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는 팬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즐겁게 한다'는 말이 있다. 농구라는 종목 자체가 워낙 높이가 중요한 스포츠인지라 키 크고 기량 좋은 센터가 있으면 감독이 경기를 끌어나가는데 편하다.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 어디 있겠냐마는 골밑이 튼실하면 팀의 안정감은 아무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팬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가드 쪽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좀 더 역동적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포지션인 이유가 크다. NBA(미 프로농구)의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스테판 커리 국내 농구의 이충희, 허재, 이상민, 김승현 등이 대표적이다. 타 포지션에서도 스타플레이어가 무수하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엇비슷한 조건일 때는 가드의 인기를 따라잡기 힘들다.
 
 최고 2번을 놓고 경쟁하던 이대성(사진 왼쪽)과 이정현(사진 중앙)이 한팀이 되면서 리그 판도가 더욱 흥미로워졌다.

최고 2번을 놓고 경쟁하던 이대성(사진 왼쪽)과 이정현(사진 중앙)이 한팀이 되면서 리그 판도가 더욱 흥미로워졌다.ⓒ 전주 KCC

 
최근 가장 뜨거운 백코트 콤비, 이정현-이대성

최근 국내 프로농구(KBL)에서도 새로운 앞선 가드콤비 탄생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다름 아닌 전주 KCC 이대성(29·193cm), 이정현(32·191cm)이 바로 그들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여러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둘은 이번 KCC와 현대모비스의 트레이드로 인해 한 팀이 되었다.

지난 11일 KCC가 리온 윌리엄스(33·197cm), 박지훈(30·193cm), 김국찬(23·191cm), 김세창(22·182cm)을 내주면서 울산현대모비스로부터 이대성, 라건아(30·199cm)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국가대표급 백코트 라인이 만들어졌다.

이정현은 '농구도사'로 통한다. 데뷔 초창기에는 과감성이 돋보이는 슈팅가드 정도로 평가받았으나 이후 시즌이 거듭될수록 발전을 거듭하며 국내 리그를 대표하는 전천후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이정현의 최대 장점은 빼어난 득점원이면서 혼자 하는 농구를 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이스급 선수들이 그렇듯 두둑한 뱃심을 바탕으로 많은 공격을 시도하지만 자신에게 수비가 집중된다싶으면 무리는 하지 않는다. 빈곳에 있는 동료들에게 센스있는 패스를 건네주는 등 팀플레이에 능하다.

내외곽을 고루 갖춘 전천후 공격수이면서 패싱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고 수비 역시 자신의 매치업 상대를 묶을 정도는 된다. 꾸준히 득점을 하면서도 혼자 하는 농구가 아닌 팀과 함께하는 플레이를 펼친다는 점은 그의 높은 레벨을 알게 해준다.

때문에 대형 트레이드 이전 전창진 감독은 주전 1번으로 낙점했던 유현준이 부상으로 빠지자 이정현을 적극 활용했다. 과거 김병철의 거듭된 실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슈팅가드가 갑자기 1번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정현은 평균 이상으로 포인트가드 역할까지 가능하다.

볼 컨트롤, 시야, 패싱센스 등 여러가지 능력치에서 고루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유다. 전 감독은 3번 송교창을 1번으로 기용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이정현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정현이 1번일 때 볼 없는 움직임을 제대로 가져갈 수 있는 선수가 없는지라 송교창을 탑에 세우고 농구 도사의 다른 능력치를 활용했다. 이정현이 얼마나 다재다능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대성이 합류한 현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대성은 빼어난 운동능력과 활동량을 앞세워 코트를 종횡무진 휘젓는 타입이다. 시야가 다소 좁고 플레이에 기복은 있지만 수비가 안정적이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엄청난 공격 폭발력을 보인다.

문제는 이대성 역시 주 포지션은 2번 슈팅가드라는 점이다. 기존의 이정현과 포지션이 같다. 그렇다고 한팀의 간판급 선수인 이대성을 백업으로 쓸 수는 없다. 올 시즌 우승을 노려야 되는 KCC입장에서는 최대한 이대성이 가진 능력치를 활용해야 된다. 이대성은 스피드를 활용한 속공에, 템포조절을 잘하는 이정현은 지공상황에서 더욱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대성이 1번, 이정현이 2번을 맡는 그림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성이 자신감 있게 코트를 휘저으면 시야가 넓은 이정현이 보조리딩을 해주면서 '상생의 해법'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만약 둘이 좋은 호흡을 보일 수만 있다면 리그 최고의 백코트 콤비도 기대해볼 수 있다.

공격형, 수비형, 리딩형 등 다양한 조합의 백코트 듀오

적지않은 시간동안 KBL에서는 각 팀별로 다양한 백코트 듀오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원조 명 백코트 듀오를 꼽으라면 단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현대모비스) 시절의 허재, 강동희 콤비를 꼽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둘은 프로 리그가 시작될 때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워낙 개인기량이 출중한지라 기술자 1. 2번의 진수를 보여줬다. 강동희는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으며 '농구천재', '농구 9단', '농구대통령'으로 불린 슈팅가드 허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다.

