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진리상점' 화면 갈무리

유튜브 '진리상점' 화면 갈무리ⓒ JINRI MARKET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이 과거 영상 속 설리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솔직히 고통이었다. 지난 1월 공개된 웹 예능 <진리상점>의 스페셜 영상 속 설리는 허심탄회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방송을 마치며 출연자와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평소 소탈하고 솔직한 설리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발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고 나서, 제작진이 '논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친구들한테 미안했어요. 좋은 친구들인데. 착하고 예쁜 친구들인데. 왜 나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하지.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아는데. 저한테만 유독 색안경 끼고 보는 분들이 많아서 속상하긴 하죠.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악플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리상점>을 하면서도 제 편도 많이 생기고 좀 더 저를 알게 되지 않았나."

수년간 지속된 논란 속에 자신보다 예쁘고 착하다던 '좋은' 친구들을 더 걱정했던 설리. 그로부터 6개월 뒤, 설리는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해 자신에 대한 악플을 담담하게 읽어나갔고, 예의 그 환한 미소로 시청자들과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바로 2017년 월간지 <그라치아>와 나눈 설리의 인터뷰였다. 데뷔 후 14년간 긴 단독 인터뷰를 많이 남기지 않은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연기자 설리의 흔치 않은 장문의 인터뷰였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답변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한 설리의 답은 이랬다.

재밌는 사람, 설리

"되게 재밌는 사람이에요. 저는 어떨 땐 여섯 살짜리 꼬마였다가 갑자기 사춘기 소녀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60대 할머니처럼 세상 다 산 것처럼 그래요. 종일 우울함에 빠졌다가도 '아, 재밌는 거 하자!' 하며 기운 차리고. 말하고 보니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암튼 제 주변 사람들은 저랑 같이 있으면 엄청 재밌다고 해요. 지금도 그렇죠?"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네!'라고 답해주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어렵지 않다. 설리가 말한 '재미'의 다른 표현은 결국 생의 활력일 터. 조금 더 자신의 생에, 자신이 느끼는 재미에 솔직했고, 충실했던, 스물다섯 설리는 이제 없다. 때로는 여섯 살짜리 꼬마였다가, 때로는 할머니처럼 세상 다 산 것처럼 굴었다던 설리.

'연예인'이었던 설리 또한 누구나 그러하듯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감정과 싸워나갔을 뿐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그 감정들을, 그 모습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공유하고자 했을 뿐이다. 자신이 느끼는 재미를, 자신이 가진 재능이라 느낀 그 활력들을 남들보다 조금 더 나누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한 재미가, 젊은 여성 연예인이 추구하는 그 활력이 고루하고 보수적인 세상의 기준과 달랐을 뿐이다. 아니 다른 것, 튀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은 그 남성 기득권 위주의 기준이 설리를 음험하고 선정적으로 몰아갔던 것뿐이다.

그렇게, 설리의 재미는 일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유례없는 '조리 돌림' 대상이 됐다. 설리에게 쏟아지는 악플과 인터넷 커뮤니티 글은 이를 꾸준히도 집요하게 기사화한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로 확대 재생산됐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악플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던 설리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설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14일부터 비공개 발인이 진행된 오늘(17일)까지 (또 다른 악플과 함께) 수많은 애도가 이어졌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부 언론의 반성과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반면 또 일부 매체들은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 직후 제목 장사, 선정적인 보도에 나선 모양새다. 후안무치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그래서 설리를 향한 애도와 추모가 과거 설리의 바람처럼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회의적이다. 일부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과 부재가 가져다준 회의감은 줄지 않고 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도 그러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설리와 같은 연배인 2030 여성들일수록 '당사자성'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더, 설리의 부재를 슬픔으로, 고통으로 느끼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가 아닐는지. 다만, 그 분노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세상을 등진 여성 연예인들과 설리와 또 안타까운 선택을 할지 모를 또 다른 설리들을 위해서라도.

악플 확대 재생산한 이들

"고 최진리 님의 생전에 고인을 괴롭히는 데 일조했던 기사들이 속속 실시간으로 삭제되고 있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는 분들은 관련 기사들을 캡처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바이라인과 날짜, 출처가 나오도록)"

권김현영 여성학자가 17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 이후, 설리를 극단으로 몰아간 가해자로 각종 매체들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이 '악플'을 지목하고 나선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자 적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연한 목소리를 접하자, 3년 전 썼던 칼럼 속 그 기함할 만한 기사 제목들이 떠올랐다.

