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분)이 의존했던 두 여인의 이야기를 기초로 하고 있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분)이 의존했던 두 여인의 이야기를 기초로 하고 있다.ⓒ 20세기 폭스 코리아


 
연두색 들풀과 하얀 들꽃들이 숨 쉬는 아담한 공간. 이곳은 'ㅇㅇ의 꽃들'이란 꽃집이다. '청년창업 희망 스타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한 이곳을 지난주 인터뷰했다. 청년창업 희망스타트는 청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제도다. 인터뷰 도중 손님이 와서 꽃다발을 주문했다. 나무젓가락보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전정 가위를 들고 꽃대를 자르고 꽃다발을 만드는 꽃집 대표를 보니 어쩐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내내 대표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굴리며 자신의 소박한 꿈과 포부를 밝혔고 나는 엄마 심정이 되어 주먹을 불끈 쥐며 그를 응원했다. 그가 사자 같은 심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데,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인지 젊은 나이 때문인지 나는 주책없게 자꾸 걱정이 앞섰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며 얼마나 강하고 다채로운 존재인지 잘 알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걱정하는 이 몹쓸 엄마병.

전복된 권력 관계

인터뷰를 마치고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아래 <더 페이버릿>)를 봤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다. 18세기 영국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과 앤의 애인이자 실세였던 사라(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사라의 사촌 애비게일(엠마 스톤), 이 세 명의 실존 인물이 벌이는 치열한 권력 쟁탈전을 그린다. 여기에는 두 가지 권력이 작동한다. 정치적 권력과 사랑의 권력. 왕의 남자가 남자간 애정을 짐작케 하는 것처럼 여왕의 여자는 여자 간 애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으로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공격의 포인트는 확실하다. 첫 장면, 앤 여왕과 사라의 대화다. 여왕의 요구를 거절하며 사라는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앤 여왕은 '사랑하면 한계가 없어야지'라고 받아친다. 이 두 마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앤 여왕이 정치적 권력에는 위지만 사랑의 권력에는 밑이구나. 여왕에게 무조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크러쉬 사라. 시작부터 묘한 쾌감이 있다.

 
 <더 페이버릿> 스틸컷

<더 페이버릿>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앤은 다리에 심각한 통풍을 앓고 있다. 게다가 감정이 '나노 단위'로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어린아이 같은 캐릭터다. 이런 앤을 대신해서 사라는 국정을 운영한다. 사랑의 약자라고 앤이 무작정 사라에게 질질 끌려다니지 않는다. 앤은 여왕이니까. 사라가 파티장에서 남자 귀족과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앤은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다. 앤은 의도적으로 사라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권력자의 편을 들어줌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다. 사라는 뒤늦게 이를 눈치채고 사과하지만 앤에게 뺨을 맞는다. 이 장면에서 앤은 사라를 압도하고 있다. 이렇듯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힘의 균형추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끌고 간다.

사라는 귀족 가문 출신에 전쟁영웅 남편이 있고 여왕의 숨겨진 애인이자 권력을 가진, 한 마디로 '다 가진 여자'다. 이런 사라 앞에 사라의 사촌 애비게일이 찾아온다. 애비게일 역시 귀족 출신이었으나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팔려가 바닥의 인생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사라를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한다. 애비게일이야말로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녀가 앤과 사라 사이에 끼어들어 온갖 갈등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언뜻 드러나는 그녀의 아픈 과거 때문에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감정 이입하기 가장 힘든 인물이다.

이 영화의 강렬함은 온전히 세 배우에게서 나온다. 올리비아 콜맨(앤 여왕)과 레이첼 와이즈(사라), 그리고 엠마 스톤(애비게일). 이들은 스치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뿜어내며 화면을 압도한다. 숨 막히는 기 싸움에 손에 땀이 나고 어깨에 담이 온다.

앤 여왕 역할을 한 올리비아 콜맨. 17명의 자녀를 잃은 아픔을 지닌 그녀가 시도 때도 없이 히스테릭한 발작을 보이다가, 사라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다가, 애비게일을 이용하여 사라에게 질투를 유발해 아슬아슬 그 경계를 즐기다가, 결국 건강도 잃고 사라 마저 잃고 외로워지는 여자, 그 변화무쌍한 희로애락을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안면신경이 마비되어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침 흘리는 연기를 할 때 '저 여자가 미쳤구나' 감탄이 나왔다.

레이첼 와이즈, 이 배우의 나이는 연기의 노련함에만 드는 모양이다. 올리비아 콜맨보다 4살 연상이라니, 이거 실화냐? 도도하고 지적이며 섹시한 이미지를 다 가진 배우다. 앤이 애비게일과 가까워지자 질투에 휩싸여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앤의 목을 조르는 사라. 사라의 질투를 즐기는 앤. 입안의 혀처럼 구는 애비게일과 비교해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고 묻는 앤에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게 사랑이니까"라고 답하는 사라. 

 
 <더 페이버릿> 스틸컷

<더 페이버릿>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더 페이버릿> 스틸컷

<더 페이버릿>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랑과 욕망에 대해

나는 헷갈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게 사랑일까, 아니면 마음에 없는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사랑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이 내 가슴에 넘쳐서 그것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 아닌가. 그래서 사라의 이 대사는 내게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다.

그리고 엠마 스톤, 두 말이 필요 없다. 신분 상승을 위한 욕망과 목표가 가장 확실한 여자. "난 항상 내 편이야"라는 대사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여자. 에비게일은 신분 상승을 위해 귀족 청년 마샴과 결혼 하는데, 그를 쥐락펴락하는 모습과 신혼 첫날 밤 그녀가 보여준 장면은 쇼킹 그 자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이 뭔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상대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뿐, 마음을 나누지 못하니 목표달성을 해도 헛헛하긴 그녀도 마찬가지다. 이런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엠마 스톤은 완벽히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달콤한 것에 취해 사라를 잃어버린 앤도, 사랑보다 무서운 게 정이라고, 그 정에 이별이 괴로운 사라도, 목표를 이뤘지만, 마침내 속내를 들키고 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무릎 꿇고 앤의 다리를 문질러야 하는 애비게일도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풍미를 한껏 끌어 올린 음악에 귀를 사로잡히고, 화려한 궁전과 드레스에 눈을 사로잡히고, 그녀들의 스토리에 마음을 빼앗긴 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영화는 제75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올리비아 콜먼은 볼피컵 여자연기자상과 제91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감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를 만든 그리스 출신의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세계적인 영화제에 출품했다 하면 상을 받는 감독.

독창성이 뛰어난 그의 작품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더 페이버릿>도 영화가 끝나자 "뭐야, 이렇게 끝난 거야?"라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 그렇지, 과연 요르고스 란티모스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 기가 막힌 엔딩.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영화 포스터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영화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오버랩이 많은 그 엔딩에서 문득 나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그녀들과 풀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꽃집 대표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꽃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그 누구도 겨냥하지 않는 선한 욕망을 가진 꽃집의 그녀와 누군가를 찍어 내려야 채울 수 있는 욕망을 가진 그녀들이 겹쳐 눈앞을 어지럽혔다.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욕망을 가졌으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내가 꿈꾸는 욕망은 나를 어느 지점으로 이끌고 있을까. 욕망은 본능이고, '꿈의 성취'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욕망의 어느 지점까지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건지, 행복은 욕망의 어느 지점에 걸쳐 있는 건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나에게 그 경계를 묻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하연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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