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뉴컨텐츠컴퍼니

 
"지지리도 가난한 하급 병사의 아들로 태어나지.
아버지는 전쟁에서, 어머니는 전염병으로 죽어갔네.
난 이방인의 유대인에 입양됐지. 그들은 날 동정했어.
날 형제라 불렀지만, 더 맛있는 빵은 그들의 아들과 딸에게 주었네.
열심히 착한 척 열심히 예쁜 척 그들의 환심을 샀지.
하지만 내 손에는 반토막 난 빵만을 줬어. 먹다 남은 동정."
- 뮤지컬 <벤허> 넘버 '나 메셀라' 중에서.

 
뮤지컬 <벤허>의 <나 메셀라> 넘버를 들으면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진다. 내가 베푼 선의를 상대방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이 기쁘지 않다면, 그건 선의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로마인이었던 메셀라는 유다 벤허의 집에 입양되고, 둘은 각별한 친구 사이가 된다. 그렇게 믿고 살았지만, 상황이 맞물리면서 이들은 엇갈린 운명을 걷는다. <벤허>는 이들의 이야기다. 벤허는 부모를 잃은 메셀라를 자신의 친부가 입양해 거뒀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메셀라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의 동정에 비참함을 느꼈고, 자신의 결핍을 마주했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서 '성공'을 향한 불씨가 됐을 것이다.
 
<벤허> 속 메셀라는 악역이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벤허가 이를 악물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활력이 된다. 160분 동안 펼쳐지는 대서사임에도, 극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인물이 바로 메셀라다.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뉴컨텐츠컴퍼니

 
이같이 매력적인 인물 메셀라를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이 펼친 배우는 바로 박민성이다. 2년 만에 다시 오른 <벤허>에 이름을 올렸고, 초연 때보다 더 깊어진 내공을 펼치고 있다. '벤허' 중심으로 흘러가는 극이지만, 메셀라의 감정에 이입하게 하는 데는 박민성의 힘이 컸다. 박민성을 지난 9월 1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 번 올랐던 무대라, 쉬울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제안이 왔을 때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어요. 메셀라라는 인물을 다시 맡는 것이지만, 2년 사이 저라는 사람도 바뀌었을 테니까요. 인물을 바라보는 감정이나 가치관 등이 2년 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거죠. 다시 메셀라를 만났지만, 인물 감정과 상태에 집중했어요. 아무래도 임팩트 있는 악역이라 관객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고요."
 
다시 오른 무대지만, 결코 쉽사리 다가가갈 수 없었다는 박민성. 초연에 비해 14곡이 추가돼 많은 감정이 더해지고, 개연성도 높아졌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벤허> 메셀라를 제일 연습 많이 한 사람은 저일 거예요. 인물에 대해서도 연출 다음으로 많이 생각했고, 메셀라 넘버도 제가 제일 많이 불렀죠. 그래서 메셀라는 제게 특별해요. 물론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벤허 못지않게 힘든 인물이에요. 1막에서는 등장도 많지 않은데 왜?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등장하지 않아도, 계속 감정을 이어오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 돼서 쉽지 않죠."
 
나라를 잃고 로마의 박해를 받게 된 예루살렘. 귀족 가문 유다 벤허가 로마 장교가 된 메셀라를 재회하며 극은 시작된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지만 폭도 명단을 부탁하는 메셀라의 모습에, 이들의 반가움은 서늘함으로 변한다.
 
"저는 메셀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에, 감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관객들은 메셀라의 서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나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메셀라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잘못이 없어요! 벤허에게 폭도 명단을 달라고 하는데 안 줘서 '알겠다'라고 넘어갔어요. 근데, 총독이 행군하는 날인데, 벤허 동생이 기왓장을 떨어트렸잖아요. 물론 실수겠지만, 누가 봐도 반역으로 몰릴 상황 아닌가요? 메셀라는 벤허에게 가족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국에는 지키죠."
 
박민성은 메셀라의 상황을 주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경우의 수를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인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만약에 메셀라가 '제 친구 가족은 절대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벤허 집안의 재산을 뇌물로 바치게 도왔다면 괜찮았을까요? 메셀라는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벤허만 두둔하다가 메셀라까지 안 좋은 상황에 몰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벤허는 로마 사령관 퀀터스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양자가 된다. 로마의 귀족이 된 것이다. 그는 빌라도에게 예루살렘 행군에 앞서 정식 재판을 통해 벤허 가문의 무고함을 밝혀 달라고 청한다. 박민성은 이 장면을 떠올리며, 벤허를 향한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어느새 '메셀라'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주체가 바뀌었다.
 
"메셀라의 유년시절에 대해 다 말하잖아요. 숨기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메셀라가 바닥부터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그 때부터 저도 제가 이룬 것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이를 악 문 거예요."
 
메셀라가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얼마나 많은 피를 보고 올라간 자리인지, 4분 남짓한 넘버에서 느낄 수 있다.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 뉴컨텐츠컨퍼니

 
"짧은 시간 안에 관객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정말 숙제였어요. 빌라도가 고향을 물으면서 '집에 가고 싶으냐'라고 하는데 메셀라가 '네'라고 딱 한마디 하잖아요. 이 말 한마디에 메셀라에 대한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겁쟁이였어요. 죽을 것 같이 두려웠을 거예요. 그런 그의 모습과 전투에서 많은 피를 본 뒤, 어깨에 망토를 달았을 때의 메셀라 모습에 차이를 많이 두려고 했어요. 그가 변해가는 과정을 '확' 느낄 수 있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메셀라는 벤허와의 약속을 지킨다. 문둥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동생을 죽이지 않고 풀어준다. 하지만, 상부에는 사망이라고 보고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메셀라의 입장이 이어졌다.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동생도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을 벤허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상부에 보고해야 안전하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인데... 제가 어떤 꿍꿍이를 품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물론 그건 관객들의 몫이지만요."
 
