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40년 경력의 이 명배우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지만 동시에 집에선 빵점짜리 엄마다. 모처럼 잡힌 언론 인터뷰, 그리고 그의 자서전 출간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딸과 남편, 손녀가 찾아왔지만 이 엄마의 태도 뭔가 묘하다. 끈끈한 듯 보이지만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여러 작은 상처들을 서로에게 지닌 이 가족. 영화가 끝날 때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우리에겐 가족 영화로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다.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바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 그가 프랑스에서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과 작업한다고 했을 때 영화팬들은 십중팔구 궁금했을 것이다. 

재치와 여운이 강한 유머

결론부터 말하면 국적과 배우를 달리했음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가족에 대한 탐구가 이번 영화에도 진하게 담겼다. 이전까지 여러 그의 작품이 잔잔한 분위기 안에서도 가족이 직면한 위기와 극복 방식에 대해서 만큼은 파격적이었다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보다 가볍고 재치가 넘친다. 그렇다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어찌 보면 전통주의 가족을 벗어나 대안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의 형태를 꾸준히 제시했던 감독의 세계관이 보다 확장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관록의 프랑스 명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는 연기를 위해서라면 진실마저 가리고 심지어 이용하는 사람이다. 엄마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을 지닌 루미르(줄리엣 비노쉬)는 남편 행크(에단 호크), 손녀 마농(마농 끌라벨)를 대할 때 파비안느는 특유의 입담과 솔직함을 보이지만 동시에 때론 그게 상대에겐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이를 '여배우의 특징'이라 눙치며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는 파비안느. 과하면 미워 보이겠지만,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파비안느는 나름의 애정을 표현한다. 영화는 그런 파비안느의 일상과 일터인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파비안느가 품고 있는 정서에 한걸음씩 다가가게 한다. 

엄마의 자서전이 대부분 과장됐고, 심지어 자신을 비롯해 소중한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빠진 것에 상처받은 루미르는 종종 그 아픔을 비난으로 뒤바꿔 칼날처럼 내뱉는다. 물론 핑계다. 영화는 마농을 통해 파비안느와 루미르 모두 자신 스스로를 비롯해 상대방을 속이고 있음을 알리며 제목대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내보이려 한다.

물론 그 이후는 모두 관객의 몫이다. 재밌는 지점은 이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가 지닌 정서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훨씬 밝고 경쾌하다는 사실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 던지는 대사, 캐릭터들의 크지 않은 동선, 건조해 보이지만 등자인물 내면엔 어떤 큰 아픔과 상처가 있음을 감독은 보이곤 했다. 

대안 가족 넘어 대안 공동체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이에 비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너무도 서로를 잘 아는 등장인물들이 애써 자신의 상처를 꾹꾹 눌러담지 않고 서로에게 표현한다. 배우, 창작자 DNA가 있는 집안이기에 이들은 저마다 서로를 향해 진심인듯 연기하거나 심지어 눈물까지 쏟는다. 꽤 폭소가 나온다. 물론 이 폭소는 쉽게 증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편화돼 있고 상처받은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의 과정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이라는 국적에 얽매인 이가 아닌 영화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에서 굳이 어느 한쪽 나라를 지지하거나 동조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차원의 화합과 교류를 그의 영화를 통해 얘기할 수 있겠다. 이젠 환상이 된 국가주의, 종족주의에서 벗어나 그의 영화처럼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논해야 하지 않을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고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한국인과 일본인이기 이전에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일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일 수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이 감독은 꾸준히 제시하고 있었다.

한 줄 평: 멈추지 않는 내면 성찰, 무겁지 않아도 이렇게 진실할 수 있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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