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참, 색달랐다. 폴킴의 '초록빛(작사 폴킴, 작곡 폴킴)'을 처음 들었을 땐 어색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슬픔도, 사랑을 시작하는 환희도, 힘내라는 직접적인 위로도 이 노래의 가사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밋밋할 정도로 잔잔한 가사가 자꾸만 귀에 감겼다. 들으면 들을수록, 밋밋함은 담백함으로, 담백함은 평화로움으로 바뀌어갔다. 어느 덧 내 마음까지 차분해지며 편안해지고 있었다. 이 노래가 전달하는 평화로움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판단하지 않고 느끼기
 
폴킴 폴킴의 신곡 '너를 만나'가 음원차트를 휩쓸며 1위에 머물러 있다.

가수 폴킴 ⓒ 뉴런뮤직

 
"버려진 담배꽁초, 흔들리는 처량함, 휘청거리는 휜 맥주 뚜껑에 난 또 감상에 젖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려진 담배꽁초'는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의 꿈이나 목표로부터 버려진,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잃은 자신을 투사한 표현일 테다. '흔들리는 처량함'은 버림받은 후 힘든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다. '휜 맥주 뚜껑'이 휘청거리게 보이는 것은 지금 자신 역시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소절까지만 들었을 때, 분명 이별이나 상실 후 느끼는 슬픔과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는 노래일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소절 반전이 일어난다. 첫 소절에 표현한 바로는 슬프고 외롭고 비참한 심정일 것만 같은 데 폴킴은 이렇게 노래를 이어간다. "오늘 밤은 뭔가가 왠지 달라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아서"라고 말이다.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처량해 보이는 자신을 '외롭지 않다'고 표현하다니. 이는 과연 어떤 마음인 걸까?

답은 "오늘 밤은 뭔가가 왠지 달라서"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 속 폴킴은 자신의 상태를 흔들리고 처량하고 휘청거린다고 인식하지만, 이 상태를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 들면 외롭고 슬프고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냥 자신의 상태를 느낄 뿐이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는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상태다.

 마인드 셋을 벗어난 새로운 관점

미국의 심리학자 앨렌 랭어가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를 통해 개념화 한 '마음챙김'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현상과 감정을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판단하지 않고 비판단적으로 느끼고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랭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일종의 고정관념인 '마인드 셋'에 의해 어떤 상황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정형화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 셋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이 순간을 느끼고 받아들인다면 처한 상황이나 감정 자체가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에 머물면, 또 다른 순간이 찾아옴을 깨닫게 되고 늘 변화하는 순간에 열려있는 채로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노래의 첫 소절을 슬픔에 관한 노래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듯, 많은 이들은 "흔들리고 처량하고 휘청거리는" 상태라면 마땅히 외롭고 슬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내려놓으면 이런 느낌은 그냥 그 순간의 상태일 뿐이다. 이 노래에서 폴킴은 '이렇게 처량해서는 안 되는데, 너무 외롭고 슬퍼'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금 기분이 이렇구나'하고 받아들인다. '오늘 밤은 뭔가가 왠지 달라서'라는 소절은 늘 가지고 있던 마인드 셋을 내려놓았음을 즉, 뭔가가 다른 '마음챙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폴킴은 "외롭지가 않아서 보고 싶던 친구들을 만나"라고 노래한다. 나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일지라도 외롭지 않다. 그리고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보통 외로울 때 친구들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외로울 때 친구들을 만나는 건 그 친구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친구를 만난다. 하지만 폴킴은 지금 외롭지가 않다. '외롭지 않아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보다는 진심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둘 수 있다. 진짜로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고 보다 진실한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초록빛'이 담긴 폴킴의 '초록빛' 앨범. 폴킴은 이 노래에서 평가의 잣대를 내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초록빛'이 담긴 폴킴의 '초록빛' 앨범. 폴킴은 이 노래에서 평가의 잣대를 내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 (주) 카카오M

