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이 기간은 우리의 영원한 캡틴 '지성 팍'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아래 맨유)에 적을 두고 있던 시기다. 이 시절, 나는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낮과 밤이 거꾸로 뒤집힌 삶을 살았다.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다. 주기적으로 대상을 옮겨 타는 게 함정이랄까.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기에는 그가 뛰는 경기에 푹 빠지고 말았다.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적 축구 구단인 맨유는 주중이건 주말이건 아주 많은 경기를 치른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하는 중에 FA컵 등 컵 대회, 유럽 프로리그 강팀간의 대회인 챔피언스 리그까지 쉴 틈 없이 일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수들도 힘들겠지만 경기를 보는 사람도 아주 피곤하기 마련이다. 시차가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서 새벽인 오전 3~4시에 경기가 열린다.

따라서 축구 팬들은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세 번을 밤 늦은 시간에 일어나 경기를 봐야 한다. 어디 맨유 경기뿐인가. 맨유를 위협하는 맨시티나 첼시, 리버풀, 아스널 경기도 전력 분석을 위해서 봐야 한다. 거기다 세계적 선수 메시의 개인기도 놓칠 수 없으니 스페인 리그 경기까지 보느라 다크써클을 무릎까지 달고 다녔다.
 
박지성 때문에 맨유 팬 되고, 지역 축구팀과 친분도 쌓아

지난 2010년경 나는 개인병원 간호사로 입사했다. 규모가 작은 개인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접수도 하고 물리치료도 하고...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경기장에서 공격에도 나서고 수비에도 가담하는 박지성 선수처럼.

병원 근처에 고교축구로 유명한 학교가 있다. 어느 날 축구 선수 한 명이 발목을 삐어서 우리 병원에 왔다. 나는 초음파 물리치료를 해주며 옆에서 간밤에 본 맨유 경기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맨유=우리 팀'이란 등식을 가진 채로 말이다. 오로지 '지성 팍' 한 명 때문에... 박지성 선수가 경기 중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가슴을 졸이며 화면에 비친 퍼거슨 감독의 눈치를 봤다. 혹시라도 경기 중 박지성을 교체해 벤치에 앉힐까 봐. 마치 내 가족이 경기장에서 뛰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달까.
 
그날 나의 생생한 경기 중계에 감동을 받은 고교 축구선수는 다음 날 다른 선수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나는 내 아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정성껏 치료했고, 그렇게 나는 아무도 임명한 적 없지만 고교팀의 팀 닥터가 아닌 팀 간호사가 되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고교 축구리그가 열렸는데 나는 이 선수들을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선수들이 경기장에 가기 전, 다쳤던 부위를 최종 치료해주고 발목 등에 단단히 테이프를 감아주었다. 경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병원에 들러 당일 경기의 승패를 알려주곤 했다.
  
 2007년 7월 2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이 20일 서울 상암월드컵구장에서 열리는 맨유와 서울FC의 친선경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2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이 서울 상암월드컵구장에서 열리는 맨유와 서울FC의 친선경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 무렵 안산 2부 리그 축구팀 선수가 병원에 왔다. 최전방 공격수라는 그 선수 또한 무릎부상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거였다. 치료를 받는 동안 그가 휴대전화로 맨유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그러자 나는 피가 또 뜨거워져서 '간밤 경기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고'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서 '4-4-2 포메이션보다는 4-2-3-1 포메이션이 상대팀을 상대하기 더 낫다'느니 묻지도 않는 전력분석을 '설렁탕에 깍두기'처럼 곁들였다. 하여간 나는 누굴 감동시키는 데는 소질이 있나 보다. 결국 그 선수도 자신의 동료들을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내가 병원에 입사하고 난 후, 순식간에 우리 병원은 지역 축구선수들의 단골 병원이 되었다. 원장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고 마치 입이 귀에 걸린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월급을 더 주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후 나는 안산 축구팀의 서포터즈 겸 '팀 간호사'가 되었고, 맨유의 '팀 닥터'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경기 입장료 3천 원을 안 내도 되었고, 구단에서는 남은 경품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만 둘 있는 우리 집에 축구공이 8개나 됐다. 시합 때마다 나는 경기장에서 아들들과 함께 부부젤라를 불고 북을 치며 응원했다. 부부젤라는 생각보다 소리내기도 힘들고 두 번만 불면 현기증이 난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응원을 하다보면 정해진 문구가 있다. 우리가 공격을 할 때는 '브라보 안산'을 외치며 함성을 지르고 우리가 공격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에는 '집중하자 안산'을 외치는데 주로 후자를 많이 외치게 된다. '집중하자 안산'을 하도 외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또 진다.
 
