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감독, 배우들 보며 흐뭇 봉준호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시사회에서 배우들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은 가족희비극이다. 30일 개봉.

▲ '기생충' 봉준호 감독, 배우들 보며 흐뭇봉준호 감독이 5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시사회에서 배우들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이정민

 
지난 5월 21일 영화 <기생충>의 상영이 끝난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일제히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쾌거와 평론가들의 쏟아지는 호평을 보면 이날 기립박수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이미 한국에서도 개봉 4일만에 관객 수 300만 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및 제작자들에게 많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음은 물론이다.

그 많은 인터뷰 내용 중 단연 화제가 된 것은 <기생충> 제작에 참여한 모든 영화 스태프들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52시간의 근로시간을 준수하며 작품을 제작했다는 점 역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같은 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를 "좋은 의미의 상승", "정상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 정량적인 통계 수치만 보면 영화계의 근로 환경은 꾸준히 개선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년 영화 스태프 근로 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표준근로계약서 체결을 경험한 스태프는 74.8%였다. 2014년의 35.3%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개봉 영화의 77.8%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해 제작됐다. 사용자의 근로계약서 작성 거부 역시 50%대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통계와 <기생충>의 사례에 가려진 영화 산업의 그늘에 대해 말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바로 영화 현장의 최전선에서 있는 스태프들이 모여서 결성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흔히 '영화 노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실제로 영화산업 근로조건의 개선에 영화 노조의 공은 매우 컸다. 도급과 용역이라는 형태에 묶여 노동법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은 2005년 스스로 영화 노동 조합을 탄생시켰다. 이윽고 2013년의 영화계의 노사합의, 2014년의 영화계 대타협을 거치고 마침내 2015년에 관련 법안 개정까지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2019년 현재, 이들에게 영화 <기생충>은 어떤 의미일까.

통계의 이면에 가려진 그늘

지난달 28일 오후 영화노조 한 관계자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봉준호 감독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근로계약 등의 확대를 기대하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부 언론이 전하는 통계수치와 실제 현장 간에는 다소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영화 스태프 표준 근로 계약 75% 체결'이라는 식의 제목이 달린 기사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설문을 잘 보면 지난해에 체결된 계약서의 수치가 아니라 지난해까지 단 한번이라도 계약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응답이 누적된 수치이거든요."

해당 관계자는 또 해당 통계의 수치가 주로 대규모 자본이나 10억 원 이상의 비용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을 위주로만 조사해서 나온 수치라는 점 역시 지적했다. 사실 2018년의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된 전체 영화는 650여편에 달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표준근로계약 작성실태 보고서의 조사대상에 포함된 영화는 단 63편에 불과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66%가량이 10억 미만의 제작비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스태프들의 근로환경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는 통계조차 제대로 없는 셈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지난해 표준근로계약서를 채택하지 않는 영화의 86%가 10억 미만의 소규모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보고됐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현재 제작비 10억 미만의 소규모 자본 영화의 경우, 스태프들의 평균 임금과 4대보험 가입률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영화 노조 관계자는 "소규모 자본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은 아직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덧붙였다. 또 5억 미만의 독립영화도 근로계약과 4대보험을 준수하는 예외가 종종 있는 반면 본격적으로 시장의 개입이 시작되는 제작비 10억 원에서 20억 원 사이의 상업영화 제작사들이 오히려 근로조건 준수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표준근로계약 작성이 제작 규모를 떠나 전체 현장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넘어서

현재 영화 노조에서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바로 안전과 노동시간의 문제였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 영화 제작의 역사가 100년을 넘어감에도 당연히 있어야 할 노동 안전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이 여지껏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효율이 중요한 영화 현장에서는 여전히 스태프의 안전보다 그 날 하루 하루의 제작비용과 시간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노동 조합 관계자 역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별도의 표준 안전 가이드를 아직 만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3월에도 촬영지까지 소품차를 운전하던 스태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 때문에 영화 노조에서 제작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해당 관계자는 현재 영화 노동 현장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아직까지 52시간 노동이나 근로계약서 체결을 체감하지 못하는 스태프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꼽았다. 제작 규모에 따라 근로 조건과 처우가 갈리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일하냐에 따라서 근로조건이 천차만별로 갈라지는 것이 영화 산업의 현실이다.

"저희끼리 쓰는 표현으로는 '연제미의분소'라고 합니다. 연출, 제작, 미술, 의상, 분장, 소품. 이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노동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어요. 카메라가 안 돌 때도 준비하고 숙소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니까요. 이 분들의 경우는 장시간 노동이 거의 일상적인데도 근로시간을 줄이기도 힘들고 시간 산정하기도 힘듭니다."

노조에 따르면 전체 영화 스태프들의 3분의 2 정도가 해당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촬영이나 영상, 녹음 등 현장 중심의 스태프들에 비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의 근로환경에 대한 개선은 여전히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2월에만 미술 분야의 스태프 두 명이 잇달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중 그래픽 담당 스태프의 경우는 3개월간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동 환경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현재 52시간의 노동은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현재 영화 노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인력의 보강을 해결 방법으로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기생충>이 박수받아야 할 이유
 
 임금체불에 대해 기자회견중인 스태프들

임금체불에 대해 기자회견중인 스태프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다소 잔혹한 문화계의 노동 실태를 볼 때 <기생충>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크다. 물론 영화 근로 환경의 개선에는 앞서 언급한 영화 노조를 포함해 현장에서 뛴 이들의 노고가 절대적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기생충>의 노력을 그냥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공고한 신화에 흠집을 낸 하나의 선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영화 현장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를 지배한 그릇된 믿음이 두 가지 있었다. 효율과 결과를 위해 과정과 대가를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며, 또 그 대가를 희생해야만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는,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화가 그것이다. 실제로 작년 52시간 근로가 영화 노동현장의 화두였을때 대형 배급사와 제작사들이 걱정한 지점 역시 정확히 이 부분이었다. 당시 한 배급사 담당자가 언론에서 밝혔듯이 이런 식의 인건비 상승이 관객수의 증가로 이어지겠냐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산업 전체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생충>은 오로지 한국 사회에서만 제법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킨 면이 분명히 있다. 이번 <기생충>은 77회의 촬영 횟수 내에서 사소한 동선과 구도까지 치밀히 계산해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고 적절한 인건비와 근로조건까지 만족하면서 상업성은 물론 작품성의 정점도 확보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영화의 내용에 못지않게 한국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훌륭한 서사다. 최근 3년간 개선된 영화계의 근로조건은 한국 영화계도 공정한 과정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사회가 영화 <기생충>과 영화 노동현장의 개선에 노력한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아직 영화계와 드라마계에는 열악한 근로조건이 만연하다. 영화노조 관계자도 기자와 한 통화 말미에 방송계와 드라마계의 실정 역시 심각하다면서 "단기간 바뀌기 힘들지만 그 분들도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변화가 왔으면 한다. 언젠가 방송계의 시스템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의 답변이 결코 영화와 문화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 도중 "<기생충>은 표준근로계약의 정착에 공헌한 바가 없다"고 에둘러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과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표했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진정한 "정상화"는 단순히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단 이유만으로 더는 박수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말할지도 모른다.

2019년은 영화진흥위원회의 표현대로 한국 영화 100년사의 결실을 거둔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단순히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지난 몇년 간 많은 이들이 영화 노동현장의 정상화를 위해 남긴 족적도 같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남긴 흔적은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남긴 기록만큼이나 훗날 한국 영화사에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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