 
관대한 시선과 공감하는 마음

다음 소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초록빛의 신호등이 밝기만 하다 서 있는 저 사람도 깜빡이고 서 있지만"이라고. 마음 챙김의 상태에선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또한, 마음이 개방적으로 되면서 현재를 보다 너그럽게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초록빛의 신호등이 밝기만 하다"는 부분은 이런 관대한 마음상태를 함축한 표현이다. 폴킴은 마음 챙김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상태에서도 현실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서 있는 저 사람'에게도 주의를 기울인다. 내가 휘청거리듯, 저 사람 역시 '깜빡이듯 서 있는' 즉, 어딘지 힘든 일이 있어 보인다. 타인의 마음에 관심이 가고 공감은 가지만 이 역시 판단하지 않는다. '깜빡이면 안 되는데, 저 사람도 참 안됐어' 가 아니라 '깜빡이는구나' 하고 그냥 상대방의 마음을 그대로 바라본다. 이렇게 현상을 해석하지 않고 느끼고 바라보면, 어느새 삶에 대한 연민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잘 돼서가 아니라, 그냥 살고 있는 그 자체가 축복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폴 킴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관계없이 지금 여기에서의 평화로움을 맘껏 누릴 수 있다. '부딪히는 바람도 평화롭구나'는 그런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소절이다. 사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이별과 상실, 실패로 인해 두렵고 휘청거리는 상황일지라도 그런 상황은 관념 안에만 존재한다. 관념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불어오는 바람을 평화롭게 맞을 수 있다. 나는 힘든 상황에 있으니 힘들고 슬퍼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순간순간에 집중한다면 언제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긍정적 통합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 상태로 나를 돌아보면, 힘들었던 과거도 새롭게 재해석 된다. "내 마음을 간질여 예전의 나를 돋는다"고 반복되는 노랫말은 이런 상태를 의미한다. 고정관념, 즉 '마인드 셋'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를 하고 단단한 범주를 만든다. 나의 과거도 세상의 기준, 부모의 기준 혹은 나 스스로 가진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실패라고 판단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또 스스로를 실패자의 범주에 넣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평가를 내려놓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바라본다면 그 모든 상황들을 견디고 헤쳐 나가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스스로에게 보다 관대해질 수 있다. 또한 그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도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한 순간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마음챙김 상태에 있는 폴킴은 때문에 "흔들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본다. 예전엔 지우고 싶은 부끄럽다 여겼던 과거일지라도, 이제는 지금까지 살아온 한 과정으로 느껴질 뿐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과거의 상처입고,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내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나임을 깨달을 수 있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며, 자신을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 삶의 과정 중에 있는 변화하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인식에 도달하면 삶이 모든 과정, 모든 순간이 더욱 소중해지고 보다 충만하게 삶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변해서 더 그런가 해." 폴킴이 반복해서 노래하는 이 부분은 이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집약해서 전하는 소절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고정관념을 알게 모르게 습득하며 자란다. '이별은 괴롭고 나쁜 것' '성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 '불안하고 우울한 채 있어서는 안 된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것' 등 수많은 고정관념으로 삶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별이 꼭 괴롭고 나쁜 것일까? 성공하지 않으면 정말 실패한 인생일까? 괴로운 감정을 느낀다는 게 꼭 해로운 일일까? 나이 들어가는 게 정말 슬픈 일일까? 폴킴은 이런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쪽으로 마음이 변화했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충만한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다.

'마인드 셋'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의 상태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는 '마음챙김'의 상태. 이게 바로 '초록빛'에 담긴 평화의 비결이다. 이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비록 미세먼지 자욱한 봄이 오더라도 봄날의 '초록빛'을 찾아내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담배꽁초
흔들리는 처량함
휘청거리는 휜 맥주 뚜껑에
난 또 감상에 젖어
오늘 밤은 뭔가가 왠지 달라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아서
보고 싶던 친구를 만나

초록빛의 신호등이 밝기만 하다
서있는 저 사람도 깜빡이고 서있지만

부딪히는 바람도 평화롭구나
내 마음이 변해서 더 그런가 해
흔들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도
내 마음을 간질여 예전의 나를 돋는다"
(후략)
- 폴킴 '초록빛' 가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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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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