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준영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가수 정준영이 지난 3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희훈

 
가수 정준영은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로 지난 3월 21일 구속됐다. 정준영의 지속적인 범죄 행각은 본인도 축소하거나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확인된 피해자만 10명에 이르고 그가 동영상을 유포한 '단톡방'에 있었던 인원만 해도 16명이었다.
 
대중은 분노했지만, 일각에서는 정준영의 행각을 토대로 새로운 범죄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해당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로 이름이 거론된 여성 연예인의 사진과 영상을 이용해 이른바 '정준영 동영상' 제작에 직접 나선 것.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동영상은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불법 유해사이트 등을 통해 유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준영 동영상'의 피해자는 정준영이 아니었다. 영상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여성 연예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 '딥페이크'는 어떻게 범죄의 씨앗이 됐나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언급한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영상 중 한 장면. 버락 오바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출연하지만, 영상 속 인물은 버락 오바마가 아니며 발언 내용도 오바마가 하지 않을 법한 말들이다.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언급한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영상 중 한 장면. 버락 오바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출연하지만, 영상 속 인물은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갈무리

 
여성 연예인들은 어떻게 '정준영 동영상'에 등장하고 피해자가 되었을까? 문제의 영상물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동영상이었다. 딥페이크는 합성하고자 하는 특정 인물의 얼굴이 등장하는 영상을 인공지능으로 딥러닝해 조작하고자 하는 영상에 프레임 단위로 합성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페이스 스와핑'(Face Swapping)이라고도 불리는데, 컴퓨터그래픽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고, 특히 영화 산업에서는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당 기술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손쉽게 페이스 스와핑 기술을 어느 영상에나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애플리케이션이 무료로 배포되면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고도의 기술 없이도 가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자, 다수의 유해 사이트들에 "정준영 지라시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올라온 것이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짜 영상 유포 범죄는 이미 '정준영 동영상' 사건 이전부터 불법 유해사이트 등을 통해 보편화되어 있었다. 사이트의 한 이용자는 '딥페이크 레알 혁명 아니냐'라며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준다고 이 기술을 치켜세웠다.

지난해엔 그룹 AOA의 멤버 설현이 자신의 모습을 이용해 합성 사진을 만든 가해자를 고소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여성 연예인들이 모든 범죄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딥페이크 포르노 영상들은 이미 불법 사이트를 잠식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진화한다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언급한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영상 중 한 장면. 한국의 여성 아이돌 멤버 사진들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포르노 영상에 합성하는 식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언급한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영상 중 한 장면. 한국의 여성 아이돌 멤버 사진들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포르노 영상에 합성하는 식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유튜브 갈무리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가짜 포르노들이 등장하면서 딥페이크 기술이 문제로 부상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성폭력·디지털 성범죄의 연장선에 있는, 새로워 보이는 얼굴일 뿐이다.
 
몇 해 전부터 여성들 사이에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모두 내려라'는 경계령이 떨어졌다. 트위터 등의 익명 플랫폼을 통해서 '지인 합성', '지인 능욕'이라 불리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카카오톡 등의 SNS에 올라온 지인들의 얼굴을 음란 사진에 합성하거나, 사진 자체를 모욕적인 방식으로 수정하여 유포하는 범죄다.
  
가해자들은 사진과 함께 해당 인물의 실제 신상정보나 성적으로 유린하는 문구 등을 덧붙여 SNS에 전시하고 공유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7년 하반기에 실시한 '음란·성매매 정보 중점 모니터링'에서 적발한 사례 494건 중 지인 능욕·합성이 291건에 달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성관계 불법촬영물을 포르노로 소비하는 행위, '국산여친 인증'이라며 여성의 나체 촬영물을 유행처럼 공유하는 특정 사이트의 상황, 그리고 딥페이크 포르노는 모두 디지털 성범죄의 진화 과정이다. 포르노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이 불법인 한국에서, 남성들은 주변의 여성들을 대상화해 더 '현실성 있고', '실감 나는' 음란물을 직접 만들며 범죄 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것이다.

기술의 대중화는 성범죄의 잠재적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이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진화 과정을 통해 밝혀졌다. 과학적 사실이나 기술 그 자체는 철저히 중립적이지만, 성폭력 문화가 그 기술을 악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성범죄_딥페이크_공론화
 
 '#디지털 성범죄_딥페이크_공론화'를 해시태그로 쓰며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트위터 게시글.

'#디지털 성범죄_딥페이크_공론화'를 해시태그로 쓰며 딥페이크 영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트위터 게시글.ⓒ 트위터 갈무리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가 문제적임을 인식하고 대응하고 나선 중심엔 여성 아이돌 팬덤이 있다. 팬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디지털_성범죄_딥페이크_공론화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 연예인들이 딥페이크 영상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팬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딥페이크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70조(사이버 명예훼손)나 형법 제244조(음화 제조 등) 위반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데, 성폭력의 영역이 아닌 공익 훼손의 차원에서 범죄가 다뤄져 그 심각성에 비해 처벌 수위는 높지 않다. 또한 딥페이크 포르노가 주로 해외에 기반을 둔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기 때문에 가해자를 검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딥페이크 영상의 소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정준영 동영상'이 퍼지게 된 데는 언론이 사실상 공범의 역할을 했다. 해당 동영상의 피해자 중에 여성 아이돌이 있다는 루머를 기사를 통해 알린 것이 언론이었고, 대중의 호기심을 교묘히 이용하며 특종이라는 듯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심지어는 '지라시'로 도는 특정 여성 연예인의 이름을 기사 제목에 언급하며 2차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지라시의 내용을 알 수 없는 일반 대중에게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퍼나르는 역할을 한 것이 언론이었다. 설상 그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피해자의 신상까지 거론하며 알린 것은 결국 딥페이크 범죄에 빌미를 제공했다.
 
기술의 축복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넷플릭스는 지난달 <러브, 데스 + 로봇>이라는 18부작 연작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종류의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에피소드마다 적용해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3화 '목격자', 11화 '구원의 손' 등에서 선보인 애니메이션 기법은, 이제는 배우가 없이도 실제에 가까운 영상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확신케 했다.
 
그렇다. 이제는 실제로 누군가가 출연하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든 특정 인물이 나오는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것은 새 기술이 우리 앞에 들고 나타난 새로운 유희이자 즐거움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정준영 동영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도 유포될 수 있고, 특정 인물이 찍히지 않았더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만들지 않고, 보지 않는 것. 시민의 기본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술을 악용하는 손길에 대항하는 새로운 안전망을 만들 시간을 벌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사람이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의 심각성을 깨닫고 영상 시청·공유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원더우먼>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갤 가돗을 합성한 '딥페이크 불법영상'. 국내외 유명 연예인들이 딥페이크 기술로 포르노 영상에 얼굴이 합성돼 피해를 입고 있다.

<원더우먼>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갤 가돗을 합성한 '딥페이크 불법영상'. 국내외 유명 연예인들이 딥페이크 기술로 포르노 영상에 얼굴이 합성돼 피해를 입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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