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포스터

영화 <조커>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한 아이가 아무도 없는 해안에 홀로 있다. 입이 찢어진 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덮여 죽기 직전의 갓난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로 결심한다. 이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어느 연극배우, 그리고 그가 데리고 다니는 늑대를 만나게 된다. 연극배우는 입이 찢어진 이 아이를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입이 찢어진 아이의 별난 외모 덕에, 이들이 꾸리는 유랑극은 나날히 인기가 높아져만 간다.
 
사실 아이의 찢어진 입은, 당시 아이를 납치해 괴물로 만들어버려 돈을 벌려는 어느 집단의 소행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게 많았다. 아이의 모습이 기괴하면 기괴할수록 인기는 높아졌고 돈이 많이 들어왔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괴물이 되었다.
 
입이 찢어진 아이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예의 그 집단에 의해 웃게끔 만들어진 아이였다. 연극배우와 함께 다니게 된 아이는 어떤 누구를 보던 웃었다. 누구라도 그 아이를 보게 되면 웃었다. 동시에 두려워했다.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가 자신의 소설 중 가장 걸작이라고 자평했다. <웃는 남자>는 1928년 폴 레니, 2013년 장 피에르 아메리스의 영화로 재탄생한 바 있다. 하지만 웃도록 설계된 남자, 아니 입이 찢어진 남자, 아니 그윈플레인이 문학을 넘어 대중문화에서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건 그가 조커라는 다른 이름으로 대중 앞에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녹발과 녹안, 창백한 피부와 아물다 만 찢어진 입 그리고 보라색 연미복은 2008년 이후 조커의 상징물이 되었다. 히스레저 때문이었다. 불과 10년 전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의 그 착하고 잘생긴 배우가 한 달간 모텔에 박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줬던, 지옥 끝까지 타락하다 못해 스스로가 재앙으로 변모한 조커의 모습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 충분했다. 이전에는 없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영화 <조커>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조커를 연기했던 잭 니콜슨이 있었지만 그는 개인에 대한 희롱과 농락을 즐기다 살인으로 마무리하는 광대의 이미지가 강했다. 사실 이건 팀 버튼 특유의 몽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많이 투영된 탓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도시 하나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건과 테러로 불안에 떨게 하고 배트맨을 지긋지긋한 인내심의 끝으로 모는 걸 즐기는 인물은 히스레저의 조커가 유일했다.
 
물론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략 덕분이기도 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놀란의 연출은 이전까지 절대선에 가까웠던 배트맨의 이미지를 도시의 자경단으로 치환시켰다. 직전의 팀 버튼 버전 배트맨이 시민들에게 선망받는 캐릭터였다면 놀란의 배트맨은 공권력의 미움을 받고 범죄조직의 원망을 받는 캐릭터였다. 그는 더 이상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커는 그런 배트맨의 대척점이었다. 배트맨에게 경제력과 무술실력 그리고 선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다면, 조커에게는 그 신념을 꺾어버리려는 집착이 있었다. 너도 결국 나처럼 가면을 쓴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조커의 집착과 히스레저의 광기가 놀란의 조율 속에 녹아들었고, 그렇게 재앙이 태어났다.
 
