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 바보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는 항상 생동감을 뿜는다. 지난 18일 개봉한 다큐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도 그렇다.
 
노무현의 생전 동영상과 노사모 회원들의 인터뷰를 담은 이 작품 역시 일반 영화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흥미를 전달한다. 그가 했던 시원한 말들, 그가 뿜어낸 열정들로 인해 다큐 영화가 아닌 일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1980년대 후반에 바람처럼 정치권에 등장해 융단 폭격 하듯이 메시지를 뿜어내던 노무현이 2000년 총선 때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에 출마했다가 장렬히 낙선하는 일에서부터, 감동적인 부산 낙선이 계기가 돼 노사모가 결성되고 이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활약에 힘입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는 일들을 보여준다.
 
또 청와대에 들어간 뒤 보수세력의 집중 포화 속에 탄핵심판까지 받으며 정치적으로 약해지는 과정, 퇴임 뒤 봉하마을에서 예전의 인기를 누리며 잠시 마음 편히 지내다가 비극적 최후로 끌려가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정치와 종교를 넘나들었던 선지자들의 영향력
 
 <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뒷면 중 일부.

<노무현과 바보들> 포스터 뒷면 중 일부.ⓒ ㈜ 바보들

   
실제의 노무현도 그렇고 이 영화 속의 노무현도 그렇고, 그는 '정치적 선지자' 비슷한 이미지를 일정 정도 풍겼다.
 
'선지자'와 비슷했다고 해서, 꼭 종교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군주와 제사장이 분리된 뒤로도 오랫동안 정치와 종교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1910년까지도 이 땅의 군주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는 정치 지도자였지만, 종묘나 사직단에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제사장 혹은 사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를 칼로 무 베듯이 하면, 역사 속의 옛날 사회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역사 속의 선지자들을 대할 때도, 그들의 역할을 종교 분야에만 한정시켜선 안 된다. 그들의 메시지에는 종교와 정치를 넘나드는 내용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구약성공에 나오는 요나·이사야·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은 물론이고 공자·맹자·노자 같은 동양적 의미의 선지자들도 종교 지도자인지 정치 지도자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석가모니의 활동을 볼 때도, 간혹 그런 느낌이 생긴다. 그의 영향력이나 메시지는 정치 분야로도 넘나들었다. 그의 초기 활동을 담은 <아함경>에는 유명한 연쇄살인범 앙굴리마라가 석가의 제자가 됐다는 이유로 코살라국 프라세나짓왕이 체포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석가의 권위가 정치적으로도 사실상 인정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석가의 제자인 라타파라가 쿠루국 코라비야왕 면전에서 군사적 대외팽창 욕구를 '극복해야 할 갈애(渴愛, 욕망 집착)'에 빗대 설명하면서 마치 정치 고문처럼 국정에 관해 설법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지자들의 영향력이 정치와 종교를 넘나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난히 많은 시련을 겪은 노무현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 바보들

  
노무현이 고대의 선지자들과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생 궤적이 그들과 상당부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시대의 현실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낯선 메시지들을 들고 나왔다. 또 별다른 조직이나 자금도 없이 타고난 연설 능력을 무기로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댔다.
 
또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대통령 퇴임 뒤에 박해와 다를 바 없는 시련을 겪은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일반 정치인들이 잘 겪지 않은 시련을 유난히 많이 겪었다. 외형상으로는 그의 인생도 선지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또 다른 면에서도 선지자들과 유사했다.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누누이 강조된 것처럼, 그의 지지자들은 자기 돈으로 노사모 활동을 했다. 노무현의 메시지와 실천력에 감화된 그들은 노무현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정치인한테서 지지자 쪽으로 돈이 흘러가던 기성 정치권에서는 상당히 생소한 풍경이었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노사모 회원 대다수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스스로 '야인'으로 되돌아갔다. 자기들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어낸 직후, 마치 도인들을 연상시키듯이 바람처럼 강호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세상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도자를 위해 돈을 쓰는 모습은 고대 선지자들의 주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지지자들한테 그런 감동을 줄 정도로 적절한 메시지를 용감하게 뿜어냈다는 점에서도, 노무현은 선지자 비슷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정치개혁을 시도한 한국 민중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노무현과 바보들> 스틸컷.ⓒ ㈜ 바보들

  
하지만 선지자와 비슷했을 뿐, 결코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가 던진 메시지들은 실상은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그의 선지(先知)로부터 나온 메시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던진 메시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 민중들의 마음속에 잠재돼 있었던 것들이다. 그는 잠재된 그것을 들추어냈을 뿐이지, 세상이 전혀 몰랐던 것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선지자와 비슷했지만 선지자는 결코 아니었다.
 
지난 2백 년간 한민족은 정부나 국가 차원에서는 세계 1류가 되지 못했지만, 민중 차원에서는 분명히 세계 1류였다. 지난 2백 년간 한국 민중처럼 끊임없이 정치개혁을 시도한 민족은 드물다. 폭력 한 번 안 쓰고 촛불만 들고도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바꾼 일은 세계사에서 경이적인 사건이었다.
 
1800년대 이 땅에서는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약 100건의 민란이 일어났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고종의 왕권이 1개월간 정지될 정도였고, 1894년 동학혁명 때는 고종과 정부군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1919년에는 2백만 한국인들이 전통적 민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롭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때 그들은 민주공화정이라는 최신식 정치 형태에 대한 열망도 함께 표출했다. 그런 열망이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으로 구현되고, 1948년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구체화됐던 것이다.
 
보수파 대통령들의 운명이 좋지 않았던 이유

한국 민중은 대한민국 시대 들어서는 4·19, 부마항쟁, 5·18, 6월항쟁, 촛불혁명 등을 통해 보수파 정권을 끊임없이 흔들었을 뿐 아니라 보수파 대통령들의 신변도 계속해서 압박했다. 2000년 노사모 출현 전까지 한국에는 총 7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그중 4명은 민중의 거센 도전을 받던 중에 재임 중 망명하거나 살해되거나 아니면 퇴임 뒤에 수감됐다.
 
보수파 대통령들의 운명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1800년대부터 누적된 민중의 한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계속되는 민란과 혁명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정치적 욕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음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이 보수파 대통령들의 처지를 끊임없이 불안케 만든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노무현은 그 같은 민중의 정치적 욕구를 대변했다. 전혀 새로운 메시지를 계발해서 나온 게 아니라, 민중들이 간절히 염원하던 것을 정치무대에 들고 나와 폭발시켰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노무현과 바보들>의 어느 출연자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동일한 열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이 일견 정치적 선지자 같지만 실상은 선지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보수세력을 잔뜩 긴장시키게 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고 없지만, 그와 똑같은 생각과 열정을 품고 있으며 언제라도 정치 무대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깨어 있는 민중이 이 땅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 당장에는 개혁이 지지부진하지만, 이 땅의 민중이 언제라도 다시 정치 무대로 뛰어나와 세상을 진일보시켜 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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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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