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속의 소수, 이중의 마이너리티, 크림반도 타타르인 출신의 신인 영화감독의 데뷔작이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26)은 장편 데뷔작 <홈워드 Homeward, (Evge)로 제7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고 지난달 우크라이나 오데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계의 대표 산업지 <할리우드리포터>는 지난 5월 29일 기사에서 그를 촉망받는 신인감독으로 평했다.

10회 오데사영화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자국 프리미어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이 영화는 곧 프랑스, 영국, 베네룩스, 그리스및 유럽전역에 배급될 예정이며 북미와 중국 배급도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루마니아, 이집트, 아일랜드, 미국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화와 TV연출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수여받은 재원인 그는 본인의 장편 데뷔작에서 현 우크라이나-러시아 관계에서 가장 예민한 주제일 수도 있는 크림반도를 배경으로, 한 타타르 가족의 애잔한 이야기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냈다.

'고향으로 향하는'이라는 의미의 이 영화는 전쟁으로 장남을 잃은 무스타파 부자가 고인의 고향인 크림반도에서 장례식을 치르고자 유해를 옮기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부자간의 확연한 세대갈등도 겪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현존하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이다.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 클레어함

 
5년 전, 전세계가 우크라이나 혁명에 주목했다. 이 혁명은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던 '유럽연합과의 제휴협정(European Union Association Agreement)'을 거부하고 권력남용과 부패의 상징이 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정부에 반발해 2013년 11월 시작된 유로마이단 시위가 시발점이다. 폭력진압으로 79명이 사망하고 천여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러시아 도주와 조기 선거로 인한 우크라이나 정권교체 등 순식간에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우크라이나내 권력의 공백을 틈탄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점거는 정세의 급반전을 가져왔다. 

러시아가 흑해에 면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자치공화국을 치밀하게 장악하는 과정에서 선거 없이 구성된 정체불명의 크림반도 '자치의회'는 러시아로의 크림반도 귀속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쳤고, 곧 러시아 귀속을 찬성하는 투표 결과를 발표해 같은 해 3월 18일, 러시아와 합병조약을 체결한다. 하지만(모든 영토변경은 전 지역 국민투표를 요하는 우크라이나 헌법규정하에)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는 외부감시단 없이 러시아군 주둔하 이뤄진 이 지역만의 주민투표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갈등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2001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2백만명이 넘는 크림반도 주민 중 58%는 러시아계, 24%는 우크라이나계, 12%가 대부분이 무슬림인 타타르계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이래,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반도의 토박이 타타르인은 스탈린시대 강제이주 이후 또 다시 강제이주될 위기와 재산압수, 정치단체 결성 불허, 활동가들의 납치와 살인 등 각종 탄압에 직면하고 있다. 비운의 역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타타르인은 주민투표 보이콧을 선언하고 반러시아 목소리를 높여왔다.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의 영화 <홈워드 Homeward> 스틸컷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의 영화 <홈워드 Homeward> 스틸컷ⓒ 오데사영화제


크림 타타르인의 역사는 칭기즈칸의 후예 하시 기라이가 세운 '크림 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는 18세기 '예카테리나 대제' 당시 크림반도를 침략했다. 이후,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독립했지만, 1921년 옛 소련에 편입됐다. 1954년 러시아의 리더, 니키타 크루시체브에 의해 관할권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넘겨졌고, 1991년 구소련 해체후 자치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1944년 스탈린은 크림 타타르인이 나치에 동조했다는 외관상의 이유로 이들을 중앙아시아 일대로 이주시켰다. 18만 명이 가축용 이동차량 등에 실려 이송되었는데, 이 과정에 1/3 이상이 사망했다. 콘라드 아덴나우어 재단(Konrad Adenauer Stiftung)에 따르면, 강제이주 일년 뒤 이들 중 절반이 열악한 조건 하에 진행된 강제노역으로 사망했다. 타타르인은 1980년대말이 되서야 다시 고향땅을 밟았으나 과거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되찾지는 못했다. 아울러 이들은 빈 집과 창고, 농장에서 다시 재정착을 했으나 불법점령이라며 탄압 받았다.

