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kbs1

 
 
그 어느 때보다도 광장이 뜨거웠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으로 대립한 사람들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만족하지 않고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너무도 극명하게 서로에 대해 증오로 가득한 말 폭탄을 쏟아놓는 시절, 과연 이런 대결의 현실이 봉합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당사자들은 '봉합'이 아니라 자신들의 '옳은' 의견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단언할 것이다. 문제는 그 대결의 양자가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대립, 궁하면 돌아가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빌려봐야 하려나.  

KBS1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시리즈가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5일과 6일에 걸쳐 방영된 이 작품은 증오의 진화론적, 사회사적 의미를 파헤쳤다. 

증오의 기원

진화심리학자 브라이언 헤어는 증오는 인간의 본성인지 묻는다. 인간과 유전자가 99% 일치한다는 보노보와 침팬지, 하지만 이 두 종은 친화적인 암컷 지배와 공격적인 수컷 지배로 전혀 다른 사회적 관계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다큐멘터리는 이를 지리적 원인에서 찾는다.

기원전 6백만 년 전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두 동물군, 먹이 걱정이 없는 보노보가 사교적이고 친화적인 공동체를 꾸렸지만, 한정된 먹이를 두고 경쟁을 해야 했던 침팬지는 다른 무리에 적대적인, 심지어 자식들이 많다고 여겨지면 어린 침팬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공격적 성향이 높은 무리가 되었다. 이를 통해 학자들은 먹이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자연적 환경에서 동물들의 증오가 싹텄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친화적이며 사랑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보여주는 적대적인 모습은 인간이야말로 가장 증오가 가득한 생명체임을 유감없이 증명해 낸다. 특히 인간이 증오를 표명하는 방식 가운데 '집단 따돌림'이 그 예다. 10대들의 왕따 현상을 살펴보면  따돌리는 아이들이 비주류라는 기존의 선입견과 달리 가해자들은 비주류도 아니고 따돌림은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외려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보편적인 행태로 보이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건 불공평함이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총기 난사 사건 등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기대했던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원인이었다고 다큐는 지적했다. 피해의식이 분노를 키우고 그 분노가 인터넷 공간에서 응원을 받자 범인은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뒤 그 분노를 폭발시킨다. 

특정하고 제한적인 세계관의 경험이 증오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동성애 반대 시위로 유명한 미국의 원리주의 침례교 단체에서 알 수 있듯 특정 관계 혹은 친족으로 얽힌 회원들이 자기들끼리 세계관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증오는 유전적인 요인에 사회적 배제를 통해 증폭되며, 자신이 소속된 집단적 정서로 인해 '폭력'의 정서를 수용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kbs1

 
편 가르기의 기원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집단을 미워할까? 인간은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종교, 인종, 정치 성향을 근거로 사람을 분류하고 자신과 닮은 편을 극단적으로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 원인을 인지 과학자 로리 산토스는 '부족주의'(tribalism- 부족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힘을 과시하는 현상)에서 찾는다. 1950년대 사회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오클라호마에서 15살 소년들을 모아놓고 가짜 야영 캠프 실험을 했다. 가상의 시합을 한다고 편을 가르게 된 소년들은 급기야 기를 불태우고 야영지를 습격하는 등 상대집단을 괴롭히는 등 경쟁이 과열되는 행동의 변화를 보였다. 

이를 통해 개인의 행동은 그의 성격이 아니라 직장, 가정, 지역 사회 등 이른바 그가 속한 '부족'에게서 영향을 받는다는 게 증명됐다. 더구나 경쟁해야 하는 상황은 집단 간 증오심을 발동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을 연고로 한 스포츠 팬들의 강한 충성심을 보자. 다큐멘터리는 스포츠를 진화한 형태의 전쟁이라 정의 내린다. 사람들은 일종의 전리품인 트로피 등을 중심으로 결속한다. 옆의 팬이 공격당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느끼고, 축구가 아니라 동료 팬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폭력적이 되는 상황. 개인들은 적극적으로 집단을 보호하고 방어하며 마치 각자가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우처럼 서로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 된다. 이런 폭력적 편 가르기는 과거 부족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단결이 곧 생존을 보장했던, 서로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심리 기제에서 비롯된다.

이런 정체성 융합에 기반한 '부족주의'가 정치에서도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의 진보적 민주당원과 보수적 공화당원은 서로 자기 쪽만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 진영을 '악'이라 규정하며 증오한다. 심리적 구조는 스포츠 부족주의와 동일하지만 그 신념과 윤리적 강도는 정치적 진영논리가 훨씬 더 심하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 관계망을 파괴하는 것이다. 성향이 다르면 가족이라도 함께하지 않으며, 타 인종보다도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걸 피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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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kbs1

 
증오의 도구가 된 기술의 발달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터넷, 블로그 등의 기술의 변화는 이런 양극화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부족주의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언론 매체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좀 더 자극적이고 신랄하게 전달하여 수익을 올린다.

페이스북 등 사용자가 집단 안에서 위안과 안전함을 느끼도록 패러다임이 짜인 각종 소셜 미디어는 생각이 다른 팔로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내집단 구성원들만 대화하는 밀폐된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여기에 더해 사용자의 관심을 오래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전달하도록 만든 알고리즘은 분노, 공포같은 부정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의 콘텐츠가 활개치도록 유도한다.

지난 2016년 '모든 무슬림은 극단주의자'라는 생각을 가진 극우 불교 승려 위라투는 무슬림 남성이 불교도 여성을 성폭행하는 '가짜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다. 무슬림이 다수 불교도를 위협한다고 선동하는 이 영상으로 인해 불교도의 폭동이 유발되었고, 2017년 미얀마 서부 무슬림 소수 민족 로힝야족 학살이 초래되었다.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할 페북이 추악한 인간 본성을 품어낸 결과였다. 

외부인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선동하는 것만큼 집단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건 없다. 이에 감정 이입을 한 인간들은 같은 종인 다른 인간에게 서슴없이 잔혹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갈등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미 힘의 균형점을 잃은 지 오래지만, 상대가 당한 부당함은 보지 않은 채 각자 자신들이 가진 상흔의 역사를 언급하며 자신들을 '희생자'라 여긴다. 

이러한 경쟁적 피해의식은 궁극에 가서 상대편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실제와는 다른 심리적인 상태에 따른 인식은 확증 편향(자신의 신념, 가치관, 판단 따위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며 정치인들은 이를 부추긴다.
 
인지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에 근거하여 추론해 본 '증오 사회'의 기원, 인간이 아닌 동물 실험과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사례들이 등장했지만 그 사회가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는 증오로 분열돼야 할까. 우린 폭력적 갈등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까? 그 암담한 현상에 대한 희망을 앞서 셰리프의 실험이 전한다. 편을 갈라 싸우던 소년들, 하지만 급수하던 탱크에 돌을 넣어 당장 마실 물이 급해지자 갈등은 잠시 접어두고 '물 구하기' 합동 작전을 벌인다. 이렇듯 보다 긴급한 상위의 목표는 집단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한때 적이 보다 더 큰 적 앞에서는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집단 간의 증오는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가 전한 일종의 희망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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