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 인터뷰 사진

배우 천우희 인터뷰 사진ⓒ 나무엑터스

 
"모든 걸 다 소진했다라고 스스로 느낄 때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하고 싶었고, 뛰어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서 실망하기도 했다."

2011년 영화 <써니>에서 불량학생 상미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후 지난 8년여 동안 천우희는 수많은 영화에서 존재감 있는 연기를 펼쳤다. 2013년 영화 <한공주>로는 여러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쓸었으며 2016년 <곡성>을 통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특히 올해는 3월 <우상>부터 <메기> <버티고>까지 주연 작품만 3개째 개봉을 알린 데다, 지난 9월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신인 작가 한진주로 분해 많은 호평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를 통해서는 목소리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천우희가 "스스로에게 실망해 슬럼프를 겪었다"고 털어놓았을 때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천우희는 "그 전에는 '어떻게 완벽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겠냐, 아쉽더라도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 때는 할 여력이 없었다. 처음으로 의욕을 잃었다"고 당시를 고백했다.

"<우상> 촬영 때가 그랬다. 7개월 동안 촬영했는데, 원래 정해져 있던 시기보다는 촬영 기간이 늘어났다. 이수진 감독님과 (<한공주>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라서 욕심이 좀 났다.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했고 보답하고 싶었다.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7개월 동안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 게다가 촬영이 길어지다 보니, 항상 스탠바이 상태여야 했다. 그땐 (역할 상) 눈썹이 없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었다. 스스로 부족한 게 눈에 보여서 다음 작품을 선택하거나 연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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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천우희 인터뷰 사진ⓒ 나무엑터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역시 '휴식'이었다고. 올해 다섯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했지만, 사실 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작년 혹은 그 이전에 찍어둔 것들이다. 천우희는 약 1년 정도를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슬럼프를 겪기) 전보다는 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저 스스로 편안하게 생각하려 한다. (이전에는) 아주 극단까지 몰아붙이거나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도 내 기준에 괜찮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니까 미련을 갖지 말자고 생각한다. 좀 더 여유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천우희가 기나긴 휴식 끝에 선택한 작품은 <버티고>였다. 16일 개봉한 영화 <버티고>는 현기증 날 만큼 높은 고층빌딩의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30대 비정규직 직장인 여성 서영(천우희 분)의 이야기다. 천우희는 "시나리오에 너무 공감해서 울컥했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공감이라는 감정이 되게 재미있다. 어떤 공감은 너무 공감해서 불쾌할 때가 있고, 어떤 공감은 위로나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이야기는 그 맥락이 아닌데, 순간적으로 공감될 때도 있다. 그러면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아주 좋은 퀄리티,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니어도 그냥 내가 처한 상황과 (작품이) 비슷할 때 그런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버티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가 작년이었는데, 1년 동안 작품을 안 했을 때다.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마지막 대사가 제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자신감도 없었고 내가 이렇게 계속 해 나가도 될까 의심하던 시기였는데 그 대사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때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니까 '배우는 결국 현장에서 가장 행복하고 연기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말고 또 다른 연기나 작품, 현장에서 풀어나가야겠다 싶더라."


극 중에서 서영은 IT회사의 계약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는 사무실에만 오면 현기증과 이명 증상에 시달리지만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 보청기도 마음 편히 낄 수 없는 실정이다. 남자친구가 있지만 언젠가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가족조차 그에겐 기댈 곳이 되지 못한다. 천우희는 서영의 상황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살아가기가 너무 팍팍한 것 같다. 각자 본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들도 많지 않나. 딸로서, 직장 안에서 직급으로서, 또 결혼을 했다면 아내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할 때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지 않나. 힘겨운 순간들, 힘겨운 자리를 버텨내야 한다는 설정 자체에 공감이 갔다. 영화에서는 30살을 갓 넘은 계약직 여성이라고 특정지었지만,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영의) 압박감이나 공허함은 다들 느끼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되게 많이 교류하고 있는 것같지만 외롭고 고독할 때가 많은데 그런 점이 공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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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천우희 인터뷰 사진ⓒ 나무엑터스

 
천우희 역시 극 중 서영이와 비슷한 30대 초반이다. 앞서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 한진주(천우희 분)가 쓰는 드라마 제목 역시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였다. 서른이 된 이후 진짜 괜찮아졌냐는 물음에 천우희는 "전혀 괜찮지 않다"고 웃으며 답했다.

"물론 괜찮아진 면도 있다. 경력이 쌓여가고, 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도 생겼다. 그래도 아직 어색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그럴(안 괜찮을) 것 같다. 마흔, 쉰이 돼도 어려운 것들은 계속 어렵지 않겠나. (배우) 선배님들을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느 정도 연륜도 있고 나이도 들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제가 우러러 보는 선배님도 '아직 연기가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얘기하시더라. 나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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