오데시영화제 참관중 "현재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끝났냐"는 필자의 질문에 아무도 확실히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예민한 주제로 영화를 만든 이 젊은 감독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음은 프리미어를 마치고 감독과 가진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외세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 지난 주 프리미어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한 할머니 관객이 감동에 복받쳐 감독에게 보낸 격려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아주 감정적인 주제인 듯 느껴졌다. 
"그 분 기억난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겐 무척 감정적인 소재가 맞다. 우리에겐 관객들과의 감정적인 유대감을 가지는 것이 뜻깊은 일이고 그걸 목격한 것은 무척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 어느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작품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잘 설명되어 있지 않아 감정에 몰입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게 제일 중요한 건 영화 속 인물 창조와 그들 사이의 관계 묘사다. 내가 만약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설명하는데 집중한다면 그건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거나 뉴스일 것이다. 정치사회적 맥락은 그 인물들이 존재하는 사회의 배경이다. 물론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본 후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느꼈다면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으로서의 내 역할은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을 설명한다기 보다도, 그 상황을 살아내야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모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 첫 장편 데뷔작이 칸영화제 공식부문에 초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상적이다. 제작과정이 궁금하다. 
"한동안 우크라이나 영화 관련법이 개정중이어서 2년간 피칭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프로젝트를 개발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우린 여러 영화제 마켓을 다니며 네트워킹도 했고, 영화 트레이닝 랩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체코에서 'MIDPOINT Feature Launch'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대본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지난 해 8월, 우크라이나 문화부로부터 제작비의 80%를 지원하겠다는 결정을 통보받아 다음 달부터 18일간 촬영을 했다. 영화를 봄에 프랑스 배급사 와일드번치에 보여줬고 그쪽에서 만족스러워하며 계약을 제안했다. 예산은 크게 부족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본을 쓸때 일부러 등장인물도 10명 이내로 맞추고 엑스트라가 필요한 상황은 피하도록 했다. 전반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았다."

-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소녀 마샤와 사랑에 빠진 어린 타타르 소년 아지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러브 유 Seni Sevem> (2014),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진 부자간의 이야기인 <리턴 위드 선라이즈 Return with Sunrise> (2014), <위드아웃 유 Sensiz> (2016) 등, 이전에 작업한 단편영화도 크림반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림반도 타타르인의 삶과 전통,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줄거리의 중요한 요소인데 한국 관객들에게 타타르인을 소개해달라. 
"크림반도가 고향인 타타르 민족은 지난 3백년간 러시아와 토지소유권에 대해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러시아의 정치인들은 오랫동안 이 지역이 러시아의 땅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리고 심지어 스탈린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타타르인을 종교(회교)와 언어(투르크어)가 유사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문화에 동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강제추방을 하기도 했다. 2주간에 걸친 이 긴 여행은 정말 참혹했다. 가축을 운반하는 기차칸에서 2주기간 물과 음식도 제공하지 않아 갈증과 기아, 질병으로 무려 40%에 육박하는 이들이 사망했다고 알고 있다.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타타르인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강제추방후 50년이 지났으나 고향으로 돌아와 무에서 다시 삶을 꾸렸다. 다시 돌아온 이들은 강제 추방된 이들이 아니라 그 자녀세대였는데 그들은 타타르인의 문화, 전통, 정체성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타타르인의 정체성은 유럽문화와 구소련 문화가 함께 만나는 중간지점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타타르인은 현재 러시아점령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부재하다.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타지역으로 이주하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타타르인들은 키예프나 오데사를 간다고 해도 (문화의 이질감으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 현재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의 영화 <홈워드 Homeward> 스틸컷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의 영화 <홈워드 Homeward> 스틸컷ⓒ 오데사영화제


- 크림반도 타타르인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동기는 무엇인가.   
"우선, 나 자신도 타타르인임을 밝힌다. 내가 삶에서 겪은 것, 내가 아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영화제작을 배우는 과정에, 내 개인적 경험을 모두 녹여 단편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과거 단편작업에서 했던 실수에서 배운 것들, 그 모든 교육의 총체를 쏟아부어 만든 일종의 테스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 그럼, 앞으로도 크림반도의 타타르인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작업을 계속할 계획인가.
"지금 스탈린시대 강제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대본으로 쓰고 있다. 세이타블레 감독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보여주려고 한다. 다만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큰 프로젝트라 내 경력을 고려해볼 때 적당한 시기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언젠가 영화화하고 싶다."
  
