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멈추자는 내용의 경고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멈추자는 내용의 경고장ⓒ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동영상 유포=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SNS에 '경고장'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정 프로필 사진을 위의 문구가 적힌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으니, 부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그만두라고 간곡히 외치고 있다. 이 사진의 물결을 보면서 씁쓸함이 더욱 커졌다. 그래야 할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니까. 실제로 상황은 심각했다. 

'버닝썬 게이트'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가 '승리 게이트'로 이어졌다. 클럽 내 폭력 사건이 버닝썬-경찰 유착 사건으로, 그리고 빅뱅의 전 멤버 승리(이승현)의 성접대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어 가수 정준영이 승리와 함께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 SBS 8뉴스 >는 피해자가 최소 1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준영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했다. 대중은 공분했다. 정준영은 불법 촬영 동영상을 지인들에게 퍼뜨리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그저 '장난'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대했고, 자신의 성적 유희와 쾌락을 충족시키는 객체로 대상화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쪽에서는 정준영과 그의 범죄 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2016년에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분노는 훨씬 더 격렬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포털 사이트에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검색어가 1위에 오른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은 불법 촬영 동영상의 존재 유무와 그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누구인지로 옮겨갔다. 
 
 12일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12일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네이버 캡처

 
"혹시 동영상 좌표 아는 사람 없나?"
"아직 유포 안 됨. 나도 계속 검색 중임."

"OO 그룹 OO 멤버 영상도 있다던데?" 
"그 멤버 '썰' 사실이면 좀 실망일 듯."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준영 동영상'에 유명 걸그룹 멤버/연예인이 등장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급기야 걸그룹 A의 멤버, 걸그룹 B의 멤버, 배우 C와 D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된 지라시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정준영과 방송 활동을 통해 친분을 맺었던 여성 연예인들은 모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자 유출 영상을 찾아보겠다는 시도까지 잇따랐다. 무려 해외에 서버를 둔 유명 포르노 사이트에서도 '정준영 동영상'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그것이 또 다른 가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결국 애꿎은 피해를 입은 루머의 당사자와 소속사가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을 하고,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나서야 했다. 또, 최초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를 했던 방정현 변호사는 "모두 사실이 아니며 실제 해당 여성들과 관련된 영상이(자료에) 단 한 개도 없음을 명백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최초로 이 사건을 보도했던 SBS funE의 강경윤 기자도 "사실이 아니"라고 못을 박자 조금씩 진정되는 분위기다.

안도해야 할까? 암담하지만 상당히 회의적이다. 지금의 분위기는 언제 또 뒤집힐지 알 수 없다. 언제라도 '정준영 동영상'이 다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잠잠해진 분위기는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성과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동영상이 없다'는 관련자들의 확답에서 나온 '포기'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또 한 번 지라시가 등장하는 순간, 유출 영상을 찾으려는 시도는 재개될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 관음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실제로 불법 촬영물(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는 일부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 차례 보도가 됐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가. '소라넷', '일간 베스트 저장소' 등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여친 인증'이라며 여성들의 사진을 게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그밖에도 수시로 불법 촬영물이 인터넷 곳곳을 배회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카카오톡을 통해 이 시각에도 '공유'되고 있을 것이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던 정준영의 모습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던 정준영의 모습ⓒ YTN

 
정준영의 범죄가 매우 악질인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법 개정이 시급하고,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정준영이라는 '괴물'의 예외적인 범죄로 정리하는 건 오히려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정준영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유출 영상을 찾으려는 시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사태가 이토록 커졌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보다 '관음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불법촬영 동영상'이 그만큼 익숙하고 만연하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준영은 괴물이 아니라 여성을 대상화/객체화하는 남성들의 보편적인 문화의 산물이다. 그가 죄책감 없이 불법 촬영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했던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2차 가해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의 책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와 여가부가 발간한 '성희롱·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여러 언론들은 '가해 행위'가 아닌 '피해자'를 강조하고,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12일, 채널A < 뉴스A >는 피해자의 직업을 특정한 <'정준영 몰카' 피해자에 OOO OO 1명 포함>이라는 뉴스를 '단독'으로 보도했고, 다음날 <동아일보>도 같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현재 이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 근원적인 원인을 따져묻기보다 당장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보도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대중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준영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는 엄중하게 묻고 있다. '당신은 멈출 수 있습니까?' 지금의 폭발하는 분노가 소모적으로 낭비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성과, 다시 말해 제도적인 변화와 왜곡된 성 인식을 바꿔나가는 데 쓰이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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