만약, 박민성이었다면, 메셀라와 같은 결단을 내렸을까. 작품을 본 뒤 곱씹어본 메셀라라는 인물은 정말 안타까웠다. 힘들었던 유년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벤허의 모습을 본 메셀라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메셀라의 상황이었으면, 메셀라처럼 했을 거 같아요. 물론 전 부모님이 다 계시지만, 메셀라는 아니잖아요.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건데, 얼마나 슬픔이 크겠어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음... 저라면 벤허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메셀라의 과거를 되짚고 되짚는 과정에서 든 생각인데, 혹시 메셀라가 에스더를 좋아해서 집을 나온 게 아닌가, 싶었어요. 부모님도 계시고, 유복한 가정에, 사랑하는 사람조차 벤허를 마음에 품다니...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유가 더 생겼을 거 같아요. 사춘기 시절에 받은 상처잖아요. 여러 생각이 들었을 거 같아요. 벤허를 바라보는 에스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메셀라, 그림이 나오지 않나요?(웃음)"
 
'벤허를 향한 메셀라의 감정은 과연 우정일까요'라는 물음에 박민성은 "분명히 우정이다. 하지만 애증의 미움도 있다"고 답했다. 메셀라에 대한 수많은 고민은, 극의 개연성에 힘을 실었다. '벤허'가 아닌, '메셀라'라는 제목으로 작품 한편이 완성된 것처럼, 메셀라 이야기에 날개가 돋힌 듯 말이다. 이 같은 고민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박민성은 메셀라에 다가간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전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이 맞벌이셨어요. 정말 이름만 대면 아실 만한 '빵집'을 운영하셨죠.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돼 있던 시기도 아니고, TV 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친구들한테 마음이 갔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그러다보니, 친구들 어머님이 걱정하시더라고요(웃음). 저랑 놀면 귀가 시간이 늦어지니까요. 그 당시, 그런 상황이 제 기억에 남아있어요.

친구들을 사귈 때에도,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할까?' 자꾸만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이런 마음이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누구나 해본 생각일수는 있겠지만, 전 그런 생각이 조금 빨리 들었던 거죠. 그런 감정을 메셀라에 이입했어요. 메셀라가 벤허를 생각할 때 '정말 우정일까?'라고 생각한 지점에 집중한 거죠. 제 마음 속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감정의 해소인 셈이죠."

 
순수한 마음에서 느꼈을 감정을 마주하며, 인물에 다가간 박민성.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감정에서 흘린 땀 덕분에 박민성의 무대는 언제나 '진정성'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무대는 진짜 무서운 곳이에요. 거짓말을 못하는 곳이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면, 무대의 무게에 눌려요. 기에 눌리는 것처럼요. 저를 안 받아줘요. 어떤 것보다 더 큰 '적'으로 다가와요. 그 느낌 안 느끼려고 미친 듯이 해요. '잘해야지'가 아니라, 죽을 둥 살 둥 씨름하고 만들면, 무대가 시너지를 만들어주죠. 관객들을 만날 여유가 생기면, 설레는 묘한 감정이 들면서 발 아래에 있는 무대가 놀이터로 변해요. 근데 그게 안 되면 발걸음도 안 떨어져요. 무대에 못 오를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올라요. 절벽 위에 서있는 기분으로요. 안주하는 순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요."

박민성의 무대를 향한 '절박함' '간절함'은 곧 '만족' '기쁨'으로 귀결됐다. 배우라는 옷이 그에게 탁월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요. 몇 번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뭐해 먹고 살지?' 생각을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더라고요. 돌아보지 않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한 길만 생각하고 집중해 배우를 하는 것이 '제 옷'이라는 것을 관객들을 만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죠. 요즘 정말 재밌어요. 보람을 느낄 때 만족감이 들고 뿌듯하잖아요. 요즘이 그래요. 관객들도 믿고 봐주시고, 저라는 배우가 그린 그림을 따라와 주시니까요. 뭘 해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힘이 돼요."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에 서면 설수록 마음가짐도 달라진다고.
 
"어떤 마음으로 관객을 만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요. 저도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이죠. 뿐만 아니라, 공연장에서 집까지 왕복, 약 5시간 이상을 내서 공연을 봐주시는 관객들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1000명이면 5000시간 정도인데... 그런 생각하면 잠도 못자겠어요(웃음). 관객이 늘어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정말 섣불리 무대에 못 서겠더라고요."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_

뮤지컬 벤허 공연사진_메셀라 역_박민성_ⓒ 뉴컨텐츠컴퍼니

 
이미 관객이, 공연 관계자들이 '엄지 척' 인정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박민성의 무대는 쉬지 않는다. 그의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열정' '노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전 쉬면 오히려 아프더라고요. 제 원동력은 가족이고, 힐링은 커튼콜에서 받죠. 관객들이 바로 해주는 피드백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커튼콜 나가기도 싫을 수도 있잖아요? 전 얼른 나가서 보답하고, 인사하고 싶은 생각이 커요. 그러려면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하겠죠(웃음)?"
 
마지막으로 박민성은 <벤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관람을 당부했다.

"<벤허>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증오, 복수 등의 감정을 어떻게 내려놓아야할지, 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에요. 벤허만 있는 게 아니라, 섹시한 빌런 메셀라도 있어요. 기가 막혀요! 꼭 보러 오세요."

뮤지컬 <벤허>는 오는 1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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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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