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이 무척 예민했던 시절, 우연히 접한 노래 한 곡이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놓은 적이 있다. 산울림 7집에 수록된 '청춘'이라는 곡이었다. 사실 이 노래는 내가 관심을 갖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가요계 각종 차트를 휩쓸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곡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관심은 뒷북이었던 셈이다.

유행의 유통기한이 다 된 곡은 어느 매체에서건 잘 내보내지 않는 법이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노래의 녹음을 위해 집에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걸어놓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산울림의 '산' 자만 흘러나오면 무조건 녹음 버튼부터 눌렀다. '청춘'은 물론이고, 산울림의 다양한 노래들이 내가 쳐놓은 그물에 포획됐다.

운명처럼 다가온 산울림과의 인연

'청춘'의 녹음을 위해 시작된 작업은 자연스레 산울림의 다양한 노래를 접하게 했고, 이는 나를 차츰 산울림의 광팬으로 변모시키는 유인이 되게 했다. 산울림의 진가는 '청춘'뿐 아니라 오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형제들이 직접 연주하면서 가볍게 내지르는 시적인 노랫말, 그리고 몽환적이며 중독성 돋는 음율, 아마추어처럼 뭔가 어설프지만 되레 순수함이 느껴지는 해맑은 노래들로 인해 나는 어느덧 이들에게 깊숙이 빠져들고 만 것이다.

이후로는 녹음보다는 아예 원곡이 담긴 LP판을 구하기 위해 레코드 가게들을 쏘다녔다. 용돈을 탈탈 털어 구할 수 있는 앨범은 모두 구입했으며, 특히 구하기 힘든 과거 앨범들은 온 동네 레코드가게를 다 뒤지고 다녔다. 그래도 구하지 못하면 도심까지 일부러 나가 구해오는 열정을 보였다.
 
 풋풋하던 시절의 산울림

풋풋하던 시절의 산울림ⓒ 대성음반

 
아쉽게도 산울림은 7집과 8집 앨범을 끝으로 각자의 생활을 위해 팀을 해체했다. 덕분에 TV에서 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그 시절 이들 이름만 나와도 내 가슴은 조건반사처럼 콩닥콩닥 뛰었는데 말이다.

어느덧 세월이 훌쩍 흘렀다. 예전 같았으면 산울림, 그리고 김창완 이름 석 자만으로도 설레고 흥분되었을 법한데,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 그런지 그런 류의 감정 없이 차분한 마음으로, 아울러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됐다.

한국 가요계에 큰 족적 남긴 형제그룹 산울림

김창완은 내겐 만년 청춘으로 각인돼있다. 때문에 나이를 의미하는 김창완 이름 석 자 옆 괄호 안 '65'라는 숫자는 굉장한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하긴 그가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지도 햇수로 따지면 벌써 40년이 넘었다. 어쨌든 그나 나나 흐르는 세월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천진난만함 따위가 묻어 나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그를 좋아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순수함이 뿜어내는 매력 때문이 아니었던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맑은 미소와 아이 같은 표정을 간직하기란 참 쉽지 않은 노릇일 텐데 말이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내가 역시 사람 보는 눈만큼은 조금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은 김창완 하면 TV 드라마나 영화에 조연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거나 라디오 진행자쯤으로 그를 인식하기 쉬울 것 같다. 아니면 요즘 MBC 일요드라마 <내 사랑 치유기>에서 박완승(윤종훈)의 아버지 박부한 역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오히려 쉽게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사실 한국 가요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유명 대중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른 걸 모두 떠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5위, 6위, 그리고 73위에 산울림의 1집부터 3집까지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예전 활약상이 어느 정도였는가가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1980년대 동생들의 군 제대 후 재결합한 산울림

1980년대 동생들의 군 제대 후 재결합한 산울림ⓒ 대성음반

 
1977년 데뷔곡 '아니 벌써'로 가요계에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는 고작 1년 사이에 연거푸 네 장의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이 가운데엔 '개구장이'라는 국민 동요 앨범도 포함돼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수백 곡의 노래를 만들어놓았을 만큼 천재적인 뮤지션이었다. 더욱 극적이었던 건 이후로 기억된다. 동생들의 군 입대로 김창완 혼자 남게 된 뒤에도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연거푸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니 말이다. 김창완의 독집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도 이즈음 발매됐다.

동생들의 제대 후 출시한 첫 앨범이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청춘'이 수록된 7집 앨범이다. 이 당시를 '산울림 시즌2'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들의 노래는 대중 친화적으로 변모했으며, 세련미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린 앨범의 면면을 놓고 보더라도 산울림이라는 형제 그룹의 진면목은 초창기 앨범에 대부분 발휘돼있다. 아마추어의 풋풋함, 기성 음악과는 전혀 다른 실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우상, 산울림 그리고 김창완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김창완은 이제 음악인으로서의 명성보다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니 어쩌면 글을 쓰는 작가로서 더 유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그가 펴낸 에세이집 '안녕, 나의 모든 하루'가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그의 재능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과연 남아있기나 한 걸까?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음악이면 음악, 예능이면 예능, 연기면 연기, 방송 진행이면 방송 진행, 과연 못하는 게 무얼까?

지난해 3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리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먼저 그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하고 무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꼽았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고,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과거 성폭력 전력이 연이어 드러나는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답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의 두 번째 리더론이 훨씬 마음에 들었으며, 역시 김창완답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뒷방 늙은이'처럼 묵묵히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할머니의 존재감을 예로 들었다.

"힘없는 손, 희미한 미소만으로도 우리에게 용기를 줬다. 세상에 나폴레옹(같은 영웅)이 들끓어도 조용히 갑옷을 입혀주던 할머니가 소중한 거다."

새삼 이제는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세상은 힘없는 '뒷방 노인'이라며 당신들을 퇴물 취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께서 건네는 말없는 미소와 한 마디, 뒤에서 묵묵히 자식들을 응원해주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힘으로 다가온다. 세월을 버텨온 노고, 어쩌면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리더십이 아닐까. 김창완의 리더론은 그래서 깊은 울림을 준다.

데뷔한 지 어느덧 40년도 더 된 형제 그룹 산울림이 그 청아한 목소리와 맑은 연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듯이 김창완의 리더론은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에 촉촉한 파장을 일으킨다. 산울림과 김창완은 이제 또 다른 영역에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에 내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기쁘다. 김창완, 그리고 형제 그룹 산울림은 내겐 만년 청춘이자 영원한 우상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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