- 설리 연인 최자... "설리, 밤에 전화해서 0 해달라고 조른다" <조선일보>
- 설리, 최자를 만나는 이유? 그의 물건을 바라볼 때 '만족' <세계일보>
- 설리, 안경 쓰고 침대에 누워... '묘한 분위기' <채널A>


2016년 4월 썼던 기사(누가 설리를 음란하게 만드는가) 속 기사 제목들이다. 그저 공개 연애를 했을 뿐인 이십대 초반 여성 연예인에게 쏟아냈던 유력 언론의 저 저열하고 질 낮은 기사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설리를 괴롭혔으리라.

비단 저들 매체뿐이었던가. 이른바 '어뷰징'이란 이름 아래, 알량한 클릭 장사를 위해 설리를 향한 악플을 기사화하고, 소셜 미디어 속 글과 사진을 퍼다 날랐던 언론들에게, 매체들에게 과연 설리의 죽음을 추모하고 애도할 자격이 존재하는가. 17일자 <한겨레>의 <"한번 찍히면 개미지옥"…'악플'과 공생하는 언론·포털> 기사도 그 자격을 묻고 있었다.

"실제로 16일 <한겨레>가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설리가 걸그룹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개인 활동을 시작한 2015년 8월 7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설리를 다룬 기사는 일간지와 전문지에서만 9238건에 이른다. 그에 대해 가장 많은 가십성 정보를 쏟아낸 일반 연예지를 빼고도 기사 건수가 1만 건에 육박한 셈이다."

악플러만의 문제인가

"사이버 테러에 관하여, 사과와 반성으로 그치지 않고 언어폭력(악플), 악플러를 발본색원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수사기관에 의뢰 및 법적 조치와 정부에 질의 및 청원을 하여, 그 어떠한 것들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강경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대중문화예술산업종사자,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무분별하게 전하는 언어폭력(악플)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초강경대응 할 것을 재차 밝히는 바입니다."

16일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가 내놓은 입장문 중 하나다. 연매협은 악플러 근절을 위한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과연 그러한 방향이 전부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연 '악플러'만의 문제인가. 선정적인 언론 보도는 둘째 치더라도, 그간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소속 연예인들의 인권을, 특히 여성 연예인들의 인권을 어떤 방식으로 보호해왔는지도 의문이다. 악플이나 언론 보도는 사실 공개된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일 수 있다. 하지만 소속사 차원에서, 수익을 가져다주는 이들의 인권을, 그리고 이들의 정신 건강을 온전히 보호해 왔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연예인 성 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을 통해 여성과 청소년 연예인의 반인권적 실태를 고발했던 것이 2010년이다. 데뷔한 지 14년 차의 스물다섯 설리야말로 그러한 어른들의 욕망이 만든 세상, 그 음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재미있게 살고 팠던 '개인' 아니었을까.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았다. 아이돌 선배이자 연예계 선배인 김동완이 15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 뼈아픈 이유다.

"더 많은 매체들과 더 많은 연예인들이 생겨나면서 서로에게 강요받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섹시하되 섹스하지 않아야 하고, 터프하되 누구와도 싸우지 않아야 하는 존재가 되길 원하고 있죠. 많은 후배들이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설리는 지금 없다, 그러나

설리는 지금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피해자' 설리는 일종의 '투사'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기자들에게, 시청자들에게 그저 예쁨받고 싶었지만 논란 이란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소비'되기에 바빴던.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자신만의 재미와 시선을 또 다른 설리들에게, 같은 여성들에게 널리 공유하고자 했던. 그래서 더 예쁘고 착한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미안해했던.

누군가는 분명 가해자 의식을 느껴야 한다.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에 분노하는 이들이, 그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잡아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성학 연구학자 권김현영의 말마따나, "범죄와 스캔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즉 "남자 연예인의 범죄는 스캔들로 취급하고 여자연예인의 스캔들은 범죄처럼 취급"했던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박제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서라도 제2, 제3의 설리들을, 설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또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겐 최소한의 공범의식 또한 요구된다. 그렇게 그간 설리에게 쏟아진 논란이란 이름의 가해를 방관했거나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방어하지 못한 이들 역시 최소한의 '공감'이 절실한 상황이다. 

'설리가 진리' 최진리는 이제 없지만, "예뻐해 달라"던 설리의 호소에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각자의 일들로 '응답'해 나가야 할 것이고. 그리하여, 박막례 할머니가 설리에게 남긴 추모 글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영원히 스물다섯 살로 남은 '설리가 진리' 설리(최진리)씨, 부디 편안히 쉬시기를.

"설리야 착하고 착한 설리 하늘나라에서 너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할머니가 설리 또 만나는 날 김치 갖다 줄게 많이 가져 갈게 사랑하는 설리야 명복을 빌게 설리야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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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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