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에서는 팬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프로레슬링처럼 서로가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심한 대립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에서 프로레슬러로 전향한 전 UFC 여성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는 옥타곤에서 '암바 여제'로 군림하던 시절, '악녀'로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미샤 테이트와는 격투기 대회 스트라이크포스 시절부터 두 차례나 타이틀전을 치르며 감정 싸움을 했을 정도로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격투기에서는 두 파이터가 서로 주먹을 섞어 승부를 가린 후 과거의 묵은 감정들을 털어 버리고 진한 포옹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파이터들 만의 전통적인 화해 방식이다. 하지만 로우지는 UFC 챔피언 시절 '앙숙' 테이트를 비롯한 패자들의 악수신청을 모두 외면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물론 로우지는 그런 악녀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암바 여제'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로우지의 매너나 인성은 격투팬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처럼 스포츠에서는 아무리 승리를 위해 양보 없이 싸우더라도 상대를 향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다. 야구에서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지 않고 축구에서 골을 넣고 상대 응원석이나 벤치 앞에서 뒤풀이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에서 열린 2020년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대륙간 예선전 E조 마지막 경기에서는 경기가 끝난 후 러시아 코치가 한국을 모욕하는 불쾌한 장면이 나오고 말았다.

승리 후 뜬금없는 눈 찢기 세리머니, 항의 받은 후 반성없는 사과

세계랭킹 9위 한국은 대륙간 예선전에서 평균신장이 190cm에 육박할 정도로 신장이 좋은 세계랭킹 5위 러시아와 E조에 편성됐다. 러시아는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VNL 대회에서 뛰지 않았던 주포 나탈리아 곤차로바를 비롯한 정예 멤버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반면에 한국은 대회 직전 세터 이다영(현대건설 힐스테이트)과 안혜진(GS칼텍스 KIXX)이 각각 아킬레스건 부상과 과호흡 증상으로 교체되면서 전력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한국은 투혼을 발휘하며 캐나다와 멕시코를 차례로 꺾고 5일 러시아와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걸고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양 팀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한국의 2-3 역전패였다. 첫 두 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올린 한국은 3세트에서도 22-17까지 앞서며 승기를 잡았지만 세트 후반에 살아난 러시아의 블로킹에 막히며 경기 흐름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자 배구 대표팀의 라바리니 감독과 김연경.

여자 배구 대표팀의 라바리니 감독과 김연경.ⓒ 김연경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한국은 V리그가 끝난 후부터 대륙간 예선 직전까지 함께 호흡을 맞춘 세터들이 없는 상황에서도 세계 5위 러시아를 패배 직전까지 몰아 붙이며 선전했다. 대륙간 예선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한다면 내년 1월로 예정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충분히 태국을 꺾고 3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을 허탈하게 만든 장면은 경기가 끝난 직후에 나왔다.

러시아 대표팀의 세르지오 부사토 수석코치는 경기가 끝난 후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행동을 했다. 자신의 눈을 찢는 행동은 아시아인의 작은 눈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눈 찢기 세리머니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부사토 코치는 국제배구연맹(FIVB)에 아직 눈 찢기 세리머니 금지조항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과감하게(?) 카메라 앞에서 눈을 찢는 행동을 선보였다.

대한배구협회는 7일 국제배구연맹과 러시아 배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인종차별 세리머니를 저지른 부사토 코치에 대한 징계와 사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부사토 코치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인종차별의 뜻은 전혀 없었다며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을 브라질 사람들의 삼바춤과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팀에 사과의 뜻을 밝히긴 했지만 반성의 태도는 찾을 수 없는 말뿐인 사과였다.

기성용,손흥민,BTS도 받은 인종차별, 반드시 사과와 처벌 따라야

사실 예체능계에서 인종차별에 관련된 일들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2017년 11월에 있었던 한국과 콜롬비아의 평가전에서 있었던 기성용과 에드윈 카르도나(보카 주니어스)의 신경전이었다. 한국이 2-0으로 앞서던 후반17분 한국과 콜롬비아는 김진수(전북 현대)와 하메스 로드리게스(레알 마드리드),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이 신경전을 벌였다. 이때 언쟁에 참여한 카르도나가 기성용을 향해 눈을 찢는 행동을 취했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에드윈 카르도나(보카 주니어스)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평가전 도중 몸싸움 과정에서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눈 찢기 동작'을 하고 있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에드윈 카르도나가 지난 2017년 11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평가전 도중 몸싸움 과정에서 기성용에게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눈 찢기 동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매치 27경기에서 5골을 넣고 있는 전도유망한 미드필더 카르도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FIFA로부터 A매치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당했고 이 여파로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탈락했다. 당시 기성용 역시 카르도나를 향해 손등 쪽으로 V를 그리는 행동을 취했는데 이는 영국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한 욕설로 기성용의 대처 또한 성숙했다고 보긴 힘들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를 밟으며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토트넘 핫스퍼) 역시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손흥민은 지난해 10월 웨스트햄의 한 팬으로부터 "혹성탈출 DVD를 구해줄 수 있나?"라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이는 불법 복제한 DVD를 판매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이다. 손흥민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한 이 팬은 법원으로부터 벌금과 소송비용을 합쳐 294파운드(약43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듀오/그룹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세계적인 보이그룹 방탄소년단도 인종차별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6월 호주 채널9의 연예 정보프로그램 20to One에서 진행자들은 "멤버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는 1명", "멤버 중 1명은 게이" 등 인종 차별 및 성희롱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채널9은 호주의 BTS 팬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고 결국 20 to One은 이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인종차별은 무의식 중에 실수로 나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거만한 자세에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항의를 받은 후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 받을 권리가 사라진다.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한 러시아의 부사토 코치에 대한 FIVB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짐과 동시에 부사토 코치는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쁨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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