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은 한국영화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전설적인 명작으로 꼽히고 있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지금으로부터 93년 전인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해다. <아리랑> 개봉일 10월 1일의 의미는 여느 해보다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10월 1일 몇몇 언론들은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의 발표를 토대로 영화 <아리랑> 개봉 당시 단성사 무대에서 주제가 <아리랑>을 부른 가수가 유경이라는 인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아리랑>은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용을 해설하는 변사, 음악 연주로 분위기를 돋우는 악사, 그리고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가 무대를 함께 꾸몄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아리랑> 개봉 당시 주제가 <아리랑>을 부른 가수가 유경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조선영화소곡집>에 실린 유경이의 사진과 소개

<조선영화소곡집>에 실린 유경이의 사진과 소개ⓒ 이준희

 
언론들이 이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1929년에 간행된 <조선영화소곡집>이라는 책자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라는 단체에서 제공한 <조선영화소곡집>에는 주제가 <아리랑>의 악보와 가수 유경이의 사진이 실려 있고, 유경이는 '연소한 성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본 영화소곡집의 대부분을 스테이지에서 노래한 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조선영화소곡집> 내용을 통해 유경이가 극장 무대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 시점이다. 1929년 간행 자료를 근거로 1926년 10월 1일 개봉 당시 유경이가 주제가 <아리랑>을 불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유경이가 <아리랑>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1928년 연말에 녹음되어 1929년 2월 신보로 발매된 최초의 <아리랑> 음반에도 유경이가 주제가 가수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변사 성동호가 해설을 맡고 유경이가 노래를 부른 '영화설명' <아리랑> 음반은, 필름이 사라진 탓에 현재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영화 <아리랑>의 그 당시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삽입곡 형태이기는 해도 영화 주제가 <아리랑>을 처음으로 녹음한 가수가 유경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1929년 2월 신보로 발매된 '영화설명' <아리랑> 음반 홍보 내용

1929년 2월 신보로 발매된 '영화설명' <아리랑> 음반 홍보 내용ⓒ 이준희

 
그런데 유경이의 무대 활동 기록은 1928년 하반기 이후에나 확인이 된다. 유경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1928년 추석 공연 안내 기사이다. 추가로 자료가 발굴된다면 유경이의 활동 시점을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1926년 10월 당시에 이미 가수 활동하고 있었다는 자료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자료가 전혀 공개된 바 없으므로, 1929년 <조선영화소곡집>만을 근거로 유경이가 1926년 10월 1일 <아리랑> 개봉 무대에 섰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 <아리랑>은 말 그대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아리랑>에 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공개는 매우 중요한 일이나, 그것이 전설의 허구를 걷어내는 데에 기여하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또 다른 전설을 덧입히는 오류를 범한다면, 이는 당연히 비판을 피할 수 없다.
 
 1928년 9월 추석 공연 안내 기사에 등장한 유경이의 사진

1928년 9월 추석 공연 안내 기사에 등장한 유경이의 사진ⓒ 이준희

 
한편,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의 교차로>(밤 10~12시 방송)에서는 10월 1일 방송을 통해 1928년에 녹음된 '영화설명' <아리랑>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개봉 무대에 섰던 가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주제가 <아리랑>을 녹음한 첫 번째 가수임은 분명한 유경이의 고졸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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