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을 연출한 이종언 감독.

영화 <생일>을 연출한 이종언 감독.ⓒ NEW

 
2014년 그날의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었다. 남겨진 자들의 숙명일까. 온몸으로 절규했던 유가족이 사고 원인과 관계자 처벌을 요구할 때 이들의 이웃, 불특정 다수는 함께 울거나 정반대 편에 서서 질타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모두가 이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때의 일로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생일>엔 아들 수호를 잃은 부모 순남(전도연), 정일(설경구)뿐만 아니라 이들 곁에서 함께 울거나 혹은 원망하거나, 무심코 모진 말을 던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를 극화한 최초의 영화인데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심도 깊게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 갓 상업영화에 데뷔하는 감독의 작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심함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생일> 개봉 직전 이종언 감독을 삼청동의 모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5년 전 그날 이후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남겨진 이들이 사고 희생자를 위해 함께 모여 생일 파티를 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참사 당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이종언 감독 역시 강렬한 충격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같은 생각에 애가 탔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참사가 그에게 준 영향은 상당했다.

그렇게 약 1년이 지나 이종언 감독은 경기도 안산 '치유공간 이웃'이라는 단체의 허락을 받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감독은 안산에 가기 전까지 해당 단체에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해 왔다. 

- 그렇게 합류하면서 약 1년 간 생일 모임도 돕고, 여러 궂은 일도 해온 걸로 알고 있다. 영화화는 언제 생각하게 됐는지.
"치유공간 이웃에서 활동하는 분 중 아는 분이 있었다. 그분께서 이젠 와도 괜찮다는 말에 안산으로 행했다. 아무래도 민감한 상황이라 유가족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처음엔 작은 일부터 돕곤 했다. 2015년 여름 무렵 시작했고, 같은해 10월경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말씀드렸다. 유가족분들을 만나 이야기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분들 일상에 주목했으면 싶었다. 그러면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분들도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제게 당신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면서 제 안에서 어떤 약속,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지."

- 영화화 소식이 전해지며 성급하게 극 영화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감독 스스로도 자기검열을 했을 것 같다. 
"사실 제 개인 입장에서 보면 비판과 응원의 반응의 간극이 크진 않았다. 왜 영화를 만들어 상처를 후벼 파냐, 혹은 그 반대의 댓글을 보면서, 양쪽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가족을) 걱정하시는 거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다고 생각했다. (전자 같은 경우) 툭툭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되는지 잘 모르고 하시는 분도 있다. 그게 왜 상처인지 모르시기도 하고,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면 덜 그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는 검열이 없었다. 물론 쓰는 과정에선 검증하고 검열했지만, 만든다는 데엔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2015년 여름부터 생일 모임을 해왔는데 한 아이를 할 때마다 3주에서 4주간 부모님을 만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할 때마다 너무 많이 울었기에 일어날 힘도 없곤 했다. 매번 새로운 아이를 만나잖나.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반복하는 모임이라고 덜 울거나 아픔이 적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모임을 반복할수록 제가 (유가족을 만난다고) 몸둘바 몰라하던 마음이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그런 경험이 제게 확신을 준 것 같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어려움을 극복해가다 

- 지금은 SNS로 영화를 지지하고 있지만 유경근 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영화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땐 비판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유가족분들을 만나 설명을 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시 어떤 오해가 있었던 건가.
"어찌하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글 쓸 때부터 (유가족분들에게) 말씀드렸고, (영화화가) 실현되는 시점 때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다들 용기를 주셨다. 유경근님께는 그때 당시 설명을 못 드렸었다. 그분께서 하루 이틀 뒤에 (SNS에 비판) 글을 올리셨는데 그걸 통해 (세월호 소재 극영화가 나온다는) 기사가 났다. 우리의 공식입장이 아니었지만 기자분 입장에선 충분히 쓸 수 있었다. 다만 지금보다 훨씬 조심할 때였기에 '치유'라는 단어에 우리는 덜컥했다. 

영화를 통해 치유를 한다는… 크게 보면 치유라는 단어는 좋은 건데 그분들이 치유 받기까지 남은 길이 구만리다. 아직 (참사로부터) 신발도 못 신고, 혹은 막 문을 나선 분들에게 치유라는 단어가 상처가 될 걸 알았기에 마음에 걸렸던 것이지. 제작사도 그렇고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우리가 그렇게 (매사에) 조심스러운 태도였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영화가 나왔겠지."

- 배우 캐스팅 역시 힘들었다고 들었다. 몇몇 배우가 거절했었고, 애초부터 염두에 뒀던 전도연 역시 두 번 고사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런 거절의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 충분히 그런 일들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도연 선배는 처음 글을 보여드린 후 많은 이야길 나눴고, 고심 끝에 고사하셨다. 그런데 어느 토크 자리에서 말씀하셨듯 거절은 하셨는데 계속 순남을 이해하고 있었고, 정말 거절한 게 맞나 싶었다더라. 저도 그걸 느꼈다. 그래서 다시 만났지. 그리고 <박하사탕>이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영환데 설경구 선배가 제겐 큰 존재였다. <여행자>라는 영화에서 같이 뵀었고, 그때 듬직함을 느꼈었다. 이번 현장에서 정말 많이 힘이 되어 주셨다."
 
