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Y 캐슬 > 20회의 한 장면

< SKY 캐슬 > 20회의 한 장면ⓒ JTBC


"그래, 우주보다 내 딸 생각해서 경찰서 갔어. 그게 왜 나빠? 내 새끼 우선하는 게 왜 나빠? 자식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게 엄마야."
 

어쩌면 한서진의 이 대사에 '세상의 모든 엄마'에 대한 면죄부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20회 첫 장면 속 교도소 면회실. "혜나를 왜 죽였느냐"며 "난 너 같은 악마하고 달라"라던 한서진은 김주영의 절규에 결국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우주가 불쌍해서 우주를 구하러 경찰서에 가셨습니까? 예서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어도 방향을 트셨겠습니까?"라며 한서진의 교만이 비극을 자초했을 것이란 비난과 함께 한서진 역시 혜나를 죽음으로 몰아간 공범임을 강조하던 김주영의 결정적인 한 마디.
 
"어머니와 전 다르다고 하셨습니까? 천만에요. 어머니와 전 똑같습니다".
 
여기서 끝나야 했다. 끝까지 '공범의식'을 밀어 붙이는 문제제기 말이다. 시험지 유출을 알아채고는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던 혜나,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른들이 고통을 받고 자책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해피엔딩'이고, '한'국 드라마다운 결말일 수 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갔던 어른들의 책임을 '드라마' 수준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리라.
 
그랬다면 < SKY 캐슬 >은 자식들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속 부모들과 아이들의 몰락 과정을 그린 '입시 스릴러', '교육 스릴러'이자, 한국 의 교육제도와 한국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풍자하는 훌륭한 블랙코미디로 남았을 터다.
 
하지만 < SKY 캐슬 >은 두 달 넘게 공들여 쌓은 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우를 범했다. 20화를 본 시청자들이 모든 캐릭터의 '우주化(화)'라는 조롱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지사다. 악인들은 모두가 개과천선했고, 범인들은 착한 본성을 극대화시켰다. 작가가 한 마디로 캐슬 내 모든 가족에게 'Happily ever after'에 해당하는 결말을 선사해줬다. 완전한 자기부정이자 지독하게도 부조리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방영 내내 호평을 받았던 유현미 작가는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더하고 싶었던 걸까. 왜 시청자들은 20회에 23.8%(닐슨미디어 기준)라는 비지상파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안겨주고도 최악의 결말이란 혹평을 쏟아냈을까.
 
안온한 결말, 퇴색한 의미 
 
 <SKY 캐슬>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JTBC


이미 수차례 최소한의 '좋은 결말'의 가능성은 잉태하고 있었던 터다. 아니, 쉽게 말해 납득 가능한 엔딩으로 끝낼 기회는 많았다. 최소한 작가가 한서진과 강준상의 파멸을 원치 않았더라도, 회개와 용서로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널려 있었다.
 
"제가 용서를 해야 하나요? 왜 해야하죠? 불쌍한 혜나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견뎠는데, 시험지 유출 문제 때문에 혜나가 죽었다고요? 협박을 했든, 이용을 했든. 공정하지 못한 시험 때문에 혜나가 죽은 거잖아요? 혜나가 왜 죽어야 돼요, 왜?"
 

19회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한서진과 강준상에게 출소한 우주는 이렇게 절규한다. 이미 작가 역시 핵심을 알고 있다. 작가는 이미 혜나가 왜 죽어야 했고, 혜나를 죽인 실행범보다 공범들의 심리와 행태를 길게 설명해왔다. 하지만 작가는 19회에 이어 20회까지 용서를 넘어 '정상가족'으로 변모해 나가는 예서네 가족의 일상까지 공을 들여 묘사했다. 그래도 되는 걸까.
 
어쩌면, 구원은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 SKY 캐슬 > 속 '3대째 서울대 의대 입학'이 가리키는 한서진 개인의 욕망, 즉 교육열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의 부모들이 지닌 욕망은 결국 이 드라마에 전폭적인 몰입을 가능케 했던 '세상의 모든 엄마', '세상의 모든 부모'라는 손쉽고도 보편적인 테제에 무릎을 꿇었다.
 
차민혁은 딸 세리와 어슬픈 춤을 추며 '딸바보'의 면모를 선보였고, 노승혜는 눈물로서 차민혁과 화해를 이뤘다. <안녕 스카이캐슬>을 출간한 이수임은 영재와 박수창 교수는 물론 심지어 김주영의 딸 케이까지 돌보는 '오지라퍼'로서의 실천력을 과시했고, 수험생 우주는 홀로 긴 여행을 떠나버렸다. 우양우와 진진희는 그나마 맡고 있던 보통 부모의 역할에 충실한 쪽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한서진과 강준상. 회개와 개과천선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기억될 이 두 캐릭터는 드라마 내에서가 아닌 작가의 의도로서 용서 받은 경우라 할 만 하다. 작가가 선사한 손쉬운 용서와 화해는 이들에게 돼지갈비와 파스타를 가지고 투닥거리는 공부 잘하고 개성 강한 두 딸을 온전히 남겨줬다.
 
그 중 더 나쁜 쪽은 한서진이다. 강준상은 "나이 오십이 됐어도 빈껍데기만 남았다"며 절규라도 했지만, 한서진은 오로지 불안한 예서를 보다 못해 경찰서 행을 선택한 경우다. 그나마도 한서진은 남편과 딸의 심리 변화와 그들이 내뱉은 말과 행동에 크게 좌우된 것으로 그려졌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갔던 어른들의 용서도 손쉽지만, 더욱 부조리한 지점은 이 모든 것이 혜나의 죽음이란 반석위에 세워진 공고한 성이라는 데 있다.
 
