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저작권 프리 사이트 '픽사베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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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 종사자들의 말에 의하면 에세이 시장은 꽤 오래 전부터 포화상태다. 워낙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 때문에 눈길을 확 끌만한 뾰족한 콘셉트가 있든지 아니면 유명인사가 쓰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시의성이 있는 주제의 글을 쓰든지 '뭔가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출간을 하고 싶어 원고투고를 해본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친절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위와 같은 근거를 댔다. '당신의 원고가 에세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이밖에도 다양했다. 

그럴 때 그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이 조금 부러워지는 것이다. 팬덤이 곧 도서의 소비자가 되어주는 연예인 같은 사람들 말이다.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써도 읽어줄 독자가 있다는 게 부러웠고, 아니 그에 앞서 원고 투고를 하지 않아도 먼저 출간제의를 해오는 출판사들이 줄줄이라는 사실은 더 부러운 일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지고서 분함을 느껴보려 해도 요즘은 그것 마저 여의치가 않다. 연예인들도 주제가 있는 꽤 괜찮은 에세이를 쓰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에세이 시장에서 계급장 떼고 경쟁해도 승산이 있을 법한 '뾰족한 콘셉트'의 에세이, 이를 테면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나 어떠한 뚜렷한 주제에 관해 풀어내는 연예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듯하다. 그 중 배우들이 쓴 책 세 권을 사례로 빌려와, 서점의 '명사에세이' 흐름을 가볍게 짚어보려 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관하여... 정우성
 
정우성 배우 정우성의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표지.

배우 정우성의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표지.ⓒ 원더박스

  
얼마 전에 본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이란 영화에선 난민 이야기가 비중 있게 등장했다. 인상 깊었던 건, 세계적인 여배우가 주인공이 난민인 줄 알고 그를 진실한 마음으로 돕는 장면이었다. 또한 어떤 공간이라도, 공항의 지하실 빈공간 조차도 '난민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정우성의 에세이가 오버랩 됐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된 정우성은 본격적으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매년 난민촌을 방문해 난민 보호활동 등을 하고 있는데 그 경험을 푼 책이었다.

"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명예사절이 되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캠페인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20일에 출간한 그의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서명처럼 정우성이 '본 것들'이 적혀 있는 책이다. 대중의 반응을 보면 난민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를 향한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섞여 있는 듯하지만,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건 의미없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환경운동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결국 지속성이 진정성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이처럼 본인이 경험한 사회적 주제에 대해 쓴 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봄직한 것이어서 '명사 에세이'를 떠나서도 가치를 지닌다.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에 관하여... 하정우
 
하정우 배우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표지.

배우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표지.ⓒ 문학동네

 
에세이 강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요?"이고, 이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 아무거나 써보시라"는 거다. 글의 소재를 못 찾아 방황하는 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쓰기에 가장 손쉬우면서도 진정성까지 챙길 수 있는 최적의 소재가 되겠다.

배우 하정우에겐 그것이 걷기였다. 지난해 11월 출간돼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는 '걷기 마니아'인 그가 걷기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하루 3만 보를 걸어 출퇴근하고 평상시에도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는 그는, 하와이에서 무려 10만 보를 걷기도 했다고 한다. 주변인들을 모아 걷기모임까지 결성했다고 하니 그의 걷기 예찬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배우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하정우는 배우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관해 씀으로써 스타가 아닌 '인간 하정우'를 독자로 하여금 엿볼 수 있게 한다. 책 제목만 봐도 '걷는 배우, 하정우'가 아니라 '걷는 사람, 하정우'다.

"두 발로 뚝심 있게 걸어온 하정우의 시간이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출판사의 소개 문구처럼 그는 이 책을 손보단 발로 직접 썼다. 좋아하는 배우여서 그의 책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걷기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구입하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독자층을 광범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건 주제의 보편성뿐 아니라, '연예인치고' 많이 걷는 게 아닌 인구를 통틀어 많이 걷는 축에 속하는 그의 진정성 덕분으로 보인다.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 관하여... 박정민
 
박정민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 <쓸 만한 인간> 표지.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 <쓸 만한 인간> 표지.ⓒ 상상출판

  
몇 개월 전 영화 <사바하> 인터뷰에서 만난 그에게 책 한 권만 더 써주실 생각이 없느냐 물었다. 독자로서 던진 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에세이를 한 권 출간하긴 했지만 난 배우이지 작가가 아니고, 더 내기에는 뭔가 작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듯해서 마음에 걸린다"고 답했다. 지난 2016년 10월에 출간한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박정민이 한 매거진에 3년 넘게 언희(言喜)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칼럼을 출간제안을 받고서 묶어낸 책이다.

'작가는 아니고, 글씨만 쓸 줄 아는 그저 평범한 당신의 옆집 남자. 가끔 테레비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글귀와 달리, 그는 '배우치고'가 아니라 그냥 글솜씨가 뛰어난 듯했다. 그의 산문집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바라본 것,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나에 대해 쓴 정통(?)에세이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살면서 느낀 것들이 솔직하게 풀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의 베이스 영역은 흔히 말하는 '수필'(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_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생각한다. <쓸 만한 인간>은 수필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글쓴 사람이 많이 묻어날 수밖에 없고, 또한 글솜씨가 없으면 쓰기 힘든 책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민의 출간 사례는 '명사 에세이'의 예이기 보단 외려 '명사 에세이'의 예외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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