강동희는 정통파 포인트가드였지만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개인기와 정확한 슈팅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워낙 템포조절에 강해 상대팀의 공수 흐름을 끊고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능했다.

허재같은 경우 내외곽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득점머신이면서도 어지간한 1번 이상 가는 패싱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두 선수가 호흡을 맞추니 상대팀 입장에서는 감당하기가 더욱 버거웠다. 만약 프로리그가 조금만 더 빨리 시작되어 두 선수가 전성기로 뛰었다면 KBL 역사의 상당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란 평가다. 

나래 블루버드(현 DB) 시절의 신기성-허재도 좋은 조합이었다. '총알 탄 사나이'라는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기성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속공과 어지간한 전문슈터 뺨치는 정확한 외곽슛으로 명성이 높았다. 어느 정도 리딩능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공격력이 돋보이는 1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신기성 옆에 넓은 시야와 패싱능력을 갖춘 슈팅가드 허재는 아주 좋은 백코트 파트너였다.

현대 다이넷(현 KCC) 시절 추승균과 더불어 '이조추 트리오'로 불렸던 이상민-조성원은 서로에게 주는 시너지효과가 높은 백코트 콤비였다. '컴퓨터 가드' 이상민은 패스마스터였다. 골밑으로 찔러주는 패스는 물론 자로 잰듯한 롱패스까지, 지공과 속공전개에 모두 능했다. 정확도는 물론 달리는 동료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가며 패스를 뿌리며 경기를 지휘하는 최고의 야전사령관이었다.

'캥거루 슈터' 조성원같은 경우 2번을 보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180cm의 단신 스몰포워드였다. 빠른 발을 살린 돌파와 소나기같은 3점슛은 매우 위력적이었으나 보조리딩 등 슈팅가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2번을 보기에도 신장이 작은 편인지라 수비시 미스매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이상민은 보조리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난 포인트가드였다. 거기에 운동능력과 디펜스가 좋은지라 조성원 대신 상대 2번을 수비할 때도 많았다. 조성원이 보조리딩이나 수비부담 없이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상민의 역할이 컸다. 물론 조성원은 속공을 3점슛으로 마무리할 정도로 슈팅력이 안정적이었던지라 이상민의 패스를 더욱 빛나게 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 시절 김병철은 누구보다도 김승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병철은 대학부터 프로시절까지 1번으로의 전향을 계속해서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김병철이 포인트가드를 맡아준다면 포지션별 신장을 늘리며 좋은 구성이 가능했지만 시야, 패싱센스 등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본인이 강팀의 한 조각을 이룰 수는 있지만 리더가 되어 끌어나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 결과 전희철과 함께 아무리 애를 써도 오리온스의 전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하위권에서 고전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에서 신인 김승현이 오리온스에 입단했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천재가드의 도움을 받으며 본인이 제일 자신 있는 외곽슛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신인시절 강병현은 신명호와 함께 '활동량'을 무기로하는 백코트 콤비로 우승까지 만들어냈다.

신인시절 강병현은 신명호와 함께 '활동량'을 무기로하는 백코트 콤비로 우승까지 만들어냈다.ⓒ 전주 KCC

 
KCC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명호-강병현은 이른바 '활동량 콤비'였다. 두 선수 모두 게임리딩, 패스, 슈팅능력 등에서 상위권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신명호의 슈팅은 심각한 수준이다. 강병현 역시 자신감 있게 공격하는 스타일일 뿐 전체적으로 투박한 유형의 플레이를 펼쳤다. 어찌보면 둘이 함께 백코트를 이루며 우승을 만들어낸 것이 신기할 정도다.

당시 허재 감독은 둘을 뜯어고치거나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잘하는 플레이를 맘껏 펼치라 주문했다. 당시 젊고 패기 넘쳤던 둘은 수비에서 많은 에너지를 썼다. 경기내 내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상대 1, 2번을 철벽마크 했다. 초반부터 압박수비로 상대 백코트를 질리게 했고 도움수비까지 참여하며 많은 실책을 발생시켰다. 일단 상대 백코트의 경기력을 다운시켰다는 점에서 팀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현대모비스 양동근, 김효범 또한 한창때 신명호, 강병현 이상가는 에너지 레벨을 자랑했다. 다만 수비적인 에너지가 돋보였던 신명호, 강병현과 달리 양동근, 김효범은 슈팅력까지 겸비한지라 공격력에서도 상대팀에 많은 위협을 줬다.

삼성 주희정-강혁, 인삼공사 김태술-박찬희같은 경우 1번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들이 함께한 조합이었다. 당시 강혁, 박찬희는 주희정, 김태술이 없었다면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서도 손색없는 기량을 자랑했다.

하지만 주희정, 김태술을 제치고 1번을 독식하기는 힘들었다. 이에 팀에서는 그들을 백업으로 돌리기보다 함께 백코트를 이루게 하며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냈다. 기량, 센스에서 뛰어난 선수간 조합인지라 우승을 합작하며 좋은 결과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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