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부산국제영화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


01.

의심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는 제제 타카히사 감독은 영화의 표현만큼이나 장르적 범주에 있어서도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일본의 중견 감독이다. <헤븐스 스토리>(2010), <고독사>(2011), <우죄>(2017) 등의 작품을 통해 최근에도 끊임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원제 <낙원>으로 알려진 신작 <약속의 땅, The Promised Land>를 통해서 말이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챕터에서 벌어지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이어낸 영화다. 한 소녀의 실종과 연계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계와 차별, 믿음과 구원과 같은 요소들을 흥미롭게 이끌어낸다.

먼저, 1부에 해당하는 '죄'에서는 아이카라는 어린 소녀의 실종이 중심이 된다. 어느 날, 마을 근처 논 한가운데 있는 Y자 모양의 교차로에서 실종된 아이카. 밤샘 수색에도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그녀의 행방 대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겨진 책가방 하나뿐이었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톨이 취급을 받는 다케시와 실종된 아이카의 가장 친한 친구 츠무기가 소개되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녀의 실종과 관계를 맺고 캐릭터를 형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이동식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며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유지해 가는 다케시가 영화 시작과 함께 폭력에 노출되면서 그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 인물인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12년 후의 시점부터다. 아이카의 실종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과거에 진 빚을 이번에는 반드시 갚겠다는 듯 누군가 반드시 범인으로 색출해 내고자 하고, 그 희생자는 다케시가 된다. 한편, 이를 바라보는 츠무기는 아이카가 실종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
 
 영화 <약속의 땅> 스틸컷

영화 <약속의 땅>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2.

2부인 '벌'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교차로 너머 고령의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 거주하는 양봉업자 젠지로다. 그는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양봉과 관련된 산업을 키워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을 세운다. 마을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잡일도 나서 도맡는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엎어짐과 동시에 자신들의 동의를 완전히 구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치욕스러울 정도의 배척을 당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의도와는 달리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살만한 우연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게 되고, 그는 결국 마을 속에서 피가 마를 정도의 고립감 느끼게 된다.

1부의 내용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마을 전체의 의심 속에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그의 행동 이후에도 사람들은 타인을 향한 의심과 분노를 멈추지 못한다. 이번에는 특히 츠무기에게 그 비난이 심하게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아이카의 할아버지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왜 아이카는 죽고 너는 살아 있느냐고.

03.

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상황이 겹쳐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 이번 작품 <약속의 땅>은 믿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가장 두드러지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특정 집단에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가해지는 집단의 맹목적인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위해적인 행동들이 영화의 1부와 2부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와 더불어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믿음과 그 믿음의 유약함에 대해서도 이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화 속 다케시와 츠무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물리적인 경계만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이카의 할아버지와 츠무기의 짧은 대화 속에서는 세대간의 경계, 그 경계 양쪽에 위치한 다른 세대에 대한 유약한 믿음 또한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에 적기란 없다고 말하는 츠무기(새로운 세대를 대표)와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며 또 한번 회피하고자 하는 아이카의 할아버지(기성 세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약속의 땅> 스틸컷

영화 <약속의 땅>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4.

1부와 2부에서 구성된 경계의 설정 및 첨예한 대립, 분노의 축적과 같은 요소들은 3부 '휴먼'에 이르러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보이며, 위의 내용들을 이끌어 낸다. 여기에서 '해소'라는 단어의 의미는 원 의미 그대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낸다는 뜻에 조금 더 가깝다. 모든 문제의 '해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가령, 츠무기의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은 해피 엔딩 쪽으로 흘러가는 듯싶지만, 젠지로의 미래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회복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카의 실종 이후 츠무기의 유일한 동급생 친구였던 히로와의 3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른 약속과 믿음을 통해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영화가 말하는 것 같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끔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츠무기가 히로를 향해 '아무데도 가지 마'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그녀는 자신이 믿음을 주었던 모든 관계들이 부정적인 결말을 믿었다는 것에 대한 상처가 큰 인물이다)처럼 말이다.

05.

영화의 타이틀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원제에 해당하는 '낙원'의 경우에도,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약속의 땅'의 경우에도 말이다. 먼저, '낙원'이라는 타이틀을 떠올린다면,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그리고 있는 각각의 낙원의 형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무너뜨리더라도 내가 설정해 놓은 낙원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의 두께에 대해 말이다. 어떤 부정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낙원을 지키고자 믿음을 사수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약속의 땅'에 대해서도 우리가 '약속의 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공간에 반드시 어떤 약속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 약속의 땅에는 이미 떠나버린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모습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서로에 대한 현재의 믿음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 양 쪽 모두가 사라져 버린 후라면, 강아지 레오와 같이 버려지게 될 무용한 믿음일 수도 있겠고.

"모두를 위한 결말이 필요했어.
누군가 죄인이 되면 모두가 안식하게 되니까."


영화 속 이 두 줄의 대사만으로도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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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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