가끔은 코치도 치료를 받으러 왔었는데 코치가 내게 물었다. "우리 팀의 문제가 뭐인 것 같아요?" 나는 또 쓸데없이 솔직해서 속내를 다 말해버리고 말았다. "패스가 안돼요. 패스가 돼야 작전이고 뭐고 들어가는데 번번이 패스가 안 되니 필드골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벽에 숨죽여 본 맨유 경기 중계, 아들과 유대감 쌓은 계기

맨유 경기가 있는 날 밤이면 경기 두어 시간 전부터 자꾸 깨곤 했다. 그날 경기 선발 라인업이 궁금해서다. 박지성이 선발인지, 혹은 벤치에라도 앉아있는지 신경을 쓰느라 잘 수가 없었다. 박지성이 호날두,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와 나란히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던지.
  
 축구 경기 중계

당시 중학생이 된 아들과 나는 맨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 3시에 거실에서 접선했다. 그리고 경기 중계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준비한 맨유 유니폼을 입는다. TV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바짝 다가가 앉는다.ⓒ pixabay

 
당시 중학생이 된 아들과 나는 맨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 3시에 거실에서 접선했다. 그리고 경기 중계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준비한 맨유 유니폼을 입는다. TV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바짝 다가가 앉는다. 소리가 시끄러우면 자던 남편이 깨서 세상 한심한 눈으로 우릴 보기 때문이다. 아들과 나는 박지성이 골이라도 넣는 날이면 허공에 대고 막 하이파이브를 했다. 새벽에 큰 소리가 나면 안 되니까. 아들과 나의 강한 유대감은 아마 이때 만들어진 것 같다.

경기 전반전이 끝나면 늘 배가 고프다. 냉동실에 얼려둔 모시송편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서 전략을 분석하고 누가 경기의 '구멍'인지, 누가 MOM(man of the match, 경기MVP)인지 아들과 의견을 나눴다. 아들은 지금도 모시송편을 보면 축구가 떠오른다고 한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박지성의 '인생 경기'는 너무도 많지만 몇 개만 뽑자면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을 꼽고 싶다. 이날 경기에서 박지성은 포르투갈 수비진을 제치며 골을 넣고 히딩크의 품에 안기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결국 이 경기는 박지성을 네덜란드 리그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또 2004년 PSV 에인트호번과 AC밀란과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도 있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당시 최강 수비를 자랑하던 밀란을 상대로 골을 넣고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유로 이적하게 됐다.

2010-2011시즌 EPL 36라운드 첼시전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박지성은 경기가 시작된 직후 치차리토에게 '킬 패스'를 넣어 한방에 첼시를 무너트리기도 했다. 이날 전반전에 보여준 박지성의 경기력은 마치 '무당이 작두 타는 듯' 신들린 경지에 가까웠다.

같은 시즌 울버햄튼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멀티 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월드컵 출정식, 한일전 빅 매치도 잊지 못할 경기다. 이날 박지성은 경기 시작 6분여 만에 골을 넣고 3만 일본 관중 앞에서 산책 세리머니를 선보이면서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박지성, 시즌 첫 골 폭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오른쪽)이 지난 2011년 8월 28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이날 맨유는 8-2로 대승을 거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오른쪽)이 지난 2011년 8월 28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이날 맨유는 8-2로 대승을 거뒀다.ⓒ 연합뉴스/EPA

 
'두 개의 심장' 박지성, 그가 있기에 행복했다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이런 박지성에게 '캡틴 넘버 세븐'이란 곡을 만들어 헌정했고, 나는 그 곡을 좋아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박지성이 모티브라 그런지 음악도 속도가 빨라 쉴 틈이 없다.

박지성을 묘사하는 표현들 중에는 그가 얼마나 부지런히 뛰어다니는지 '심장이 두 개다', '악착같다', '집요하다'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설사 그가 뛴 경기에서 팀이 지더라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니까.
 
요즘은 너무 열심히, 혹은 너무 힘들게 살지 않는 게 대세다.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죽어라 매달려 일만 하는 사람은 '뭔가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삶 저런 삶이 있지만 박지성이 경기에서 보여준 태도는 삶을 향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숙연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박지성이 현역 선수에서 은퇴하던 날, 당시 방송 자막에는 이런 문구가 나왔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나도 그랬다. 정말이지 박지성이 있어서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이제 은퇴했기에 현역 선수로 뛰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기억한다. 경기가 열릴 때면 밤마다 잠을 설쳤지만 박지성이 있어 내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독일-멕시코전 해설하는 박지성 박지성 해설위원이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를 앞두고 중계석에서 모니터하고 있다. 2018.6.18

▲ 독일-멕시코전 해설하는 박지성박지성 해설위원이 지난 2018년 6월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를 앞두고 중계석에서 모니터하고 있다.ⓒ 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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