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게 불행하고 적당하게 행운을 누리다가 누군가를 위해 휘청거려주는 것'
 
임현의 소설 <그들의 이해관계> 속 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불행과 행운 양자의 무게를 다는 양팔 저울의 모습이 그려졌다. 미세한 변화를 반복하는 접시의 높낮이를 예의주시하는 어떤 신을, 불행 혹은 행운의 접시 위에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을 올리는 신의 손을 상상했다. 

영화 <가버나움> 속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그 신이 자신의 삶을 행운의 접시 위에 올려주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신의 저울질 뒤 태어난 세상에서 자인은 자신이 끊임없이 배고파야 하고, 싸워야 하며, 천대받게 될 것을 알았다.

아랍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에 오른 감독 나딘 라바키, 치밀한 캐스팅과 오디션을 통해 섭외된 비전문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이라는 쾌거. 최근 국내 관객 6만 명을 동원한 영화 <가버나움>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 영화가 이룬 업적에서 시선을 옮겨 튼튼한 서사를 가능하게 한 영화 속 인물들의 삶, 이 영화를 가능하게 한 삶 그 자체를 얘기하려 한다.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의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자인의 가족, 동생 사하르

<가버나움>의 서사는 자인과 자인의 부모가 참석한 법정에서 출발한다. 이 공간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인이 누군가를 칼로 찔렀다는 것. 둘째, 자인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고자 한다는 것. 앞선 두 가지 사실에서 자인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자인의 동생인 사하르(하이타 아이잠)가 살았던 삶, 그리고 그녀가 맞이한 죽음과 가장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인공 자인의 주된 생활 반경이 되는 공간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빈민가다. 그곳에서 자인과 그의 동생들이 살아내는 일상은 일찍이 생업 종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많은 아동, 청소년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그런 하루라도 좀 더 잘 살기 위해 자인은 낮에 동네 슈퍼에서 배달을 하고, 직접 만든 비트 주스를 동생들과 함께 들고 나가 차로 빼곡한 길가에서 판다. 이와 대비되게 자인의 부모가 일을 하는 모습은 영화에서 좀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자인이 한 살 터울 여동생인 사하르에게 느끼는 각별함은 그런 상황에서 사하르가 나이 많은 사내에게 팔려가지 않도록 지키고자 하는 의무감으로부터 비롯된다. 조혼이 오늘날 반인륜적인 인습의 표징으로 여겨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간택에 불과한 일방의 선택이 다른 상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요된다는 것인데, 결국 사하르가 그 간택에 휘말리면서 비극을 맞이하는 것도 그런 반인륜을 상징하는 묘사다. 이는 영화에서 자인이 어른에 대한 극렬한 분노를 표출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자인과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머리를 맞대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자인과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머리를 맞대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자인이 만난 사람들

사하르를 내쫓은 부모로부터 호기롭게 도망 나온 자인이 우연히 버스에서 만나게 된 바퀴맨에게서 호기심 어린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은 자인이 명백한 12살 '소년'임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스파이더맨 옷은 아니지만 묘하게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옷을 입은 할아버진은 자인에게 자신을 바퀴맨으로 부르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다가 자인은 놀이공원에 다다른다. 바퀴맨은 자인을 소년이라면 맘껏 응석을 부려볼 만한, 혹은 그래도 되는 공간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자인은 길거리에 뒹구는 쓰레기를 가지고 폐건물에서 노는 것에 더 익숙하다. 노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인 공간을 자인은 생소하게 느낀다. 이런 감정은 시종일관 시큰둥하게 놀이공원을 배회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인이 놀이공원을 찾은 건 그저 우연이었음을 떠올릴 때, 불행과 행운의 양팔 저울 역시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선 단 한 번도 등장한 일이 없다.

놀이공원을 배회하던 자인을 집으로 데려간 놀이공원 직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의 삶 역시 녹록치 못하다. 에티오피아 국적의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체류 생활을 이어간다. 갓난아기인 아들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체포를 피해 이 나라에서의 살고 싶다. 하지만 어떤 요소들이 혼자서도 아들을 잘 키워보겠다는 그녀의 다짐에 자꾸만 균열을 낸다. 기간 만료를 앞둔 신분증, 새 신분증을 발급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급여, 돈을 보내야 할 고향집.

그래도 자인과 라힐은 서로의 삶을 맞댄다. 자인은 라힐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도 요나스를 자기 힘으로 건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라힐은 자인이 요나스를 잘 지켜 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짓궂은 저울질 위에서 휘청거리는 그들의 삶은 번번이 벽 앞에 선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벽 앞에서 자인은 다시 한번 꾸준한 절망을 맞본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수많은 '자인'들

 <가버나움> 속 자인의 삶은 자인의 것만이 아니다. 자인을 닮은, 혹은 그보다 힘들고 어려운 삶들을 마주할 때마다 섣부른 동정으로 그 삶들을 격하시키는 오만을 부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서도 왜 나는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한다. 스스로에게 아무리 물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그 질문을 붙잡고, 자인의 삶을 한없이 슬퍼만 할 수는 없다.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처럼 영화 <가버나움>은 조금은 결이 다른 다짐을 가능하게 한다. 침체 된 연민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행동력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부여한다. 자인이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입술 앙, 다 물고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을 보는 관객은 자신의 삶이 자인에 비하면 행운의 접시 위에 올라있다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이들이라면 기꺼이 영화 말미 자인의 대사에 담긴 근본적인 욕구에 공감할 것이므로.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모두에게 존중과 사랑이 허락되는 삶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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