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 NEW

  
첫 장편 <야수와 미녀>(2005)를 내놓고 10년이 지나서야 차기작 <럭키>를 선보일 수 있었다. 초지일관 따뜻한 코미디물을 놓지 않은 보답일까. 이계벽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큰 흥행을 맛봤고, 3년 만에 세 번째 장편인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착한 코미디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야기에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비극,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묘사돼 있다는 것. 영화는 후천적 지적 장애가 있는 철수(차승원)가 우연히 자신의 친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그리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사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계벽 감독은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개봉을 앞두고 떨린다기보단 설렌다"며 취재진을 맞았다.

의아함에서 확신으로

감독 본인 역시 제작사 용필름으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의아함이 있었다. 해당 작품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영화 제작사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였는데 지금의 제작사가 맡은 이후 참사와 부성애가 결합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계벽 감독은 당장 사고 피해자, 당시 소방관들부터 만났다.

"몇 분께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게 감사하다며 그 사건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아, 신중해야겠다'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소방관분들을 만났는데 그때 상황이나 구조 분위기에 대해선 얘길 잘해주시는데 내부적으로 어떤 구조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선 대부분 말씀을 꺼리더라. 소방관임에도 직업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고 후유증으로 폐 질환을 앓고 있는데 소방관이라는 이유로 사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도 계셨다. 사고 당시 뉴스를 찾아봤는데 그분들이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더라. 사람들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금까지 안고 살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외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관련 사진.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관련 사진.ⓒ NEW

 
밝고 경쾌한 영화에 이런 사건을 어떻게 연계하느냐가 감독의 큰 숙제였다. 다행히 스태프들의 도움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연출팀, 미술팀에서도 이 영화를 허투루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당시 지하도 설계도를 구해 재현하려 노력했다"며 이 감독은 "개찰구 모양, 광고판 등을 진짜처럼 만들어 주었다"고 전했다.

무거운 소재지만 이계벽 감독은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소시민의 위대함, 즉 이들의 상식과 선함을 믿는 영화임을 강조했다. "차승원씨를 중심으로 현장 분위기는 유쾌했다"며 그는 "신파 요소가 아닌 자연스러운 부성애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얘길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간 몇 편의 한국영화에 등장한 지적 장애 캐릭터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음을 강조했다.

이유 있는 코미디 

"선천적 장애가 있는 캐릭터들은 그간 영화에 등장했는데 사고 후유증이 있는 캐릭터가 있었을까.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앓게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영화에선 또 왜 그랬는지 이유가 명확하게 나온다. 기존에 봐온 장애 묘사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철수가 보이는 코미디는 캐릭터 코미디가 아닌 상황적으로 연결되는 코미디로만 하려 했다.

차승원 배우 말고 이 영화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시나? 되게 명쾌하다. 부성애를 이해하고 코미디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만한 배우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부탁했는데 다행히 승낙하신 거고. 다만 제가 고민한 건 차승원 배우가 너무 유명하고 잘 생기고, 몸도 좋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철수 캐릭터를 차승원이라는 사람에 맞게 맞추는 작업도 있었다. 그분 개성에 맞도록 말이다."


<럭키>에선 불운한 킬러의 성장담,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와 변화. 이계벽 감독은 분명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특유의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2002년 <복수는 나의 것>부터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로 일해 온 걸 생각하면 전혀 느낌이 다른 행보다. "이후 작품에도 전 그렇게 묘사할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

"소방관이라는 이유로 사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도 계셨다. 사고 당시 뉴스를 찾아봤는데 그분들이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더라. 사람들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금까지 안고 살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외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NEW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으론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손 내밀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다만 방법을 잘 모르고, 인연 맺는 걸 잘 모르기에 마치 마음에 없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선한 마음, 위로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과연 스릴러나 고어물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영화를 좋아하긴 한다. 그런데 제가 연출한다면 끝까진 못 갈 것 같다. 최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가 바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들인데 그 영화들을 보면 제 머리에선 나올 수 없는 상상력이 담겨 있다. 그런 범주가 내겐 없는 거지. 나와는 다른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가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 영화를 시도해볼 순 있겠지만 공포나 심리 스릴러를 하더라도 되게 인간적 면모가 담긴 걸 하게 될 것 같다."


이계벽 감독은 "결국 사람들은 좋은 길로, 옳은 길로 간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들어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더욱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 그는 "예전엔 영화라면 응당 이래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면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 편견 없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작품 역시 그런 따뜻한 면모가 제대로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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