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잠재력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더 커지기도 한다. 그 잠재력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데에는 환경도 중요하고, 사회적인 인식도 중요하다.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좋은 의미의 능력이든, 나쁜 의미의 능력이든 어쨌거나 세상에 표출되려면 꽤 오랜 시간과 어려운 과정이 필요했다. 부모, 특히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엔 더욱 쉽지 않았다.

현재는 과거보다 그런 능력의 표출에 관대하다. 여러 아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마음껏 뽐낸다. 잠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숨으려 하면 부모, 또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세상 밖으로 그것을 표출하도록 도움을 준다.

과거 자신의 잠재력을 표출하지 못한 인물들은 현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뽐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주변엔 그들의 능력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간혹 그런 존재들로 인해 아이들은 잠재력을 잃기도 한다. 

영화 <샤이닝> 이후 성인이 된 꼬마 대니의 이야기

영화 <샤이닝>(1980)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심리 스릴러 장르로 끌고 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 대니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즉 영화 속에서 '샤이닝'이라고 불리는 그 능력과 그것을 빼앗아 버리려는 존재들은 결국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미쳐버리게 만든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1980년의 영화 <샤이닝>은 아이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알코올에 의지하는 아버지의 심리 상태 변화와 그 자신이 공포스러운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기괴하게 그렸다.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에서 아이였던 대니(이완 맥그리거)가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닥터 슬립>은 과거 오버룩 호텔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 이후 대니의 성장과정을 초반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니가 가진 특수한 잠재능력인 샤이닝을 빼앗으려는 기괴한 존재들은 대니의 마음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상자들에 가두어 두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대니는 전국을 유랑하며 망가진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대니 자신도 마음을 위로한다는 이유로 알코올에 의지하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술에 취해 싸움을 하고,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 그의 얼굴과 어깨는 과거 망가진 자기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대니가 그렇게 삶을 망가뜨린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세상에 보일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아버지와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후 입을 닫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했고 결국 노숙자로 전국을 떠돈다.

이후 한 마을에서 빌리(클리프 커티스)를 만나 일자리도 구하고 정착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그 자신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등 조심스런 삶을 이어간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은 노인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 직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숨을 내쉴 때다. 그는 마지막 삶의 순간을 맞은 이들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편히 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대니는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방황하고 있는  대니가 만난 특별한 아이 아브라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대니는 굉장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사랑으로 그를 아껴준 어머니의 존재는 그가 그런 심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그런 따뜻한 감성이 대니 자신과 함께 그의 편에 서있는 모든 인물들을 어루만지고 보호한다. 결국에 술을 끊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던 그는 영화 중반 이후 어떤 괴로운 상황과 유혹에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힘들고 당황스러울 때마다 술을 입안으로 들이켰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 그는 마음 속에 가뒀던 응어리를 터뜨려 자신의 능력을 쏟아낸다. 

대니는 영화 내내 샤이닝 능력을 최소한으로 이용하지만, 조금 떨어져 있는 아이 아브라(카일리 커란)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한다. 영화에서 대니와 만나기 전까지 그는 적극적으로 그 능력을 활용해 대니와 텔레파시 대화를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의 샤이닝을 먹고사는 로즈(레베카 퍼거슨) 일행의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추격전과 함께, 샤이닝을 이용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추격전도 함께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는 과거의 대니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줄 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런 모습은 소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니와는 확실히 대비된다.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닥터 슬립>의 제목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노인들의 죽음 직전 조용히 잠들게 한다는 의미에서 그 노인들이 붙여준 대니의 별명이다. 그 별명처럼 대니는 이 영화 속에서 수많은 노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을 잠들게 한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단지 한 사람, 아브라에게만큼은 세상 속에 마음껏, 솔직하게 뛰어들라는 이야기를 한다. 과거의 굴레에 갇혀있던 자신의 경험을 뒤로하고 자신과 같이 샤이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다음 세대 아브라가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특별한 능력 '샤이닝'을 빼앗아가는 탈사회적 존재들

과거 시점에서는 정적인 성향을 가진 호텔이 한 장소에서 샤이닝을 빼앗아 흡수하는 존재였다면, 현재 시점에서는  돌아다니며 샤이닝을 찾는 로즈 일행이 등장해 매우 동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현재에 아이들의 잠재력을 빼앗는 존재들은 현재 시점에 맞게 과거와 다르게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다음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래서 영화 속 아브라는 초반에는 주변에 그 사실을 숨기지만 후반에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드러낸 그는 아주 당당하게 로즈 일행에 맞선다. 그런 과정에서 대니는 자신의 과거를 청산할 기회를 얻고 아브라는 자신의 잠재력을 세상에 숨기지 않을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 <샤이닝>은 원작 소설을 충실이 옮긴 영화는 아니었다. 다시 새로 쓴 영화라고 할 만큼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의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닥터 슬립>은 조금 더 원작 소설에 가까운 설정으로 그려진다. 전작 영화가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이번 <닥터 슬립>은 특별한 아이들이 가진 샤이닝이라는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 한 편으로는 엑스맨, 또는 히어로 영화의 스릴러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는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만족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원작 소설 방향으로 머리를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인 <샤이닝>과 꽤 많은 부분에서 연결된다. 전편에 나왔던 기괴한 존재들과 과거 방문했던 호텔을 그대로 등장시키고 음악과 화면 구성도 비슷하게 촬영하여 전편의 팬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영화 <닥터 슬립>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의 설정을 적절히 활용하여  만들어낸 영화

그렇다고 영화적 완성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기타 히어로 영화와 겹치지는 하지만 '샤이닝'이라는 능력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능력자들이 서로 꿈에서 대결하는 장면은 꽤 흥미롭다.

주인공 대니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는 섬세하고 연약한 인물에 대한 묘사를 탁월하게 해내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특히나 영화 초반 알코올 중독자일 때와, 후반 중독에서 벗어난 이후의 단호한 모습을 잘 소화했다. 로즈를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도 중독자 이미지와 약탈자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데 일조한다.

영화 <닥터 슬립>은 소설과 전작 영화, 둘 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각의 시선에서 모두를 이어가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전작 영화의 팬도, 원작 소설의 팬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영화가 공포영화 전문 감독인 마이크 플래니건 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해 반갑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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