이렇듯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 앞에, "혜나한테 용서 비셨어요? 죽은 혜나한테 용서 비셨냐고요?"라던 우주의 절규는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어머니와 전 똑같습니다"라던 김주영의 일침과 함께 < SKY 캐슬 >이 정주해온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 우주의 한 마디는 유현미 작가가 마련한 준비된 화해와 섣부르게 예정해 놓은 용서 앞에 색이 바랬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던 어른들, 단죄와 파멸은 없다 
 
 <SKY 캐슬>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JTBC


"자식을 망가뜨리고 가족을 파괴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부모들입니다. 나도 묻고 싶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의대, 의대하는지. 서울 의대에 합격하면 성공과 행복이 담보되는지."
 
"이수임씨, 나한테 와서 따지지 말고 예서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왜 그렇게 서울 의대, 의대하면서 예서를 사지로 몰고 있는지. 전 단 한 번도 예서에게 제게 오라고 강요한 적 없습니다. 예서 스스로 저한테 오는 거죠. 딸을 그렇게 만든 건 제가 아니라 예서 엄마입니다."

 
결국 < SKY 캐슬 > 가리키고자하는 주제는 여러 차례 김주영의 대사로 전달돼 왔다. 어른들의 욕망이 결국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갔다. 예서도, 혜나도, 우주도 희생양에 불과하다. 또 계층과 계급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캐슬 사람들이야말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한국사회의 비정상적 교육제도를 비대화시킨 공범들이다.
 
무엇보다 곽미향에서 이름도, 신분도 바꾼 한서진 역시 그러한 한국사회 괴물성의 희생양이자 이를 완성시키는데 일조한 주인공이지 않은가. 잠시 강준상의 숨겨진 딸이란 드라마틱한 설정을 걷어 내보자. 그렇다면 한부모가정에서 자라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혜나와 과거 신분 상승을 꿈꿨으며 지금은 상류층 가정의 지속을 염원하는 한서진이 맞붙는 < SKY 캐슬 >의 후반 구조는 21세기판 <하녀>에 비견될 계급 갈등의 드라마로서 가능성마저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혜나의 죽음을 그저 드라마 전개의 기능적인 요소로 풀어낸 < SKY 캐슬 > 후반부는 결국 그 가능성을 스스로 중도 포기해버리고 쉽고 안온한 선택으로 나아가 버렸다. 끊임없이 우주의 입을 통해 "눈뜨면 그냥 생기는 오늘은 혜나가 살아보지 못한 소중한 날"과 같은 애도를 보내면 무엇하랴. 20회 속 목불인견 수준의 <죽은 시인의 사회> 패러디가 뜬금없는 이유도 같은 이치다.
 
유일하게 전복의 가능성을 품었던 소녀가, 허망하게 죽었다. 그리하여 그 죽음을 통해 (심지어 한국사회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던 강준상의 어머니마저도) 대부분의 인물이 변화를 맞는다. 교육과 계층, 계급 문제에 있어 같은 주제와 소재를 공유했다고 볼만한 <아내의 자격>이나 <밀회>와 비교해 본다면 < SKY 캐슬 >의 그 허망함은 배가된다.
 
대치동 학원가와 그를 둘러싼 상류층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아내의 자격>은 결국 가정의 파탄을 대면한다. 예술학과와 역시 상류 사회의 이면을 풍경화했던 <밀회> 역시 '공범'이었던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른다. 그에 비하면, 캐슬 주민들의 결말은 안온해서 더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부조리한 결말, 어쩌면...
 

어쩌면, 작가는 거대한 부조리극을 상상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납득가능하다. 한국사회의 공고한 계층 사다리와 교육열을 깰 수 없으리란 부정적 전망으로부터 도출된 예정된 포기와 해피엔딩으로의 탈출 말이다. 혹은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결말을 여기까지라는 지레 짐작.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게으르다. 그 어느 쪽도 이 공고한 성을 유지해왔던 동력인, 들끓는 어른들의 욕망과 가부장제의 음습한 연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단죄하지 못하거나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 SKY 캐슬 > 20회의 한 장면

< SKY 캐슬 > 20회의 한 장면ⓒ JTBC

 
단죄와 파멸은커녕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안온한 이러한 보수주의로의 회귀는 혜나의 죽음은 물론 < SKY 캐슬 >의 초반 인기를 견인했던 이명주의 충격적인 자살까지도 기능적인 활용으로 비치게 할 정도다. "자식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게 엄마"라는 한서진의 말이 알리바이로 인정받기엔, < SKY 캐슬 >의 어른들은 19화까지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리하여, 20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드라마 밖에 존재하고 있었다. 드라마 방영 중간 등장한 학습지 광고 속 한서진 역의 염정아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입시 코디'와 '학종'에 대한 문의가 쇄도한다고 한다. 아마도 < SKY 캐슬 >의 가장 큰 수혜는 사교육 업계가 가져갈 공산이 커 보인다. 드라마의 주제와 현실의 양상이 이렇게 딴판이다.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부조리의 극치인 < SKY 캐슬 >의 결말은 그래서 마치 성과 같이 공고한 사교육의 벽과 한국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작가가 예상하고 지레 포기한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만약 그랬다면, 비록 최악의 결말이라 비판받을지언정 유현미 작가야말로 진정한 승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드라마를 통해서 현실의 균열을 내고자 열망했던 시청자들에게 그 현실의 공고한 장벽을 일깨우는, 쉬이 감당하기 힘든 '복수'이자 '반어'일테니. 심지어, < SKY 캐슬 >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불친절한 편집이라 더 거슬리는) 김주영 선생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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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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