대행사에 맡기는 언론사까지 있다. 언론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던 전 직원은 "경제지, 일간지, 인터넷 신문 등 각종 언론사의 기사를 대신 써준 적이 있다"고 밝힌다.

자료를 받고 그대로 올려주는 '기사형 광고'도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만난 기사 보도를 대행해주는 업체는 기사 10건이 포털 사이트에 나가는 조건으로 200만 원을 제시했다. 제작진이 5건의 기사 보도를 의뢰한 결과, 첫 기사는 자료를 보낸 지 12분 만에 올라왔고 5건 모두 기사화에 걸린 시간은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공의 인물과 정보를 구성된 자료를 보냈지만, 사실 확인을 한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한국 인터넷 언론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는 '어뷰징'이다. 어뷰징은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 숫자를 늘리기 위해 이미 보도된 기사나 뉴스들을 조합하여 유사한 제목만 붙인 상태로 기사를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과거 모 일간지 스포츠 신문사에서 일했다는 제보자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지켜보다가 키워드를 고르고 기사를 베껴 쓰는 어뷰징 기사 작성이 주 업무였다고 고백한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복사하기, 붙여넣기한 다음에 약간의 문장을 수정하고 그럴싸한 제목만 붙이면 기사가 완성된다. 여기엔 5분이 안 걸린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적게는 50개, 많게는 70~80개 기사를 썼다고 한다.

어뷰징 기사는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방문자 숫자인 '트래픽'에만 관심을 쏟는다. 트래픽은 언론사의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트래픽이 많이 나올 만한 키워드를 집어넣고, 자극적이거나 낚시성 제목을 붙여 클릭을 유도한다. 누군가의 논란, 누군가의 사생활, 누군가의 죽음까지도 트래픽을 위한 소재에 불과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현재 인터넷 언론사는 88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에서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뉴스 제휴를 맺은 곳은 803개, 다음과 뉴스 제휴를 한 곳은 1250개다. 포털에 입점해야 비로소 수익이 나는 현실인 탓에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과하려는 경쟁은 굉장히 치열하다. 심지어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기사를 써주는 기업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문제는 경쟁을 뚫고 포털에 입점한 언론사들이 수익을 올리느라 광고성 기사를 남발한다는 사실이다. 양질의 기사는 보기 힘들다. 과거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포털 중심화가 언론 생태계를 망가뜨렸다고 진단한다.

"취재하고 발로 뛰고 심층보도, 탐사보도 했던 사람들이 포털 안에서 N분의 1이 되어버렸어요. 새로운 언론이 거기에서 평가받기보다는 지금의 환경에서 가장 쉽고 가장 편하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만 찾는다). 알 권리는 없어졌고 취재도 사라졌다."

사이비 기자, 유사언론, 어뷰징 기사, 광고성 기사, 포털 중심의 생태계 등 한국 언론이 처한 문제점은 상당하다. 망가진 저널리즘을 회복하기 위해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여 언론사와 포털이 부당행위를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언론인이 진실하고 정의로운 펜으로 사회를 기록하겠다는 태도다. 대중도 소중한 기록의 가치를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언론개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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