- 크림반도 타타르인과 러시아와의 갈등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보나.
"크림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흑해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교량 역할을 하며 항구도 있고, (최근 전쟁으로 수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돈바스에 비해 반도라서 컨트롤하기 용이한 점이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갈등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외세가 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 스탈린이 크림반도 타타르인들이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강제이주 시켰다고 들었다. 
"물론, 나치 점령 당시 일부가 나치에 협조를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나치군이 점령했던 유럽전역에서 일어났다. 개인적 차원인 거지 지역적차원은 아니었다. 또한 이 사건 관련해 제일 가슴아픈 건, 1944년 강제이주 대부분의 희생자가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남성들은 구소련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다음해 귀향해서야 가족들이 다 추방되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규모 이산가족을 양산한 엄청난 비극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KGB(구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 문건 이외에 역사적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통계수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타타르인 강제 이주 사건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

나리만 알리예브(Nariman Aliev)감독ⓒ 클레어함


- 우크라이나에서 소수민족으로 차별을 당하기도 하는지.
"차별은 아니고 뭐랄까 오해가 많다.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강력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간다. 예를 들면, 우리의 고향이 크림반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라고 착각한다든지 아니면 최근 러시아합병전에는 많은 타타르인들이 독립을 원하고 터키와 전쟁을 하려고 한다든지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해가 많다.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정체성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외부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주제의 토론은 많이 필요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
    
- 우크라이나의 유명한 배우겸 감독, 아템 세이타블레 (Akhtem Seitablaev)와 함께한 협업과정은 어땠나.
"아템은 물론 존경받는 배우 겸 감독으로 그와의 협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나보다 연배와 경험이 많고 빅 브라더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감독으로서의 내 역할을 존중해주었다. 그는 타타르인 출신으로 이 영화의 배경과 맥락을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참여하길 원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정말 뜻깊고 유익하다." 
 
- 아템 세이타블레 감독이 스탈린시대 강제이주에 관한 영화 <리턴 Return> (2013년)을 연출했다고 들었는데, 타타르가족의 처절한 귀향노력을 그린 본인의 작품과 주제의식 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크림반도의 타타르인들이 강제이주된 사건은 분명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출생했고 성장했다. 1980년대 말이 되어서야 크림반도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의 이런 힘겨운 삶에 대해 듣고 자란 나도 그들의 아픔을 느끼며 성장했다. <리턴>은 중요한 역사의 한 부분을 그렸다. 내 영화 <홈워드>는 뭐랄까 일반 소시민인 한 가족이 커다란 비운을 겪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 일부 관객들과 평단에서 배우 아템 세이타블레가 연기한 아버지역이 가부장적이고 며느리를 홀대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아들은 여성과 전통, 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는 전형적인 타타르 아버지상인가.
"크림 타타르인은 가부장적인 사회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눈을 감는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진 않는다. 이런 주제도 토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나는 그의 태도가 무슨 연유에서 근거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맘에 들진 않는다.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버지가 며느리를 배제하려는 것은 그녀가 외국인이고 여성이라기 보다, 아들의 죽음과 화목하지 않은 가정문제의 원인을 외부 탓으로 돌리려는 그의 비겁함 때문이다."

-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알란 헌터 평론가는 차분하고 사색적인 톤이 터어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 스타일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공감한다. 내 작품에는 오마주를 위해 그의 영화를 인용한 대목도 있다. 나는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세일란 감독을 아주 좋아하고 나와 유사한 정신세계를 가진 것 같다. 회교도라는 사회적 배경도 비슷하고, 내가 자랄 때 여러모로 많은 영감을 준 중요한 감독이다."

-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크림반도 출신 올렉 센초프 감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올렉 센초프 감독의 장편 데뷔작 <게이머>을 정말 좋아한다. 8년 전 오데사영화제에서 봤는데, 나도 십대 초반에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개인적으로 큰 공감을 했던 영화다. 올해 칸영화제 무대인사에서 언급했듯, 나는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올렉 센초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모든 정치범들을 응원한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위해 힘든 수감생활을 견디는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는 아주 중요하고 뜻깊다."(관련기사 : "올렉 센초프 지지" 영국 거장 감독 발언에 쏟아진 박수 http://omn.kr/1k9f6)
  
2015년 12월 12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5월 18일을 '크림 타타르인 집단학살 추모일'로 제정했다. 필자가 한국에도 같은 날짜에 광주항쟁을 기린다며 그 전반적인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자 나리만 알리예브 감독은 많은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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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함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칼럼니스트및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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