- 전도연, 설경구 두 배우 모두 영화를 준비하면서 유가족분들과 만남이나 감독이 준비한 자료 등을 최대한 배제한 채 연기에 임했다고 들었다.
"맞다. 영화가 만들어짐에 있어서 배우들이 갖는 자신만의 몫이 있잖나. 그걸 온전히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취재 영상이 있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혹시 보시겠냐고 물어봤다. 보시겠다고 한 배우분들은 보게 해드렸고, (유가족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다. 전도연, 설경구 선배는 자신 안에서 해내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영화 <생일>을 연출한 이종언 감독.

"매번 새로운 아이를 만나잖나.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반복하는 모임이라고 덜 울거나 아픔이 적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모임을 반복할수록 제가 (유가족을 만난다고) 몸둘바 몰라하던 마음이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그런 경험이 제게 확신을 준 것 같다."ⓒ NEW

 
자극적이지 않지만 동시에 극사실적인 

- <밀양>(2007) 때 연출부로 일하며 전도연 배우와 만났고, 설경구 배우와도 <여행자>(2009) 연출부로 만났었는데 이젠 감독이 되어 재회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변치 않으시더라. 개인적 관계로 치면 전도연 선배는 그때 제가 눈도 잘 못 마주쳤다. 제가 소심했고, 배포가 별로 없었다. <생일>로 처음 만났을 때도 제가 어려워했었지.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본인에게) 필요한 건지 아닌지 받아들이는 건 그 분 몫이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다 보니 신뢰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설경구-전도연 이 두 분이 무언으로 줬던 신뢰감, 또 말 한 마디에 담긴 태도 등이 참 든든했다. 두 분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불가능했다."

- 극화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한 인물과 이야기에서 실제 유가족분들 사연이 엿보인다. 
"특정한 가족의 이야기만 담은 게 아니다. 생일 모임을 진행했을 때 모든 유가족분들 이야기가 제 안에 들어와 있다가 수호라는 아이가 나온 셈이다. 수호 가족에 그분들 사연이 다 담겨 있다."

- 클로즈업을 자제하면서 인물과 주변 사물을 찬찬히 담는 영상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자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는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전제는 있는 그대로 보이자는 거였다. (제작진의) 또 다른 개입으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전제 하에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연출하지만 연출된 것 같지 않는. 그러니까 만든 사람이 덜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캐릭터들만 충분히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창작자는 언제나 최고의 것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잖나. 카메라는 최선의 각도를, 음악가는 재능을 담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전 그걸 물리고 싶었다. 인물의 마음이 이미 충분하고 세기 때문에 다른 장치는 조금씩 덜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제가 지금 기자를 보듯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길 바랐다. (일례로) 영화에서 순남이 통곡하며 울 때 멀찍이서 불켜고 베란다를 내다보는 남자를 두고 어떤 분은 짜증을 내고 있다고 보신 분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으로 보는 분도 있다. 관객분들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 극영화가 나왔다. 그럼에도 사건에 대한 국민적 답답증은 여전하다. 영화인이기 전에 사회구성원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명쾌하게 그 원인에 대한 공식적인 결론을 아직 듣지 못했잖나. 유가족 당사자분들, 국민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할만큼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밝혀지지 않았던 게 있다면 밝혀졌으면 좋겠다. 5년이 지났고, 시간은 앞으로 더 지나겠지.

이 참사가 잊히지 않길 원한다는 말은 제가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 당연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숨겼던 것일 수도 있는데 물론 그렇게 숨기고 돌아보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겠지만, 전 우리가 그 일을 마주하고 만약 울 게 있으면 목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마주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같다. 전 그런 시간을 갖는 게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가 하고 싶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던 이종언 감독은 그렇게 긴 시간을 달려오며 꾹꾹 진심을 담은 상업 영화 하나를 내놓았다. 이후 어떤 길을 걸을까. "아직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준비한 건 없다"며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못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 하나의 일밖에 할 줄 모른다, 다만 사람 마음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걸 볼 수 있는 영화를 계속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다며 이종언 감독은 잠시 숨을 골랐다. <생일>의 시작점에 대해, 그리고 이제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는 시점에 대한 감독의 바람이자 당부였다.

"이 이야기를 처음 쓸 때 유가족 분들과 함께 하면서 쓴 것이고 작게나마 그분들에게 뭔가 진심을 전하고 싶어서 썼지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라는 걸 다 알고 있지만, 오롯이 이 영화가 관객 개개인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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