조커는 필연적으로 배우로 기억되는 캐릭터였다. 코믹스를 찢고 나와 처음으로 시청자와 마주한 조커는 1996년 텔레비전 드라마판 <배트맨>에 출연했던 세자르 로메로였다. 그는 직전까지 코믹스 윤리규정에 의해 잔혹한 범죄자와 광대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던 조커를 완전한 광대로 재해석했다. 세자르 로매로의 조커는 이후 등장할 조커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는 세자르 로메로의 광대이미지를 이어받아 원작 코믹스에서 마피아 출신이라는 설정이 추가됐다. 하지만 여기서 실수가 생겼다. 조커의 흰 피부와 녹안, 녹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왜 미쳐버렸는지에 대해 '화학약품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설정이 들어간 것. 이는<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조커의 설정에 인용된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20년 전 잭 니콜슨의 조커의 설정을 세월의 힘으로 무산시키고 등장한다. <다크 나이트>에는 조커가 악이 된 사연을 등장시키지 않고, 조커 스스로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파티장에서 자신의 입이 찢어진 다양한 사연을 말하지만 사실이 다양하다는 건 실체가 없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과거와 실체, 기괴한 모습을 둘러싼 사연, 그를 추종하는 집단의 규모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기에 조커는 그 자체로 고담시를 향한 재앙 그 자체인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결국 악에게는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설명했다. 히스레저의 조커는 세자르 로메로의 조커를 이어받아 사연은 없지만 배트맨을 타락시키려는 단 하나의 목적은 뿌리깊게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 모습은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조커의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러니까 불과 10년 후,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사이에 등장했던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잭 니콜슨의 조커의 '화학약품에 빠져 정신이 나가버린 마피아두목출신 광대'라는 설정에 자신을 치료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에 빠져버린 할리 퀸과의 연인관계라는 설정이 추가된, 조커 팬들에게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캐릭터가 되었다. 자레드 레토의 연기는 문제없었다. 액션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의 광선검 씬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고 그나마 집중을 할 수 있는 타이밍에는 조커와 할리퀸의 애정공세가 개연성을 폭격하기 시작한 영화이 연출이 문제였다. 연출만으로도 개성있는 한 명의 캐릭터를 사장시킬 수 있다니. 데이빗 에이어 판 조커는 조커의 팬들에게 이래저래 잊고 싶은 악몽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사실 토드 필립스가 연출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하는 <조커>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많은 영화 팬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혹시 <행 오버>시리즈와 <듀 데이트>를 감독한 토드 필립스의 역량을 의심한걸까. 그게 아니라면 <글래디에이터>, <그녀>에 출연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이 부족해서였을까. 영화 팬들은 이미 3년 전 기대가 꺾인 경험이 있었고 같은 종류의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아했다. 현재 할리우드에 있어서 조커 캐릭터를 리부트 한다는 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뛰어넘는 판타지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건 퍼시 잭슨, 아니 퍼시 잭슨 할아버지가 와도 해낼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그런 우려에 대해 가볍게 웃으며 대처한다. 그리고 그런 걱정 하지 말라고 영화 내내 관객을 향해 웃어댄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영화를 보며 감히 웃어대지 못한다.
  
 영화 <조커> 스틸 컷.

영화 <조커> 스틸 컷. ⓒ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 코리아

 
아서 플렉은 길거리의 광대다. 그는 실제 기분과 상관없이 웃음이 터지는 병이 있다. 그는 이 세상이 갈수록 미쳐가고 있고, 그래서 자신이 항상 웃음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는 늦은 날 지하철에서 세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던 중 우발적으로 그들을 살해한다. 평소에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그가, 그 사건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어느 날 모종의 이유로 사장에게 해고당한 그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의문, 어머니의 비밀스런 과거, 자신의 병을 병이 아닌 기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 불합리한 세상, 그리고 거기에 불평하는 자신들을 용기없는 겁쟁이라 욕하는 토마스 웨인의 비아냥에 분노한다. 그 분노를 추진삼아 영화는 종결부까지 지침없이 달려나가다 모두가 익숙해하는 한 장면에 우리를 하차시킨다. 그곳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히어로영화는 사회 문제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도구로 오랫동안 이용되어왔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가 각자의 가치관을 내세워 규모를 경쟁적으로 부풀리면서 최근에는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지의 비판도 있었지만, 코믹스나 영화에서 내보인 사회문제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일관적이었다.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인식, 범죄를 막기 위한 히어로 존재에 대한 타당성, 그리고 그런 폭력에 통제권이나 자율권 중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런 점에서 <조커>가 북미 개봉한 첫날 경찰들이 극장으로 입장하는 관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했다는 뉴스는 실소를 머금게 함과 동시에 불안을 낳게 한다. 10년 전 <다크 나이트>가 북미에서 개봉한 이후 어느 관객이 극장에 총을 반입해 관객석에 난사했던 적이 있다. 범인은 조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번에 극장에 경찰들이 배치된 것도 예의 유사범죄를 막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가 그대로거나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을 관객들은 은연 중에 알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무엇이든 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극적이다.
 
"난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야"라는 조커의 말은 이미 은연 중에 퍼져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로 인해 일그러지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 해야 한다는 모순을 압축한 대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끝에 아서 플렉이 짓는 웃음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전율과 공감 그리고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돕는 건 아서 플렉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닌 그의 삶을 옥죄고 있다가 끊어져버린 무언가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에 불안을 초래하는 빌런을 히어로가 격퇴하고 히어로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그래서 빌런은 매력적일지언정,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그의 광기에 대한 관객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더불어 <조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처럼 혼자서 빛을 발할 역량을 충분히 갖춘 영화이면서 DCU에 대한 종속 역시 가능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한 이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서운한 일이다. 80년 전 슈퍼맨을 본 따 어둠의 기사를 창조한 사람은 밥 케인과 그의 스토리 작가 빌 핑거였다. 그리고 그의 숙적이자 우리가 너무나 사랑해마지않는 조커를 탄생시킨 건 제리 로빈슨이란 사람이었다. 히어로가 아닌 빌런을 바라보는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과 상상력, 그리고 희열을 창조해내고 8년 전 조용히 영원한 잠에 빠진 제리 로빈슨에게 이 모든 공을 돌린다. 당신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즐거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